[인터뷰.1st] 강상우 "걱정과 달리 월급도 잘 받고, 中 축구 문화도 즐겼어요"
[풋볼리스트] 허인회 기자= 중국에서 무사히 첫 시즌을 보내고 온 강상우(베이징궈안)는 지난 1년을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 해"라고 돌아봤다. 직접 겪은 '썰'도 한 보따리 가지고 왔다.
작년 베이징으로 이적한 강상우는 휴식기를 맞아 지난 2일 한국으로 들어왔다. 베이징 구단 복귀 전까지 회복에 초점을 맞춰 국내에 머물 계획이다. 17일 '풋볼리스트'와 만난 강상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다. 이외에는 지인들을 만나거나 고마운 분들에게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고 있다"고 근황을 공개했다.
강상우가 중국으로 진출할 당시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임금 체불 문제가 부각된 바 있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강상우 영입을 1순위로 두고 있던 베이징이 지속적으로 확신을 주며 강상우도 이적을 결정하게 됐다. 강상우는 "생각만 했던 월급이 진짜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왔다"며 환하게 웃어보인 뒤 "가족들은 내가 번 돈을 쉽게 못 쓰더라. 나도 물욕이 딱히 없어 한국 와서도 돈을 많이 쓸 일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강상우는 해외에서 보낸 첫 시즌을 돌아보기도 했다. "어려운 것 투성이었지만 새로 배우고 깨달은 것은 훨씬 많다. 그리고 중국에 오기 전 K리그에서 2년 연속 공격포인트 10개 이상 달성했는데 베이징에서도 4골 7도움을 기록하며 3년 연속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하 강상우 인터뷰 전문
- 중국 진출할 당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임금 체불 문제였는데 다행히 1년을 잘 보냈다. 처음 월급이 입금됐을 때 기분은?
생각만 했던 숫자가 통장에 찍히니까 처음에는 '어? 진짜 들어오네?'라고 육성으로 내뱉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처음 몇 개월은 계속 걱정했다. 꼬박꼬박 입금되는 것을 보다보니 나중에는 걱정에 대한 생각이 무뎌졌다. 중국에서는 돈 쓸 일이 많지 않아 주로 저축을 한다. 매일 붙어다니는 우리팀 형들이 밥도 거의 다 사준다. 나도 대접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이 종업원에게 직접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바코드를 찍어 음식을 선택하면 자동 결제가 되는 시스템인데 다 중국어다. 가끔 통역해주는 분에게 먼저 계산해달라고 부탁한 뒤 돈을 보내주기는 한다. 아니면 미리 번역기 틀고 종업원을 찾아가 내가 계산할 거라고 말해둬야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밥을 살 수 있다.
한국에 온 뒤에도 내가 워낙 물욕이 없다보니 크게 지출할 일이 없다. 어머니와 친누나들에게 명품을 쏘겠다고 골라 놓으라고 말해놓긴 했다. 어머니는 싫다고 그러셨고, 누나들은 소리지를 정도로 좋아했다. 지인들을 만날 때 밥은 다 사고 있다. 장소도 내가 고른다. 가고 싶은 곳 정해달라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비싼 음식 못 먹을까봐 일부로 그렇게 하고 있다. 좋은 식당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그 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처음 알게 됐다. 가끔 계산서 안 볼 때도 있다. 이게 바로 '플렉스'인가?
- 한 시즌 동안 고생한 스스로를 위해 쓰고 싶은 것은 없나?
지금 입고 있는 상의, 하의, 외투 전부 스포츠브랜드다. 예전부터 명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사람 자체가 잘생겼는데 좋은 옷이 굳이 필요한가?
- 중국과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고 해도 해외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특히 언어 때문에 중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관중이었기 때문에 육성 소통이 쉬운 환경인데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선수들에게 내 의견을 전달하려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조선족 형을 거쳐야 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매번 그 형에게 부탁하기도 미안했다. 경기 중 흥분할 수도 있고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항상 부탁을 해야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포지션을 다양하게 뛰었다. 전체 경기 중 절반은 공격형 미드필더, 나머지는 풀백과 윙어를 소화했다. 경기 중에도 내 포지션은 계속 바뀌었다. K리그에서도 멀티 자원으로 뛰었지만 여기서는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벤치와 소통이 계속 필요했다. 하지만 감독님과 소통이 어려웠다. 감독님이 수리남 국적이라 영어를 쓰시는데 각 팀당 1명의 통역관만 벤치에 앉을 수 있었다.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전부 영어를 써서 내 담당 통역관은 관중석에 앉아야 했다. 경기 중 감독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내 플레이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감독님 제스처와 경기 상황을 보며 적응하다가 하프타임에 감독님께 자세히 물어보곤 했다.
언어 장벽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우리팀은 페널티킥 키커가 3명이고 돌아가면서 찬다. 나는 3번째 순번이다. 처음 얻은 페널티킥을 장위닝 선수가 못 넣었고, 다른 경기에서 장시저 선수도 실축했다. 나는 그 이후 경기에 얻었던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그러자 암묵적으로 페널티킥 키커는 내가 됐다. 어느 날 경기에서 페널티킥이 또 나왔는데 장위닝 선수가 중국어와 영어로 뭔가 말하더니 본인이 차겠다고 공을 들고 가더라. 순간적으로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디오판독(VAR)으로 페널티킥이 취소됐는데도 화가났다. 경기 끝나고 약간 언쟁이 있었다. 알고보니 상대팀이 장위닝 선수의 고향팀이라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경기 중에도 그 선수의 말을 이해했다면 당연히 양보했을 것이다. 다음에 또 페널티킥 기회가 왔고, 그때는 내가 먼저 양보했다. 장위닝 선수가 득점왕 경쟁 중이었는데 3경기째 골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공시키고 나서 나한테 가장 먼저 오더니 고맙다며 안아주더라. 그렇게 잘 마무리했다.
- 눈 밑에 긁힌 자국은 경기 중 생긴 건가?
경합 상황에서 상대 선수에게 손톱으로 긁혔다. 주심이 파울을 안 불길래 상처 보여주면서 따지기도 했다. 그 선수 쳐다보니까 한국말로 '뭘 봐 XXX아'라고 욕하더라. '뭐가, 뭐가' 계속 그러더라. 나는 욕도 안 했는데. 근데 한국말로 욕을 들으니까 그냥 웃겼다. 지금도 상처가 남아있다. 내가 얼굴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 관리를 해야 된다. 피부과 가봤는데 다행히 저절로 없어지는 상처라고 하더라.
- 중국 축구팬들의 열기는 어땠나?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아 관중 제한이 풀리면 기본적으로 2만 명 이상은 입장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시즌 중 60%까지 허용했는데 2만 명 이상이 들어왔다. 중국도 한국처럼 축구를 좋아한다. 카타르 월드컵 기간 중 어느 식당을 가도 축구를 보고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허난(쑹산룽먼)전 원정 경기를 치르기 위해 선수단 버스를 타고 갔는데 상대 팬들이 단체로 우리 버스를 막아 세우더니 욕을 엄청 퍼붓더라. 손가락도 동원됐기 때문에 욕인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물리적인 공격은 당연히 없었다. 처음에는 놀랐다. 라이벌 관계가 아닌데도 그렇게 하는 것이 문화 중 하나라고 들었다. 관중 제한이 3년 만에 풀린 것이라서 우리 선수들도 신기해하며 카메라로 찍더라. 나중에는 나도 즐기게 됐다. 우리팀이 몸 풀러 경기장에 나가니까 야유도 엄청났다. 관중 제한을 60%로만 둬도 엄청 많다.
- 해외 리그를 경험하며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더 발전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운 것 투성이었지만 성장은 훨씬 많이 한 것 같다. 베이징에서 좌우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윙어, 원톱까지 봤다. 중앙수비 빼고 다 뛰었다. 한국에서도 멀티 포지션을 뛰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1년 사이에 축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말로 소통이 안 되다보니 경기 상황을 읽는 능력도 좋아졌다. 시즌 끝나고 감독님이 나를 부르더니 이번 시즌 고마웠다고 하시더라. 가장 고마운 선수였다고.
- 중국리그에서 뛰며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산둥타이산 원정 경기였는데 (손)준호 형이 나오니까 환호성이 장난 아니더라. 나중에 물어보니 준호 형도 처음이라고 했다. 그 동안은 무관중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이 TV로만 준호 형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직접 만나게 되니까 엄청난 응원을 보낸 것이었다. 나도 준호 형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만족할 정도의 성과를 이뤄내고 싶다. 해외 생활이 아직 어렵긴 해도 지낼 만하다. 버틸 수 있을 때 많은 것을 달성하고 싶다. 베이징은 중국에서 가장 관중이 많은 구단 중 하나다. 올해 관중 규제가 풀리면 기본 3, 4만 명은 입장한다고 들었다. 팬분들이 들어와야 축구선수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K리그에서도 한때 무관중으로 치르다가 다시 유관중으로 전환됐을 때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중국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됐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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