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언더독, 오늘은 내가 ‘LCK 주인공’
‘2022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데프트’ 김혁규(현 디플러스 기아)는 프로게이머 데뷔 3505일 만에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김혁규와 DRX 선수단은 8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에드워드 게이밍 하이칸(EDG)에 대역전극을 거둔 뒤 2022 LCK를 양분한 젠지e스포츠, T1을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김혁규와 DRX 선수단의 서사는 LCK 내 많은 선수들의 귀감이 됐다. 부상과 부진, 시련에도 마음만 꺾이지 않으면 지금은 언더독(열세)일지라도 언젠가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작년 12월 9일 ‘라스칼’ 김광희(DRX)는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김혁규의 우승은) 앞으로의 나와도 연결 할 수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LCK에는 매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성장하는 선수들이 많다. 18일 ‘2022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개막을 맞아 아직 주목받지 못했지만, 올해 주연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선수들을 포지션별로 조명해봤다.
TOP, 광동 프릭스 ‘두두’ 이동주
2020년 여름, 한화생명에서 데뷔한 이동주는 뛰어난 피지컬을 앞세워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라인전 단계에서 다소 안정성이 부족했고, 중후반 이후 단계에선 팀원과의 호흡 문제를 드러내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2021년에는 같은 팀 동료였던 ‘모건’ 박루한(브리온)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주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노력파’ 이동주는 꺾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하며 기량을 향상시켰고, 결국 2022 LCK 서머 시즌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이동주는 시즌 기간 진행된 46번의 매치에서 16번의 솔로킬을 성공하며, 김광희와 ‘도란’ 최현준(젠지)에 이어 솔로킬 랭킹 3위를 기록했다. 팀은 12승 34패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이동주는 승리한 12번의 경기 중 6번의 매치에서 플레이 오브 더 게임(POG)에 선정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동주는 더 많은 기회를 부여 받기 위해 올 시즌 광동 프릭스에 합류했다. 선수 육성에 강점이 있는 김대호 감독이 광도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점은 이동주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동주는 직전 시즌보다 팀 내에서 더욱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됐다.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이 2부 리그나 서브 멤버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동주가 쟁쟁한 탑 라이너 가운데서 단연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JUNGLE, 한화생명 e스포츠 ‘클리드’ 김태민
김태민은 2016년 중국 LPL의 징동 게이밍 인텔(JDG)에서 데뷔해 T1, 젠지, FPX 등 세계 최정상 리그의 최상위권 팀에서 정글러로 활약했다.
그러나 김태민은 LPL의 FPX에서 활동한 작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선수단이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8승 8패, 10위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했다. 서머 스플릿에서는 탑 라이너 ‘서밋’ 박우태가 합류했지만, 역시 반등에 성공하지 못하고 7승 9패,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김태민은 올해 LCK 복귀를 선택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김태민이 올 시즌에 임하는 각오는 남다르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지다.
김태민의 소속팀 한화생명e스포츠는 올 시즌 슈퍼팀으로 통한다.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인 ‘킹겐’ 황성훈, ‘제카’ 김건우가 합류했고 중국 리그를 제패한 ‘바이퍼’ 박도현이 원거리 딜러로 자리했다. 김태민은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라이프’ 김정민과 이들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김태민이 이전의 번뜩이는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면, 한화생명의 리그 제패도 꿈이 아니다.
MID, 농심 레드포스 ‘피에스타’ 안현서
농심은 지난해 ‘LoL 챌린저스 코리아(CL·2군)’에서 우승컵을 차지한 1군 선수단 전원을 1군으로 콜업했다. 일본 리그 LJL의 센고쿠 게이밍에서 한 시즌 간 활동한 원거리 딜러 ‘바이탈’ 하인성도 다시 팀에 합류했다.
차민규 단장이 과감한 결단을 한 근거는 선수단에 대한 믿음이다. 특히 연습생 시절부터 농심에서 활동하며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상체 3인방은 농심의 자랑이다.
농심의 가장 큰 승리 플랜은 미드 라이너와 원거리 딜러 캐리다. ‘든든’ 박근우는 10일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드 라이너와 원거리 딜러의 캐리력이 높다”고 말했다.
미드라이너 ‘피에스타’ 안현서가 처음부터 좋은 기량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2021 CL 스프링 스플릿에서는 라인전 단계부터 상대에게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고, 서머 스플릿에서는 ‘베이’ 박준병(T1 CL)에게 밀려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스로 라인전 단계에서의 약점을 보완하며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물론 LCK에서 활약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2022 LCK 스프링 스플릿, 안현서는 1군 미드 라이너인 ‘비디디’ 곽보성(현 KT)이 갑작스럽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에 확진되며 LCK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당시 브리온의 미드 라이너 ‘라바’ 김태훈(LS)에게 고전하고, 광동의 ‘페이트’ 유수혁(DRX)에게는 솔로킬을 내주며 1부 리그의 벽을 체감해야 했다.
AD CARRY, 젠지 e스포츠 ‘페이즈’ 김수환
젠지를 상징하던 원거리 딜러 ‘룰러’ 박재혁이 팀을 떠났다. 젠지는 새로운 원거리 딜러를 영입하는 대신, 2군 소속 김수환을 콜업했다. 박재혁의 공백을 대신하는 선수라는 이유로 김수환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막 LCK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로서는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젠지의 박수환 콜업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만 16세 나이제한이 풀리자마자 2군 리그 내 최연소 선수로 데뷔해 맹활약했다. 특히 ‘이즈리얼’을 손에 쥐었을 때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줘 눈길을 모았다.
서머 시즌에는 개막전 펜타킬부터 시작해, 1라운드 MVP, ALL CL팀 등의 기록을 쏟아냈다. 팀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김수환은 CL 내 최고의 원거리 딜러로 인정받았다.
손창식 스카우터는 김수환의 강점으로 감정 조절 능력을 언급했다. 작년 12월 14일 진행된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손 스카우터는 김수환에 대해 “감정적이지 않고 멘탈을 잘 지키는 점, 그리고 나이와 경력에 비해 긴장을 잘 하지 않는 부분이 페이즈의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고동빈 감독도 김수환의 선전을 예상했다. 12일 2023 LCK 스프링 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고 감독은 “페이즈 선수가 2군에서부터 계속 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왔다. 큰 고민 없이 충분히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재력만 보고 그대로 1군에 기용을 했다”고 평가했다.
김수환이 LCK에서도 활약을 이어간다면, 젠지가 위기에 빠졌을 때 해설진이 룰러를 외쳤던 것처럼 머지않아 페이즈를 외칠 날이 올지도 모른다.
SUPPORT, 브리온 ‘에포트’ 이상호
이상호는 2017년 SKT T1(현 T1)에서 데뷔한 베테랑 프로게이머다. T1과 함께 2019 LCK 스프링과 서머 스플릿,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등 3회 연속 우승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명실상부 리그 내 최정상급 서포터였다.
그러나 T1을 떠난 후에는 매해 팀을 옮기며 스스로의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2021년은 리브 샌드박스, 2022년은 농심에서 활동했다. 농심에서는 ‘피터’ 정윤수와 ‘눈꽃’ 노회종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카로운 로밍은 이상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될수록 상대가 이를 인지하며 대비했고, 자연스레 팀의 손해로 이어졌다. 또 다른 강점이었던 과감한 이니시에이팅도 무리한 플레이로 귀결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상호는 2022 LCK 서머 스플릿 마지막 경기였던 농심과 광동의 2세트 대결에서 교체 출전해 ‘레오나’로 맹활약을 펼치며 건재함을 알렸다. 게임 내 닉네임처럼 노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가, 브리온에서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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