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분석] 역대 정부 ‘야권·前정부’ 수사…개인비리·통치행위 모두 칼날
정치보복 논란을 피할 수 없었던 검찰의 야권수사는 문재인정부 들어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문재인정부 이전, 검찰은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 과거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개인적 비위’에 초점을 맞춘 수사를 주로 진행했다.
그러던 검찰은 문재인정부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 정부의 통치행위 전반까지 수사범위를 넓혔다.
윤석열정부에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검찰은 문재인정부 당시 발생했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를 대거 적용하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들어서 검찰은 야권 인사의 개인 비리를 겨냥한 수사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대표적인 예다. 검찰은 통치행위와는 무관한, 이 대표의 개인적 비리 혐의를 정조준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노무현정부·이명박정부·박근혜정부·문재인정부 당시 정치보복 논란을 빚었던 수사의 판결문을 입수해 지금 정치·수사 상황과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국민일보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과거 정치보복 논란이 일었던 수사에 연루된 주요 피고인 60명의 판결문을 전수조사했다.
국민일보는 이명박정부 당시 수사가 진행됐던 ‘박연차 게이트’와 ‘세종증권 매각비리’ 사건,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수사가 이뤄졌던 ‘다스 비자금 사건’, 박근혜정부·문재인정부에서 수사된 ‘국가정보원 댓글조작 사건’, 박근혜정부 말기에 시작돼 문재인정부에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국정농단 사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명박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측근을 상대로 벌인 ‘박연차 게이트’와 ‘세종증권 매각비리’ 수사는 과거 야권수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두 사안에 대한 수사는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8년 9월부터 시작됐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벌어진 정관계 로비정황에서 시작된 수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대규모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으로 확대됐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 형 건평씨, 노무현정부 당시 박정규 청와대 민정수석,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 당시 강원지사 등 ‘친노’(친노무현) 인사 및 정부 고위직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두 사안에 연루된 주요 피고인 15명의 판결문을 보면 당시 수사는 경제·부패 혐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5명 가운데 4명에게는 특가법상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입찰방해 혐의(4명)와 알선수재 혐의(3명),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2명)가 뒤를 이었다.
법원에서는 피고인 15명 가운데 3명을 제외하고 알선수재, 뇌물 혐의와 관련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수석은 징역 3년6개월, 정 비서관은 업무관련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6년이 확정됐다.
이 전 지사는 박 전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노건평씨 역시 농협중앙회의 세종증권 인수를 알선하고 그 대가로 23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과 추징금 3억원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재판부는 노건평씨에 대해 이례적으로 판결문에서 “평범한 세무공무원으로 출발해 동생을 대통령으로 만든 이른바 ‘로열패밀리’가 됐으나 당연히 갖춰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고 지탄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역시 뇌물을 받고 실형을 살았던 전례 때문에 과거에는 정권이 바뀐 이후 전직 대통령 측근 비위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말했다.
전 정부 수사는 문재인정부 때 진행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재수사에서 뚜렷한 변곡점을 맞았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첫 수사는 박근혜정부였던 2012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 사건으로 원 전 원장은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형을 확정받았다.
그러다가 문재인정부 들어 국정원 적폐청산 명목으로 재수사가 시작됐고, 원 전 원장에게는 13건의 직권남용 혐의 등이 추가로 적용됐다.
정권에 비판적인 고정 출연자를 MBC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배우 문성근씨·명진 스님 등의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이 적용됐다.
법원은 원 전 원장에 적용된 13건의 직권남용 혐의를 모두 유죄라고 판결했고, 원 전 원장은 추가로 징역 9년형을 확정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다스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도 직권남용 혐의가 활용됐다.
이 사안은 2007년 여름 17대 대선 국면에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와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담당한 정호영특검은 이 전 대통령 취임식 4일 전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다 2017년 11월 BBK 피해자의 고소를 계기로 다스 비자금 사건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수사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는 총 16개 혐의가 적용됐는데, 그중에는 직권남용 혐의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를 시켜 다스의 미국 소송 대응책을 검토하게 했다고 의심했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을 선고했지만, 직권남용 혐의 부분은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정점을 찍은 것은 박영수특검의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였다.
특검의 수사범위 자체가 박근혜정부 국정운영 전반의 적절성 여부를 다뤘기 때문에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많았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주요 피고인 29명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이들에게 모두 101건의 혐의가 적용됐는데, 그 중 직권남용 혐의는 22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가법상 뇌물과 위증 혐의가 각각 6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직권남용 혐의가 빈도에 있어서 다른 적용 조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셈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도 11건의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포함한 7건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4건에선 유죄가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에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금으로 204억원을 요구한 혐의,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KT 등 기업에 당시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운영했던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등에 광고 발주 등을 지원하라고 강요한 부분 등에서 직권남용 혐의 무죄가 나왔다.
재판부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 행위일 뿐, 대통령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정원에 지시해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을 불법사찰했던 것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 검찰의 수사 권력으로 안정을 도모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문재인정부 때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직권남용죄가 많이 활용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당팀 gugiz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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