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딸 유골 몰래 묻었다…암매장꾼 된 유족의 기구한 사연

석경민, 이영근 2023. 1.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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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참사 기억법①: 쫓겨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의 1월 10일 모습. 벽에는 시민들이 쓴 추모 메시지가 가득하다. 석경민 기자

지난 10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광장. 이태원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 영정을 놓은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다. 분향소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은 뜸하고,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참사를 즐거워하는 ***” 등 진영 갈등을 부추기는 10여개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펄럭였다. 참사를 정치화하려는 공간으로 변질하고 있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도 17일 활동을 종료했다. 논란은 있지만, 책임 소재와 진상을 규명하는 법적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정식 추모공간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벌써 험난한 진통이 예상된다. 30년째 이태원에서 신발가게를 운영 중인 채모(61)씨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추모 시설은 절대 안 된다. 이태원 상권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추모 공간=혐오 시설’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 세월호를 비롯해 과거에 빚어진 대형 참사 이후 제대로 된 기억과 교훈의 공간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불순한 행태까지 끼어들어 더 복잡해졌다. 인위적 재앙이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불행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방식에 대해 공론화할 때다. 미국 9.11 테러 현장의 ‘그라운드 제로’처럼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명소로 만들어 유족과 추모객, 상인 모두를 포용하는 기념물을 만들 수는 없을까.

6호선 녹사평역 인근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시민분향소의 1월 10일 모습. 참사와는 관련없는 정치적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분향소를 둘러싸고 있다. 석경민 기자

짧은 애도→추모 공간을 둘러싼 ‘땅값’ ‘상권’ 갈등→망각. 기자가 만난 15명의 국내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공통되게 말한 참사 이후의 패턴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20년이 되도록 추모묘역과 추모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위령탑은 사고가 일어난 곳에서 4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국내 참사 현장과 추모 공간의 실태를 탐사하고, 선진국이 대하는 ‘참사의 기억법’과 비교해봤다.


대구지하철참사 20년 지났지만…갈등은 진행 중

대구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의 지난해 12월 21일 모습.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화재 피해를 입은 전동차를 볼 수 있다. 석경민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대구시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았다. 2003년 2월 18일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건립된 안전체험장이다. 참사 당시 25살의 딸을 잃은 윤근(76)씨가 ‘명상의 공간’이라는 석조 조형물에서 10미터쯤 떨어진 잔디밭을 가리켰다. “이쯤 어딘가에 우리 딸이 묻혀 있을 것이다”라며 눈물을 삼켰다. 아무런 표식이나 흔적도 없는 평범한 잔디밭에 딸의 유해가 잠들어 있었다.

윤근씨는 2009년 10월 27일 새벽 3시를 잊을 수 없다. 그날 새벽 윤씨를 포함해 대구지하철참사 유족 70명이 팔공산에 올랐다. 그들은 고이 안고 온 한지(韓紙)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내 공터에 묻었다. 한지에는 32구의 희생자 유골이 담겼다. 오열 속에 진행된 ‘유골 매장’은 차량 라이트 하나 켜지 못한 채 몰래 이뤄졌다. 주변 상인들의 반대 탓에 추모비와 추모묘역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유족인 윤근(76)씨가 지난해 12월 21일 대구시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아 딸의 유골이 묻힌 곳을 가리키고 있다. 유골이 묻힌 곳을 알 수 있는 표식은 없었다. 석경민 기자

“납골당에서 밥 먹고 싶겠나”… 유족은 ‘암매장’꾼이 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윤석기(58)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은 “군사작전처럼 비밀리에 치렀다. 죄인도 아니고 우리가 왜 칠흑의 어둠 속에서 도둑처럼 유골을 묻어야 했는지 지금도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윤석기씨는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됐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수사기관과 법정에 불려 다니며 2년을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왜 사고 난 지 6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가족 유골을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 묻어야 했나. 2005년 11월 대구시와 유족들은 팔공산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주변 반대를 고려해 추모묘역과 위령탑은 들이지 않기로 했다. 황순오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전 사무국장은 회고했다. “당시 반발이 극심하자 대구시는 사업 추진을 위해 이면합의를 제안했다. ‘대외적으로는 추모묘역과 위령탑을 세우지 않기로 하고,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 수목장과 위령탑을 건립해주겠다’는 내용이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유족들은 야밤의 ‘자연장’을 강행했고, 주변 상인들은 ‘암매장’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기구한 사연이 벌어졌다.


기억과 교훈의 공간 번번이 좌절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20년이 됐건만, 유족들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참사 직후 유족들은 추모사업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직도 공식적인 추모묘역조차 없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아픔과 교훈의 공간”이지만 누구도 내주길 거부했다. “공동묘지를 들일 수 없다”는 높은 벽에 부딪혔다. 참사 인근 장소인 공원, 수성구 천주교 공동묘지, 참사를 계기로 유치한 방재테마공원 등지에서 세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외면당했다.

희생자대책위는 여전히 추모묘역 조성을 원한다. 전 사무국장은 “모든 지역의 반대는 똑같았다. ‘땅값이 떨어진다' '납골당 옆에서 어떻게 장사하나’는 말이 늘 떠나지 않았다”며 “묫자리가 없어 달라는 게 아니고,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기억하고 재발하지 말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작가인 김명식 건축가는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기억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과 조형물이 추모라는 일차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공간예술로 남아야 많은 사람이 찾아 참사의 의미를 되새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훈 서울대 조경학 박사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4.16 안전공원 건립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김 박사는 “물리적인 추모 공간과 장소가 갖는 힘이 있다. 공간과 장소가 있음으로써 재발 방지까지 이어지는 추모의 행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지하철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황순오(54)씨가 지난해 12월 21일 대구시 중앙로역 역사 내 지하철참사 기억공간을 찾아 희생자 명단을 가리키고 있다. 석경민 기자


‘땅값’ 앞에 밀려난 추모… 삼풍백화점

‘땅값’ 앞에 추모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건 대구지하철 참사 이전에도 있었다. 1995년 6월 29일 502명의 희생자는 낸 삼풍백화점 참사의 경우도 유사하다. 참사 현장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참사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4㎞ 이상 떨어진 매헌시민의숲(양재시민의숲)에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숲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위령비의 지난해 12월 12일 모습.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약 4km 떨어져 있다. 김기환 기자

희생자 유족들은 참사가 일어난 6월 29일이 되면 매년 매헌시민의숲으로 모인다. 해가 갈수록 참가하는 유족의 수가 준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족은 “‘참사 현장도 아니고 엉뚱한 곳에서 왜 우리가 슬퍼하고 추모해야 하나’며 회의감을 갖는 유족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생을 잃은 김문수(61)씨는 사건 직후 다른 유족과 함께 추모공간 조성을 추진했다. 정부의 무관심과 무성의로 모두 허사였다. ‘땅값’ 문제가 컸다. 김씨는 “부지를 매각해야 보상금 지급이 수월한데, 추모시설이 있으면 누가 사고 싶겠나는 논리였다. 작은 추모비라도 세워 달라 했지만, 돈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위령비는 대한항공기 미얀마 상공 희생자 위령탑·우면산 산사태 위령비 등과 함께 매헌시민의숲에 설치됐다. 김씨는 “경제적 이유로 참사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추모공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며 “이게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반복되는 원인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조종수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추모공간을 만들 수 있다”며 “정치나 경제가 아닌 건축과 예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뉴욕 9·11 메모리얼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도시와 공존할 수 있는 추모공간의 사례”라며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도 사람들이 즐기고 휴식하는 동시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참사 기억법②: 잊히다-“우리 죽으면 흉물이라며 치우겠지”… 망각에 비극은 반복된다>가 이어집니다.


■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가 된 베를린

「 독일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추모의 공간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6년 독일 예술가 귄터 뎀니히는 베를린의 한 거리에서 멀쩡한 보도블록을 깨고 동판을 심어 넣었다. 10cm 정사각형 동판에는 이름, 출생 및 사망일, 사망 장소와 함께 ‘그가 여기 살았다(Hier wohnt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살던 집이나 직장 앞 인도에 추모 동판을 설치하는 ‘걸림돌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독일 베를린 시에 거주하는 위르겐 슐츠가 2021년 11월 9일 자신의 집 앞에 설치된 '슈톨퍼슈타인'(걸림돌)에 헌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프로젝트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2020년 기준 7만 5000여개의 걸림돌이 설치됐다. 집주인이 직접 걸림돌을 사들여 희생자를 기리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도이치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뎀니히는 “600만 명이라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수는 추상적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집 앞에서 이웃에게 비극이 닥쳤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이 구체화된다”고 말했다.

2005년 건립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브란덴부르크와 독일 연방의회가 있는 중심부에서 도보 5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다. 축구장 2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공간에 2711개의 검은색 추모비가 놓여 있다. 이 밖에도 나치 안락사 희생자 추모관, 폴란드 희생자 기념관 등 시내에만 추모와 과거사 관련 시설이 40여 곳에 이른다.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로 꼽힌다.

독일 베를린 시 심장부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7800평에 이르는 부지에 높낮이를 달리한 추모비 2711개를 세워 희생자를 기린다. AP=연합뉴스

김명희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모공간이 세계적 주목을 받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잘 보여준 사례”라며 “이태원에서도 반목과 분열을 재생산하는 공간이 아닌 연대의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 탄생한다면 지역 주민과 상인의 우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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