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다르다" 소문 무성…MB·朴 입맛 사로잡은 셰프도 택한 이곳
강원도 양양(襄陽)은 따뜻한 고장이다. ‘볕을 완성하다’는 이름처럼 한겨울에도 양양은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양양은 맑은 고장이기도 하다. 2020년 한국환경공단 조사에 따르면 양양은 경남 고성과 함께 전국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적은 고장이다. 양양에는 또 소문 무성한 온천이 있고, 겨울 별미 풍성한 바다도 있다. 날이 풀리면 미세먼지가 덮치고 하늘이 맑다 싶으면 추위가 몰아치는 이 겨울, 양양으로 떠나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하나 더. 양양에는 사철 푸른 골프 코스도 있다. 양양은 동쪽의 따뜻한 나라다.
남대천 르네상스
하나 남대천은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여태의 남대천은 특색 없는 생활 하천에 가까웠다. 이 남대천이 최근 확 달라졌다. ‘남대천 르네상스’ 사업 덕분이다. 양양군은 약 80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남대천을 새로 단장했다. 2015년 시작한 사업이 지난해 얼추 마무리됐다. 양양읍에서 동해까지 약 6㎞ 길이의 남대천변 곳곳이 관광 명소로 거듭나는 중이다.
제일 먼저 신흥 명소로 떠오른 곳이 ‘남대천 연어생태공원’이다. 남대천 하류 낙산대교 앞에 펼쳐진 갈대밭의 다른 이름이다. 전남 순천이나 강진의 갈대밭만큼 넓지는 않지만, 갈대밭 사이로 난 탐방로를 걷는 관광객이 제법 많았다. 군데군데 전망대와 벤치도 있어 산책하기에 좋았다. 남대천과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는 고니·청둥오리 같은 겨울 철새가 모여 있었다. 철새가 내려앉는다는 건 자연 생태계가 안정됐다는 뜻이다. 양양군청 김덕중 담당은 “하천 정비 사업이 끝나자 철새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남대천을 따라 탐방로, 야간 조명, 레저공원 등 여러 시설이 조성됐으나 가장 눈에 띄는 건 징검다리 아래에 조성한 인공 여울이었다. 널따란 바위를 남대천에 깔아 여울을 만들었다. 여울이 생기자 여울 상류에 소(沼)가 만들어졌고, 소가 생기자 물고기가 많아졌고, 물고기가 많아지자 새가 많아졌고, 급기야 남대천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징검다리 중간까지 나아가 남대천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여울을 만난 개천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내려가고 있었다. 멀리서 백로가 징검다리에서 물소리 듣고 있는 여행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소문의 그곳
설해원은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가보지는 못한 리조트다. 골퍼 사이에선 사시사철 푸른 럭셔리 코스이자, 어느 곳보다 예약 경쟁이 치열한 골프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객실도 소문만 무성하긴 마찬가지다.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다지만, 늘 예약이 넘쳐난다. 그러나 경험해본 사람은 격이 다른 리조트라고 입을 모은다. 침대 베드나 어메니티는 특급호텔 수준이고, 객실에 ‘행복(行服)’이란 이름의 생활복을 비치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이용자 리뷰 중심의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에서도 설해원은 5점 만점을 받았다.
설해원에도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온천이다. 설해원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온천 리조트다. 39도 온천수가 넘쳐나 온천탕은 물론이고 야외 수영장도 100% 온천수를 사용한다. 약알칼리성 온천수로 온천욕을 하면 피부가 미끌미끌해진다. 설해원 온천은 물도 좋지만, 시설도 좋다. 일본 료칸처럼 입구를 꾸민 온천 사우나에 들어가면 ‘별 보는 온천탕’이라는 시설이 있다. 뜨뜻한 온천수가 흐르는 바닥에 등 대고 누우면 뻥 뚫린 하늘이 보인다. 야외 수영장과 노천 스파는 SNS 인증사진 명소다.
설해원에서 식사를 한다면 일식을 추천한다. 이 또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설해원 일식조리팀의 리더가 롯데호텔 일식 레스토랑 ‘모모야마’의 총괄 셰프 출신 이민후(61) 셰프다. 롯데호텔에서 33년 근무하고 2021년 8월 설해원으로 옮겨왔다. 이명박·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정·관·재계 인사와 유명 연예인을 단골로 거느렸던 일식의 장인이 설해원에서 양양의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13일 방문했을 때 양양 앞바다에서 잡았다는 9㎏짜리 대방어 회를 내놨는데 너무 예뻐 한참을 감상만 했다. 이민후 셰프가 속지 않고 대방어 회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가미살이 있어야 대방어란다. 작은 방어에선 아가미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파도는 겨울이 최고
서핑 하면 죽도 해변이지만, 사실 양양의 거의 모든 해변이 서핑 해변이다. 북쪽으로는 큰 파도로 유명한 물치 해변이 있고, 하조대와 낙산 해변, 기사문 해변도 서퍼들로 가득하다. 최근 들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은 죽도 해변 바로 아래에 있는 인구 해변이다. ‘낮엔 죽도 밤엔 인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구 해변은 전국에서 모여든 서퍼들이 밤에 유흥을 즐기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혹시 ’양리단길’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인구 해변의 클럽과 술집이 몰린 골목을 부르는 이름이다.
서핑은 주로 여름에 즐기는 레저이지만, 사실 서퍼들은 겨울이야말로 서핑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양양군 서핑협회 박준영(49) 회장에 따르면 “겨울은 좋은 파도가 자주 들어오는 계절”이다. 서핑을 즐기려면 파도의 높이가 중요하지만 파도의 길이와 방향, 파도가 들어오는 빈도도 중요하다. 박준영 회장은 “여름에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 비율이 40%라고 하면 겨울에는 7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초보 서퍼는 강습을 꼭 받아야 하는데, 겨울에는 강습소가 한적한 편이어서 오히려 양질의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겨울 서핑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런데 왜 죽도 해변이 서핑의 성지가 됐을까. 박준영 회장은 “죽도 해변이 다른 해변보다 파도가 월등히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죽도 해변에는 어항이 없어 다른 해변보다 서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변이 북동쪽을 바라보고 들어선 것도 서핑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북쪽에서 오는 파도가 타고 놀기에 더 좋기 때문이다.
양양=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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