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못받는 이재명 '30조 추경'...민주당 의원조차 "덜렁 정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년회견에서 취약계층 이자 지원 등 30조원 규모의 ‘9대 긴급민생프로젝트’를 제안했으나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즉각 부정적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민주당 안팎에서도 야당발(發) 재정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무주택자의 임대차 보증금 대출이자를 낮추는 대책이 시급하다”며 “코로나 위기 이후 폭증한 부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임차 보증금 이자 지원에 4000억원이, 코로나 부채 이자 감면엔 12조원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대표가 함께 제안한 ▶핀셋 물가 지원금(5조원) ▶한계 차주 저금리 전환 대출(4조원) 등 아홉 가지 정책의 소요 예산을 합치면 모두 30조원에 달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개입해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진정성이 담긴 승부수”라는 게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자회견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며 제안을 일축했으나, 이 대표는 ‘9대 프로젝트’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치고 있다. 이 대표는 17일 의원총회에서 긴급민생프로젝트를 언급한 뒤 “국민 삶을 지키는 일에 여야가 초당적으로 힘을 모으자고 하는데, 정권은 오로지 야당 탄압으로 맞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비공개 최고위회의에서도 “긴급민생프로젝트와 관련해 입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해외 사례는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 액션 플랜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민주당 실무 라인은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정책처럼 명분은 있지만, 예산편성권이 없는 야당 입장에선 밀어붙일 뾰족한 수단이 없어서다. 한때 당 일각에선 169석 의석수를 활용해 9가지 정책을 한 데 묶어 특별조치법으로 입법하자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정책위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난색을 보이며 일단락됐다.
일단 민주당은 9가지 재정정책을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과 개별입법으로 나눠서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세웠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핀셋 물가 지원금은 추경에 반영하고,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 상환을 감면하는 ‘한국형 PPP’(고정비 상환 감면 대출제도)는 입법으로 추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구상 자체가 고금리·고물가인 현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고금리 시대에 맞춰 긴축했는데, 곧바로 추경을 하면 수요를 자극해 물가를 올리고, 그게 또 추가적인 금리 상승 압력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신음하는 계층에 대한 추경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라며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됐다. 경제 전문가 출신인 민주당 의원은 “지원책을 내기 전에 국채 발행을 할지, 추경을 할지, 추경을 하면 재원 조달은 어디서 할 건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이 ‘30조’만 덜렁 발표한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프로젝트의 골자인 대출 이자 지원에 대해 “은행에 가계 부채를 관리하라고 하면서 정책자금도 지원하라니, 은행도 헷갈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광역단체장이나 대선 후보가 아닌, 제1 야당 리더가 된 이 대표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는 “‘9대 프로젝트’는 이 대표가 그간 주장해 온 ‘퍼주기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예산편성권은 정부·여당이 갖고 있는데, 아직도 본인이 대선 후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민주당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지닌 정당답게, 경제 상황에 맞는 진단과 대책을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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