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北대납' 김성태 미스터리..."두단계만 풀면 제3자 뇌물죄"

최모란, 손성배 2023. 1.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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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회장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수원지검으로 압송된 김 전 회장은 현재 수원지검에서 조사받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17일 김성태(55) 쌍방울그룹 전 회장이 해외 도피 8개월 만에 국내로 압송되면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건 미스터리에 가까운 대북 송금 의혹이 풀릴 수 있을지다. 김 전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최근 수원지검 수사팀은 대북 송금 미스터리 규명에 가장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입해 왔다. 그 결과 검찰은 쌍방울그룹이 임직원 수십명을 동원해 국내에서 환전한 돈을 개인 소지품에 숨겨 출국하는 ‘쪼개기 송금’ 방식으로 북측 인사들에게 건넨 돈이 640만 달러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먼저 구속 기소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의 공소장과 최근 재판에선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의 공식 남북경제협력 사업인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이 문제의 시발점으로 거론됐다. 이날 열린 이 전 부지사의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나온 쌍방울그룹 전 비서실장 A씨는 “(쌍방울이 경기도 대신 북한에 스마트팜 사업비) 50억원을 지원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과 쌍방울 측이 이 사업비(약 50억원)를 대납한 과정과 배경은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화영이 발표한 ‘스마트팜’…김성혜 “쌍방울 지원” 요구


이화영(59)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2018년 10월 20~23일 방북한 뒤 북한을 방문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고위 관계자와 6개 사업에 대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아시아 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개최와 ▶황해도 지역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 ▶옥류관 남한 1호점 개설 ▶임진강 유역 남북 공동관리 등이다. 이 중 스마트팜에는 북한 황해도 지역의 1개 농장을 시범농장으로 지정해 개선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설명도 달렸다. 북한 측에서 가장 관심을 보인 사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경기도의회에서 “스마트팜과 관련된 첨단기기 등을 북한에 전달하는 것은 대북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해 관련 예산은 편성되지 않았다. 지원이 지지부진하자 북한 측은 공공연하게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도 이날 재판에서 “도의회에서 승인이 나질 않아서 (쌍방울이 경기도가 지원하기로 했던 스마트팜 사업비를 대신) 지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김성혜 북한 통일전산책략실장과 함께 찍은 사진. 현재는 삭제됐다. 안부수 회장 페이스북 화면 캡처


북측에 인사에게 건넬 돈의 전달 창구이자 북측과 경기도, 또는 북측과 쌍방울그룹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난 안부수 회장의 공소장에도 같은 정황이 드러나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안 회장은 쌍방울 김 전 회장, 방모 부회장 등과 2018년 12월 말 중국 단둥에서 김성혜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실장 등 북측 인사 2명이 만나 대북사업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 실장은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을 약속했는데 아직 아무런 지원이 없다”며 “쌍방울그룹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비용 5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제안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김 실장의 제안을 받은 뒤)안 회장과 김 전 회장, 방 부회장 등은 대북사업을 추진할 기회를 얻기 위해 북한 조선노동당 또는 그 산하기관인 조선아태위에 스마트팜 비용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했다”고 적었다. 쌍방울은 단둥 협의 직후인 2019년 1월에만 여러 차례 걸쳐 임직원을 동원한 ‘쪼개기 송금’ 방식으로 150만 달러(약 19억8000만원)를 북에 전달했다. 검찰은 쌍방울이 북한 고위 인사들에게 건넨 금액을 총 640만 달러(당시 환율로 72억원 상당)로 추산하고 있다.


쌍방울의 대리 지원, 경기도는 알았나


김 전 회장은 국내로 송환되기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즈니스를 위해 개인 돈을 (북한 고위급 인사에게) 전달했다”고 대북송금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재명 대표를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대북 송금이 자신의 배임·횡령 혐의와는 무관하며, 경기도나 이재명 당시 도지사의 뜻과도 관계가 없다는 취지가 포함된 말이다.
2018년 1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리종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환담을 하고 있다. 국제대회 현장에는 쌍방울 임원들도 참석했다. 빨간색 동그라미 왼쪽이 쌍방울그룹 부회장 방모씨(구속기소), 우측은 양선길 현 회장이다. 경기도

검찰은 북측의 스마트팜 사업이 50억원 대납요구가 대북송금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상 대납이 완결된 셈이고 그 이후에도 금품 전달이 계속된 결과가 640만 달러라는 것이다. 검찰은 스마트팜 지원 사업비 대납이 김 전 회장의 단독 결정인지 이 전 부지사 등 경기도 측의 적극적 개입의 결과인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또 이재명 경기지사가 그 과정을 보고받아 알고 있었는지도 검찰의 관심사다.

법조계에선 쌍방울의 대북송금에 경기도 관계자의 요청이 있었을 경우 그 의사 결정에 관여한 공무원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사 향배에 따라 제3자 뇌물죄도 검찰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쌍방울그룹이 경기도 대북사업(스마트팜 지원) 비용을 대납해 얻은 이익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또 이 과정에서 쌍방울을 상대로 경기도 차원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면 관련 인사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모란·손성배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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