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내부 총질은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고승욱 2023. 1. 18.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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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양보도 불가능한 정치 오직 단일대오 강조하는 여야
정당이 갖는 공직 추천 기능은 당내 민주주의 전제하는 것
낡은 프레임 버리고 자유로운 지도력으로 개인 의사 집약해야

지금 우리나라 정당들은 내부 총질이라는 홍역을 앓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무대에 오른 건 나경원 전 의원이다. 벌써 세 번째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대표’였던 이준석 전 대표가 시작이었다. 다음은 ‘분탕질치는 암덩어리’가 된 유승민 전 의원이다. 지금 나 전 의원에게는 ‘인사청문회에 갈 수 없는 결함을 가진 반윤(反尹) 우두머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국회 권력을 틀어쥔 야당의 전방위적 공세를 막는 데 앞장서기는커녕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비난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 비난에는 노골적인 대선 불복 분위기가 내년 총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전제돼 있다.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할 수 없는 전쟁 상황. 그래서 내부 총질은 용납할 수 없는 중범죄다.

더불어민주당도 내부 총질 때문에 시끄럽다. 이재명 대표는 “총구는 밖으로 향해야 한다”고 새삼 강조했다. 불과 1주일 사이 성남FC 사건 검찰 조사,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송환, 위례·대장동 사건 소환 통보라는 3연속 강타가 쏟아졌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서서히 당으로 번진다. 당내 반명(反明) 목소리도 커졌다. 최근 정치 상황과 무관하다지만 친문 인사들의 포럼이 출범했고, 개딸들은 미국에 있는 이낙연 전 대표를 갑자기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당이 술렁댄다. 검찰의 정치공작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사법리스크 존재 자체까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다른 말을 하면 당장 적에게 이용당한다. 그래서 총구는 밖으로 향해야 한다.

이렇게 상황이 엄중하니 “내부 총질은 정말 하면 안 되나”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당연히 안 된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질문에 답이 포함된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총질의 사전적 정의는 총을 쏘는 일이지만 정상적인 사격을 뜻하지 않는다. 이성을 잃고 총을 마구 쏴대는 짓거리에 가깝다. 삽질은 삽으로 땅을 파는 일이지만 성과 없이 헛힘을 썼다는 의미로 쓴다. 적에게조차 총을 쏴야지 총질은 안 된다. 그러니 어떤 경우라도 내부 총질은 용서될 수 없다. 총질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동료가 아니다. 아군일지라도 제정신을 잃었기에 적군보다 더 위험하다. 이념과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는 정당 안에서 이 말은 정치를 같이 못 하니 당을 떠나라는 의미와 같다. 집권 여당이나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에서 쉽게 나올 말이 아니다.

정당은 정부라는 공적 권력과 시민사회라는 개인적 영역을 가장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통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자유로운 선거로 뽑는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는 그런 이유로 성립한다. 그런데 누가 그 많은 피선거권자 중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릴 후보를 추려내는가. 주민이 50만명이고 유권자가 30만명인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후보 10명이 나왔다면 어떤 정치적 과정이 개입된 것인가.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정당이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역할을 수행토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그래서 정당이 전략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을 후보로 내세우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권자가 주어진 보기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에 저항하지 않는 것도 이 시스템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정당을 정치적 이념과 목표가 같은 사람들이 모인 자발적 결사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건 19세기까지 유럽에 등장했던 정치적 친목단체로서의 정당을 설명하는 표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정당은 자유로운 지도력을 통해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집약하여 국정을 책임지는 공권력으로 매개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정의했다(91헌마21). 개인을 공직에 추천하는 기능을 빼고 정당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당은 ‘자유로운 지도력’과 ‘개개인의 의사 집약’은 실종되고 ‘공권력을 매개하는 기능’만 고도로 발달했다. 그건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파벌에 불과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독재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정치 조직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내부 총질이라는 강압적 프레임이 버젓이 용인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개헌을 몇 번 하더라도 결국 제자리 걸음이다. 이 잘못된 프레임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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