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운명보다 강한 의지

2023. 1. 1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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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에 짓눌려 일어서기조차 힘든 때가 있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문제에 직면할 때가 그러하다. 상황은 바뀐 게 없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무기력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무의미 혹은 공허감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마음을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마음에도 무게가 있다는 증거다. 칼 야스퍼스는 죽음이나 재난, 유한성의 자각 등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태를 가리켜 ‘한계상황’이라 했다. 한계상황은 일종의 벼랑 끝 체험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은 그 자리에 철퍽 주저앉거나 실존적 도약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질서 정연하다 여기던 것들이 뒤죽박죽 뒤섞이고, 확실하다 믿었던 것들이 회의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든든하다 생각하던 것들이 속절없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지러움증을 느낀다. 바야흐로 영혼의 어둔 밤이 도래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12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7.9의 지진은 불과 47초 만에 샌프란시스코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 스탠퍼드대 초대 학장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잠에서 깨어나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가 입은 피해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그가 동료들과 함께 30년 동안 모아온 물고기 표본들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암담했다. 표본을 담아놓았던 유리병은 대부분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표본들은 뭉개지거나 잘린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참담한 상황이었다. 그보다 더 암담했던 것은 그가 학명을 부여했던 표본들의 이름표가 온통 뒤섞여버린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혼돈이 지배하는 그 현장에서 그는 바늘을 꺼내 물고기 표본의 몸체에 이름표를 달아주기 시작했다. 광기처럼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동료 교수들은 남아있는 표본이 마르지 않도록 밤새 물을 뿌려주었다.

미국의 과학 전문기자 룰루 밀러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이 놀라운 상황을 눈에 보일 듯 그려 보인다. 혼돈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반항적이었던 코린트의 왕 시시포스는 신들로부터 산정으로 커다란 돌을 밀어 올리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돌은 산정에 이르는 순간 다시 바닥까지 굴러 내린다. 시시포스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 돌을 밀어 올려야 했다. 알베르 카뮈는 이것을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 존재를 다 바쳐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이라 규정하면서, 내려가는 길의 허망함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시시포스를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숭고하지만 그 마음이 그릇된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집요할 정도로 자기 일에 몰두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가 확신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고 있다. 또 유럽에서 시작된 우생학을 받아들여 ‘사회의 부적합자’라 여겨지는 이들을 제거하려 했다. 그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지나친 자기 확신과 오만은 자웅동체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 슬며시 찾아드는 것이 폭력의 유혹이다.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동화시키려 할 때 생명은 질식하게 마련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의 검질김을 유지하면서도 겸손함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모델이 있다. 예수님은 당시 성전 체제에 기대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살던 이들의 몰이해와 불신 속에서 사셨지만 고통과 소외 속에 살던 이들을 향한 사랑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 확신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것은 예수 정신과 무관하다. 각 사람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그 마음이야말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부활은 그 마음이 불멸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말씀을 붙들고 혼돈과 공허의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할 때다.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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