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크라이나 전쟁, 빨리 끝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전쟁이 미친 영향은 심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이는 심화하던 미·중 대립과 맞물렸다. 러시아와 중국은 연대를 강화했다. 결국 미국과 서방을 한편으로 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다른 편으로 하는 대립구도가 더욱 분명해졌다.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제재와 그 여파로 에너지, 식량, 금융, 무역에 이르기까지 국제경제에 악영향이 커졌다.
당연히 한반도도 영향권에 들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에 동조했고 한국은 미국 등 서방과 함께했다. 한반도에서도 한·미·일과 북·중·러 간의 대립선이 두드러졌다. 이제 많은 한국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안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면서 전쟁이 언제 끝날지 묻고 있다. 이 전쟁도 종국에는 협상으로 수습될 것이다. 협상으로 가는 경로는 몇 가지 변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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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황 및 양국 전투의지 고려하면
조기 휴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한미일-북중러 구도 갈수록 뚜렷
장기화할 땐 중·러와 관계 숙제로
」
첫째 변수는 전투상황이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어느 쪽도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휴전 가능성이 커진다. 각론을 보면, 러시아는 전선에서 밀려도 쉽사리 휴전하지 않으려는 관성 속에 있다. 반면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지속해서 밀리면 휴전을 권할 개연성이 크다. 지금은 전투가 국지적으로 치열한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러시아는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휴전협상이 가동될 가능성은 적다. 러시아는 조만간 대공세를 할 태세다. 그 결말을 보아야 전쟁의 향배를 일차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변수는 전쟁지속 역량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이 있는 한, 전쟁을 계속하려고 하므로, 서방이 언제까지 지원할지가 관찰 포인트이다.
러시아의 경우 내부의 전쟁 지지도가 관건이다. 러시아는 장기전에 능한 역사를 자랑한다. 러시아 지도부는 집요하게 전쟁을 계속하면 결국 서방은 물러선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구력이 이번에도 가동될지는 불확실하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침공을 당한 후 방어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그 경우에 단합과 저항력이 생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민적 공감이 부족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선제공격이므로 사안이 좀 다르다. 만일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이 정권의 기반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 휴전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주요 지원세력인 중국도 영향을 미칠 요소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 구도상 러시아의 패퇴를 원치 않으므로 러시아의 대패가 예견되면 휴전을 권할 것이다.
이러한 변수를 전제로 몇 가지 세부 시나리오를 추출할 수 있다. 러시아는 머지않아 있을 공세에서 실패하더라도 타협하기보다 재공세를 준비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반격하여 크림반도마저 탈환할 기세라면 러시아는 추가 동원령을 내리거나 전술핵 카드로 위협할 수 있다. 크림반도는 양보하기 어려운 레드 라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러시아는 좀처럼 열세에서 휴전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러시아의 공세가 성공할 경우에는 두 개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는 우크라이나가 일로 패퇴할 경우다. 서방은 휴전으로 우크라이나의 완전 붕괴를 막으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우크라이나가 다소 밀리는 경우다. 우크라이나는 전투를 계속하며 역전을 노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적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가 일로 패퇴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올해에는 양측 간에 승기를 잡기 위한 공방전이 지속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에도 우크라이나가 크게 패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장기전으로 들어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전쟁지속 역량을 테스트하려 할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장기전을 하려면 국민적인 지지가 필요한데 이 점은 확실치 않다. 만일 러시아 내에서 전쟁 종식 동력이 나오는 경우에는 휴전이 앞당겨질 수 있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것은 휴전의 형태다. 전투의 임시 봉합인지, 안정적인 전투 종식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러시아는 임시 봉합으로 재침의 기회를 열어 두려 할 것이다. 러시아가 자주 구사하는 ‘동결된 분쟁(Frozen Conflict)’ 만들기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재침을 방지할 서방의 안전보장을 얻어 안정적인 전투 종식을 기하려 할 것이다. 서방이 일정한 안전보장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이를 막으려 할 것이다. 요컨대 전쟁은 상당 기간 지속할 개연성이 더 크다. 휴전이 되더라도 임시적일 수 있다.
한편 휴전 여부와 관련 없이 이 전쟁은 이미 세계질서를 위태롭게 바꾸어 놓았다. 진영대결은 첨예해지고, 서방의 단합과 러시아의 약화로 형세는 중·러 진영에게 불리하다. 중·러 진영 내에는 불만에 찬 러시아가 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과정에서 미국 편에 서면서 중·러와 멀어졌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과제를 던진다. 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위험 요소를 내포한 새 질서에 잘 대처해야 한다. 소원해진 중·러와의 관계도 관리해야 한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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