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퍼스펙티브] UAE, 이란과 대립하면서도 대화의 창 열어둬
‘기회의 땅’ 아랍에미리트의 외교술
먼저 아랍에미리트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아랍어에서 정치 지도자를 나타내는 말 중에 아미르가 있다. 지도자, 장군, 사령관, 왕자라는 뜻이 있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믿는 사람들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아미르가 다스리는 공동체를 ‘이마라’라고 한다. 복수는 ‘이마라트’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에미리트(Emirates)는 이마라트의 영어 표기이고, 여기에서 영문 복수어미(s)를 빼고 한글로 옮긴 말이 에미리트다. 아랍어도 영어도 아닌 국적 불명의 한글 표기다.
아랍에미리트의 공식 아랍어 국명을 번역하면 아랍아미르국연방(연합)이 무난하다. 일본은 아랍수장국연방(首長國連邦), 중국은 아랍연합추장국(聯合酋長國)이라고 쓴다. 연방이나 연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아랍에미리트는 여러 나라가 하나로 뭉친 국가다. 여러 주가 뭉쳐 미국을 이룬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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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영국에 국방·외교권 넘긴 아미르국 7개국이 결집해 연합국 구성
미·영 등 이익에 휘둘려 불편함 겪었지만 국제정세에 현명하게 대처
이란과 3개 섬 영유권 놓고 52년째 대립…중국 통해 다시 국제여론전
최근 한국 원자력·에너지·투자·방위산업 등에 300억 달러 투자 밝혀
」
영국보호국에서 연방으로 독립
오늘날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고 있는 7개 아미르국은 영국에 국방과 외교권을 넘기는 보호협정을 체결하여 협정국가(Trucial States)가 되었다. 1956년 수에즈 전쟁으로 체면을 구기고, 이스라엘의 6일 전쟁 승리를 도왔다는 의심을 사 아랍 산유국의 경제 반격으로 파운드화의 추락을 겪으면서 영국은 ‘수에즈 동쪽’을 더는 경영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영국은 1971년에 페르시아만 주둔 영국군을 철수하겠다고 1968년 선언했다.
7개 협정국은 영국군 철수 선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독립보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는 강대국 이웃을 견제할 힘이 절실했다. 영국군 주둔 경비를 댈 테니 철수하지 말라고 영국을 구슬리기까지 하였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연방이다. 영국군이 완전히 페르시아만을 떠나기 14일 전인 1971년 12월 2일에 6개 아미르국이 손을 잡고 아랍에미리트를 결성하였다. 이듬해 2월에 라으술카이마가 합류하여 오늘날까지 7개국 연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보호 우산 아래 있던 바레인과 카타르의 합류를 기대했으나 이들 국가는 참여를 거부하고 독립의 길을 걸었다. 연방의 문호는 원하는 나라에 여전히 열려있다.
3개 섬 영유권 놓고 이란과 대립
아랍에미리트가 영국군 주둔을 원한 것은 이란 때문이다. 1971년 영국군이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직전인 11월 30일 이란은 샤르자와 라으술카이마가 각기 자국 영토로 여기는 섬을 ‘강점’했다.
철수 전 영국은 섬 영유권 분쟁을 무난하게 마무리하기 위하여 협상을 주도했지만, 사실 영국은 이란 편에 서 있었다. 1970년 6월 이란 국왕은 더글러스 홈 영국 외무장관에게 섬을 이란에 반환할 것을 요구하면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섬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영국 정부를 대표하던 외교관 루스는 “아부 무사와 툰브 섬 소유권을 인정받아 만족해야만 이란이 페르시아만 남쪽 해안에 아랍연방이 들어서는 것을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영국은 이란 국왕에게 영국군 철수 전에 대툰브와 소툰브를 돌려주겠다는 뜻을 비밀리에 전했다.
주이란 영국 대사관은 “영국군이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이란군이 1971년 11월 30일 논의의 주제였던 섬들을 장악했다”는 전문을 본국에 보냈다. 아부 무사는 북쪽은 이란이, 남쪽은 샤르자가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1992년부터는 이란이 단독으로 지배하고 있다. 샤르자는 아부 무사를 두고 이란과 협상이라도 했지만, 라으술카이마는 이란과 툰브 섬 문제를 논의하라는 영국의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내 땅을 두고 빼앗아가려는 나라와 협상할 수는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전까지 줄곧 샤르자와 라으술카이마가 이란이 장악한 섬의 영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동조하던 영국이 갑자기 얼굴빛을 바꾼 이유는 이란을 향후 페르시아 지역 안정 유지에 중요한 나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란군이 섬을 점령할 당시 바로 근처에 있던 영국 군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국 역시 섬의 영유권 분쟁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그럴 의향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영국이 떠난 자리를 이란이 메워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최근 비밀 해제된 영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영국이 문제의 섬을 이란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한 결정을 이란군이 진주하기 전에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알고 있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가 출범한 이래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부 무사와 툰브를 이란이 빼앗아 간 땅으로 여기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장악의 요충지
그런데 1979년 혁명으로 이란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정이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영국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아랍에미리트의 섬 영유권을 지지했다. 새로 들어선 이란의 정권이 영국과 미국의 적이기 때문이다.
툰브 영유권을 주장하는 라으술카이마는 사끄르 국왕이 호메이니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혁명의 성공을 축하하고, “당신이 무너뜨린 지난 정권과 타락한 갱들이 고대부터 줄곧 라으술카이마의 땅인 두 섬을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굳이 다시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라며 섬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란은 “조용히 하고,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만큼 돈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란은 아부 무사와 툰브는 강제로 점령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제국 시절부터 이란의 땅이라고 왕정 시대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다. 잠시 뺏긴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는 말이다. 원상회복이지 강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섬의 위치는 호르무즈 해협과 가깝다. 혁명 직후 초대 대통령 바니 사드르는 아랍에미리트에 섬을 돌려준다면 이란혁명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랍 국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결국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르는 수로와 해협 자체를 통제할 텐데, 왜 그런 선물을 굳이 적국에 줄 필요가 어디 있느냐며 반문했다. 비록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혀 탄핵당하고 프랑스로 망명하였지만, 바니 사드르가 섬을 두고 한 말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란 정부의 시각을 반영한다.
중국이 다시 불붙인 영유권
그런데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이란이 극도로 싫어하여 아예 입에 올리려고 하지 않는 세 섬을 아부 무사, 대툰브, 소툰브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관련국 양자가 협상하여 영유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란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하였으니 이란이 노발대발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불같이 성내는 이란을 달래기 위해 중국은 바삐 움직였지만, 일단 아랍에미리트가 섬을 분쟁지역으로 전 세계에 알린 효과는 상당하다. 이란으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1971년 연방이 성립하기 직전에 섬을 뺏기고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아랍에미리트가 이란에 3개 섬 반환을 요구하며 대립해 온 상태가 52년째로 들어섰다. 흥미롭게도 둘은 싸우면서도 대화의 창은 활짝 열어두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영국의 보호협정 아미르국이 결집하여 국가를 이루고 영국과 미국이 내세운 열강의 이익 때문에 불편함을 꽤나 길게 겪었지만,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현명하고 끈기 있게 대처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중동 국가로는 우리의 최초이자 유일한 ‘특별 전략적 동반자’이다. 우호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아랍에미리트가 피아 구분조차 어려운 국제사회의 현실을 헤쳐나가는 현명한 움직임을 보고 배우자. 친구처럼 지혜롭게 우리도 길을 찾는 노력을 기울일 때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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