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선거제 개편, 밥그릇 다툼
2019년 취재를 위해 국회 본관 4층을 자주 찾았다. 2020년 21대 총선의 규칙을 논의했던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가 그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정개특위의 쟁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었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반대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자들은 기대를 가졌다. 득표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이 강화되면 양당제가 약화하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정치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 정개특위 회의장을 찾는 건 대체로 낮은 연차의 기자들이었고, 그런 기대를 가진 것도 정치부 경력이 짧은 그들이었다. 한 선배는 “지역구는 의원에게 목숨과 같은데 한 석도 줄이기 힘들 것”이라고 냉소했다.
실제로 그랬다. 민주당이 그해 1월 내놓은 애초 개편안은 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원수는 200명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수는 100명으로 하는 안이었다. 3월엔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으로 바뀌었고, 비례대표의 연동률도 100%에서 50%로 줄었다. 12월엔 민주당이 주장해 비례대표 의석수가 50석으로 또 쪼그라들었다.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 단 한 석의 지역구도 줄지 않았다. 연동률을 적용하는 비례대표 수도 30석으로 제한했다. 석패율제도 도입되지 않았다. “다양한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비례대표 숫자를 늘려야 한다”(1월 김종민 민주당 의원)와 같은 정의로운 말들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민주당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렇게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은 위성정당과 함께 180석을 가져갔다. 위성정당 덕분에 10석을 더 얻었다. 양당 독식은 20대 총선보다 더 강화됐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하며 바꾼 선거제는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였다. 민주당이 유독 비열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너’의 밥그릇보다 ‘나’의 밥그릇이 중요하다. 국회에서 그 밥그릇이 가장 쨍그랑 부딪힐 때가 선거제 개편 논의 때다.
내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선거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선거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자”는 아름다운 말들이 국회에서 또 나오는데, 마치 방향 없이 흘러왔다 흘러가는 풍문처럼만 들린다. 풍문이 지나간 자리에선 또다시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 충실한 먼지 풀풀 나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윤성민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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