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은 제2의 고향” 여기에 우리 외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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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300억 달러 투자는 오랫동안 쌓인 신뢰의 성과
“저는 대한민국 영업사원”…실용적인 전술도 중요
윤석열 대통령이 3박4일간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을 마무리했다. 동행한 국내 기업인들과의 만찬에서 스스로 “저는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고 밝혔듯 최대 성과는 투자 유치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300억 달러(약 37조원)의 투자를 약속했고, 이는 공동성명에도 담겼다. 300억 달러는 UAE가 체결한 국가 간 투자 협약 중 최대 규모다. 지난 한 해 한국이 해외에서 유치한 직접투자 규모 305억 달러와 맞먹는다. 총 48건의 양해각서·계약도 체결됐다.
중동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왕실의 젊은 지도자들이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경제 구조 혁신에 몰두하고 있다. 석유로 번 돈으로 석유 고갈 이후를 준비한다. 공격적인 원전 투자를 비롯해 UAE는 탈(脫)석유 에너지와 방위산업 등에 관심이 많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중심으로 총사업비 5000억 달러(약 620조원)가 투입되는 사막 속 미래도시 ‘네옴시티’ 등을 추진 중이다. 이런 흐름에 제대로 올라탈 수 있다면 우리가 성장의 돌파구로 기대하는 ‘제2 중동 붐’도 멀기만 한 얘기는 아니다.
‘제2 중동 붐’ 현실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이번에 확인됐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한국에 대한 신뢰로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를 계기로 쌓여 온 양국 간 신뢰가 바탕이 됐다는 뜻이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가동을 시작한 바라카 원전 1, 2호기는 수도 아부다비 전력의 60%, UAE 전체 전력의 15%를 담당한다. 계약부터 상업운영 개시까지 공기를 늦추거나 하는 약속 위반 등의 문제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원전 수주 당시 이명박 대통령(MB)은 당시 왕세제로 사업을 주도했던 무함마드 대통령과 수차례 통화하며 프랑스로 완전히 기울었던 판세를 우리 쪽으로 돌렸다.
MB는 회고록에서 “감정과 우정을 중시하는 중동 국가의 정서를 고려해 ‘형제국 같은 협력관계’를 강조하고, 원전 외에 그들이 관심 있는 군사·교육·기술 분야 협력을 약속한 게 주효했다”고 했다. 2010년 방한해 특전부대 시범을 본 무함마드 대통령은 “세계 특전부대 중 한국 특전사가 최고”라며 파견을 요청했다. 그래서 아크부대(Akh Unit)가 그 이듬해 UAE에 파견됐다.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를 뜻한다. 무함마드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했다는 “한국은 제2의 고향”이란 말 속엔 14년에 걸친 이 같은 오랜 신뢰 구축의 역정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의 각오처럼 “내가 대한민국 영업사원”이라는 실용의 마인드,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는 신뢰의 축적, 상대방의 정서까지 꿰뚫는 치밀한 전술,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 세일즈 외교에 적용될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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