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어디에… 4050 경단녀, 머나먼 ‘비긴어게인’

신준섭 2023. 1.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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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미래다!] <1부> 아이 울음소리 사라졌다
③ 경제활동 중단 40∼50 여성들


경기 용인시에 거주 중인 주부 A씨(42)는 경력이 단절된 지 올해로 8년째다. 2008년 지역 농협에 입사해 금융 업무를 담당했던 A씨는 고민 끝에 2015년 퇴사를 결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퇴사 당시 2011년에 첫 애가 태어난 후 아이를 양육하며 출퇴근하는 일이 버거웠다”고 말했다.

A씨 일과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퇴사 전까지만 해도 A씨 첫째아이는 친정 부모님 손에 컸다. A씨는 아이를 차에 태워 친정 부모님 집에 데려다준 뒤 출근길에 올랐고, 퇴근할 때는 아이를 태우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데 친정 부모님이 직장이 위치한 용인시에서 꽤 떨어진 성남 분당구에 살다 보니 체력적 한계에 부딪혔다고 한다. 주중에는 아예 친정에 머물며 출퇴근하고 주말에나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시작됐다. 원치 않게 시작한 주말부부 생활은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A씨는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 생활에는 만족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A씨는 ‘사회에서 나의 역할이 없다’는 점에 갈증을 느낀다고 한다. 공허함과 현저히 저하된 성취감. 대부분의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겪는 공통된 감정들에 A씨도 노출돼 있다. A씨는 “대학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기회만 된다면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최저치로 떨어진 한국 출산율 이면에는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든 현실이 존재한다. A씨 사례는 특별하지 않고 주변에서 자주 목격된다.


17일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경단녀는 139만7000명에 이른다. 이 중 91.3%인 128만3000명이 결혼, 임신·출산, 육아라는 세 가지 요인 때문에 경단녀의 길을 택했다. 특히 A씨처럼 육아를 힘들어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이는 59만7000명으로 전체의 42.7%를 차지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사회 진출과 함께 자아 성취를 우선시하는 여성들에게는 ‘독배’가 되고 있다. 자연스레 결혼은 우선 순위에서 멀어진다. 2016년 사상 처음으로 30세를 넘어선 한국의 여성 평균 초혼 연령은 2021년 기준 31.08세에 도달했다. 사회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초혼 연령 우상향 추이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학력일수록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느끼는 점도 학력 수준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19~49세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이들 중 38.6%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를 학력순으로 세분화해 보면 대학원 이상 졸업자 중 어렵다는 응답을 한 이의 비중은 42.0%로 전체 평균을 3.4% 포인트 상회했다. 대학 졸업자(40.6%)나 고졸 이하(33.8%)보다 더 육아에 부담을 느끼는 셈이다.

소득 수준에서도 비슷한 추이가 나타난다.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의 80% 미만인 이들 중 일과 육아 병행이 어렵다고 답한 이는 34.3%로 전체 평균을 하회했다.


반면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의 80%를 넘는 이들 사이에서는 구간별로 응답자의 38.0~42.6%가 일·가정 양립이 어렵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만 35~39세인 이들의 어렵다는 응답 비율이 46.8%로 가장 높았다.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 위치가 되는 시기다 보니 육아 등 가정일에 어려움을 더 느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육아휴직 기간 확대나 남성 육아휴직 부여, 육아휴직 수당 확대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왔다. 경력단절여성의 사회 복귀를 위한 예산이나 제도적 지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책적 지원은 한국 여성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성취의 장인 민간 영역이 정책과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기획재정부에서 2015년 도입한 경단녀 고용 증대 세액 공제다. 중소·중견 기업이 경단녀를 고용하면 세금을 일정 부분 공제해주는 이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 제도를 활용해 세액공제를 받은 법인은 48곳으로 집계됐다. 80만곳 안팎인 기업 중 단 48곳만이 경단녀를 식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또 다른 난제까지 생겼다. 전체 경단녀 수 자체는 줄고 있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20년에 150만6000명이었던 경단녀는 2년 사이 10만9000명이나 감소했다. 하지만 40~50대 기혼 여성 중 경단녀는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경단녀가 된 가장 큰 이유로 ‘가족돌봄’을 꼽는다. 가뜩이나 출산과 육아도 힘든데 이제는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아직 이 문제까지 연계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저조한 출산율 해법을 묻는 질문에 “(육아를 하는) 여성들은 승진 심사에서 점수가 나쁘다든가 하는 부분적 경력단절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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