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으로 넘어온 기후위기… ‘벌금형 불복’ 녹색활동가들

이형민 2023. 1. 17. 20: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행사 난입에 유죄
재판부 “기후위기 상황 심각…
다만 정당행위로 볼 수는 없다”
기후단체 ‘멸종저항서울’의 활동가들이 2021년 3월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의 당사를 기습 점거해 항의 농성을 하고 있다. 출처 멸종저항서울


17일 서울남부지법 308호 법정. 변호인은 “증인,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긴급성에 비춰 피고인들의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면제)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피고인석에는 여섯 명의 피고인이 앉았다. 이들은 기후단체 ‘멸종저항서울’ 소속 활동가로 2021년 3월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의 당사를 기습 점거해 항의 농성을 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검찰은 20년 넘게 환경운동 활동을 했고 정의당 당직자 경력이 있는 증인에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문제를 잘 설명해주셨다”면서도 “그런데 당직자 생활중 당사 건물 외벽을 탄다거나 하는 형태의 시위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법정에 마련된 36석의 자리는 재판 시작도 전에 방청객으로 가득 찼다.

이날 서울남부지법 형사5단독 윤지숙 판사 심리로 열린 기후활동가 6명의 공동주거침입 혐의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증인을 가운데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당초 이들 6명을 벌금형 20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이들은 “법원 판단을 듣겠다”며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증인은 공항 증설 계획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변호인에게 “항공기는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며 “공항 증설 계획 중단 및 금지는 세계적 추세”라고 답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국내 15개 공항 중 10개 공항이 적자 상태인 상황을 지적하며 “적자 타개를 위해 더 싼 항공권을 제공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급조된 ‘정치 공항’”이라고도 했다.

검찰은 가덕도 신공항 문제보다는 피고인들 행위의 위법성을 입증하는 데 집중했다. 검찰은 “20여년 환경단체 활동을 하며 여러 시위를 많이 봤을텐데 시위 형태에 피고인들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고, 증인은 “물론이다. 성명서를 낸다거나 언론에 알린다거나 하는 방식도 있다. 직접 행동 외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기후위기 시위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인 곳은 남부지법만이 아니다. 두산중공업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참여를 비판하며 경기도 성남 두산중공업 건물 앞 조형물에 수성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기후활동가 두 명의 항소심 마지막 공판이 18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다. 이들도 벌금 500만원 약식기소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었다.

서구권에서 주요 사회쟁점으로 다뤄지며 활발히 전개되는 기후위기 시위가 국내로도 확산되면서 우리 법원도 기후위기 관련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기후활동가 4명의 공동주거침입·업무방해 혐의 사건에 대한 선고가 내려졌다. 이들은 2021년 10월 열린 ‘수소 환원 제철 포럼’ 행사장에 난입해 정부·산업계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1분 연설을 한 혐의를 받는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정인 판사는 이들 혐의를 유죄 취지로 판단하면서도, 당초 청구된 벌금 1200만원의 절반 수준인 550만원으로 감경했다. 판결문에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두 쪽에 걸쳐 상세히 적혔다.

허 판사는 “현재 전세계는 기후위기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1.5℃ 이내로 지구 온도 상승을 막지 못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기후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 전세계에서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여러 가설이 있으나 대기와 해양, 육지의 온난화에 인간의 산업활동이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허 판사는 “기후위기에 실질적으로 대비하자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는 얘기라고 할 수 없다”며 “기후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매우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에게 목적 정당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다만 허 판사는 신고를 거친 적법 시위로도 충분히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공익 목적이어도 여러 합법적 수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행위를 정당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법치주의에서는 그 결과의 실현도 중요하지만 절차 및 과정의 적법성도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