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왜 안 내리죠?… ‘산지 폭락’ 소고기값의 모순
‘한우 가격이 폭락했다.’ 이 한 문장을 놓고 한우농가와 소비자 반응은 180도 다르다. 한우농가는 “벼랑 끝에 내몰릴 만큼 심각한 위기”라 말한다. 소비자 사이에선 “여전히 한우는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우 가격을 둘러싸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 인식 차이가 이토록 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소비자에겐 피부에 와닿지 않지만, 한우 도매가격은 실제로 폭락했다. 17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16일 기준으로 6~7개월 암송아지 1마리의 산지 경매가격은 197만6000원, 숫송아지는 290만4000원이다. 1년 전보다 각각 32.7%, 26.2%나 떨어졌다. 1등급 한우의 등심 도매가격은 16일 기준으로 ㎏당 5만5642원이다. 약 1년 전인 지난해 1월 17일 6만7940원과 비교하면 18.1% 내렸다.
산지 가격은 30% 안팎 떨어지고 도매가격은 20% 가까이 하락했는 데도, 소비자가격의 변동 폭은 이보다 적다. 지난 16일에 1등급 한우 등심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당 9만8640원으로 1년 전 11만2510원보다 12.3% 하락했다. 한우농가 입장에서는 ‘폭락’이 맞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폭 하락’ 수준이다.
한우 도매가격의 가파른 하락은 비극적 일을 부르기도 했다. 한우협회에 따르면 우시장이 열린 지난 13일 경북 예천에서 한우농가를 운영하는 한 농민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우협회는 “축사를 신축하면서 큰 금액의 빚을 지게 됐는데 최근 금리 인상, 사료비 폭등에 소 값 폭락이 겹치면서 경영난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는 산지 가격의 하락세를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소매가격뿐 아니라 식당의 가격표에서도 ‘한우 가격 폭락’은 먼 얘기다. 한우를 ‘시가’로 판매하지 않는 한 외식업자들이 메뉴판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서다. 서울 중구에서 한우전문식당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몇 개월 동안 한우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외식 가격으로 반영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2년 동안 가격표가 그대로다. 도매가격 오른다고 가격을 올릴 수 없었는데, 내린다고 바로 내리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한우협회 등에서는 복잡한 유통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우농가는 우시장에서 경매로 소를 판다. 도매상은 이 소를 부위별이 아닌 ‘마리 단위’로 사들인다. 구매한 소는 도축 이후에 상품으로 판매 가능하다. 도축에는 비용이 든다. 인건비, 물류비 등이 유통 비용으로 추가된다.
소 한 마리를 사들여 각종 부산물을 제거하고 나면 고기로 팔 수 있는 부위는 60~66% 정도다. 부위마다 유통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등심은 소 한 마리에서 8%도 안 된다. 소 한 마리의 경매 가격이 떨어져도 등심 부위 가격은 크게 낮추기 쉽지 않다. 유통업체가 마진을 남길 수 있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도매상 등 유통업자들은 산지 가격의 변화를 중간 유통과정에서 즉각 반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산지 가격이 급등했을 때에도 소비자가격에 바로 반영하는 대신 마진을 적게 남기면서 장사를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경험과 미래 위험까지 떠안으면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산지 가격에 유통이 출렁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경기도에서 15년째 축산물유통업을 하고 있는 신모(50)씨는 “산지 가격을 유통 가격에 곧바로 반영한다면, 중간 도매상은 불확실성을 안고 장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유통 환경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급등할 때도 있고, 급락할 때도 있기 때문에 중간 정도 수준에서 가격을 맞추는 게 가격 안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생산자 단체라고 할 수 있는 한우협회는 장기적으로 ‘도매가격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정부는 회의적이다. 취지에 공감하지만 시장 가격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한다. 농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라고 할 수 없다.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정부는 협조를 구하는 상황”이라면서 “공급 조절, 소비 촉진, 사육·출하 구조 개선 등 중장기 계획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우농가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대책 마련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 보니 한우농가에서는 “소 끌고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으로 가자”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무대책으로 일관하면 설 연휴 이후 ‘정부 무용론’을 비판하는 대대적인 ‘소 반납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문수정 구정하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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