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목숨과 원칙 사이,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이 떠오른다

김성호 2023. 1. 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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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35] <교섭>

[김성호 기자]

 
▲ 교섭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무질서한 세계에서 군사집단이며 도적떼가 강대국 여행자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건 흔한 일이다. 고대제국 로마의 전설적 영웅 줄리어스 시저조차 해적에게 납치돼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사례가 있었을 정도다. 중세 유럽이 낳은 걸출한 작가 세르반테스도 해적에게 납치됐으나 가족이 몸값을 마련하지 못해 수년의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오늘날이라고 선진국 시민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사례가 없을 리 없다. 아라비아 반도 앞에선 소말리아 해적들이, 아프리카 대륙 서편에선 나이지리아 해적들이, 말라카 해협 인근에선 또 그 일대를 주름잡는 해적들이 지나는 배를 붙잡아 선원이며 선박의 값을 흥정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그뿐인가. 서아시아 일대로 선교를 떠난 이들이 테러단체 등에 붙들려 한국 정부가 구출작전에 나선 사례도 적지 않았다. 개중에선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고 비극적으로 결말이 난 사건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선교 목적 등으로 여행금지국가에 출국하는 이들이 보고되는 가운데 테러단체와 국가의 협상이 자주 논란이 되곤 한다.
 
▲ 교섭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07년,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교섭>은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몇몇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특히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23명의 한 교회 신도들이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납치됐다 그중 21명이 생환한 사건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탈레반은 납치한 이들 중 리더 격인 목사와 다른 남성 한 명을 살해해 충격을 던졌다.

21명의 신도가 무사히 귀환한 데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정부는 무장단체인 탈레반과 대면협상까지 하는 파격적 노력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더 이상의 인명피해 없이 국민들을 살려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전력을 기울여 협상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은 적잖은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으나 꼭 그만큼의 비판과 직면하기도 했다. 여론 역시 무장단체와 협상을 한 국가의 국민은 테러단체의 타깃이 되기 쉽다는 비판론으로 기울기도 했으며, 여행금지국가로 무리하게 출국하여 선교를 하는 특정 종교에 대한 거센 비난이 이어지기도 했다.

감독 임순례는 약 40여일에 이르는 탈레반과 한국 정부 대표단의 교섭을 영화로 옮겼다. 스물이 넘는 생명을 두고 무장단체와 전대미문의 협상을 벌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할 밖에 없어 화제를 모았다. 외교부의 열정적 외교관 재호(황정민 분)와 눈앞에서 자국민이 살해되는 모습을 목격했던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 분) 사이의 미묘한 대립과 이해를 통해 피랍사건 대응을 둘러싼 두 가지 목소리를 슬며시 끼워 넣는다.
 
▲ 교섭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 편에선 자국민의 목숨보다 중한 가치는 무엇도 없다고 한다. 얼마가 드는 협상자금이든, 브로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든, 테러단체와의 협상이든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편에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 테러단체와의 협상이 낳는 수많은 외교적 문제들, 이를테면 자국민이 테러단체의 주요 목표가 되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다는 점이다. 
피랍된 시민을 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세금을 지출하게 된다는 것 역시 정부 입장에선 부담되지 않을 수 없다. 고위 공직자들이 이를 외면하려 하고 피가 끓는 실무자들은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는 과정이 영화 내내 얼마간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 교섭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단선적인 전개, 교훈적인 결말... 그러나

영화는 탈레반이 제시한 협상시한을 늘리기 위해 현지 대표단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병렬적으로 그린다. 한 과제를 이행해 시일을 조금 늘리거나 과제 이행에 실패해 희생자가 발생하는 식이다. 같은 방식으로 조여드는 시간 가운데 피랍된 시민을 구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임순례 감독의 선택은 영화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한편, 다소 지루하게도 만든다. 위기와 해소, 다시 위기와 해소, 다시 위기와 해소라는 요새 웹소설에서나 유행하는 단선적 전개가 보다 파격적이거나 복합적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만 것이다. 개입된 여러 인물의 고뇌며 입장을 보다 가까이서 그리는 대신 주인공인 두 인물의 직업적 사명이며 인도주의적 태도만이 강조돼 상황을 보다 다면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 영화 속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은 어떻게든 생명을 살리려는 선함의 극치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사실과 다르다'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철저한 극영화라면 보다 전격적으로 다채로운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사명감 투철한 주인공들보다는 욕망에 휘둘리고 나약함에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가까이서 그리는 게 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 역시 이런 류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진부한 것이어서 적잖이 아쉬웠다. 임순례 감독의 안정적 연출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저 안정적이기만 해서는 시대를 거슬러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작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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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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