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와 베트남 축구, 화려했던 5년 3개월의 여정

윤현 2023. 1. 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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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미쓰비시컵 준우승 마지막으로 작별

[윤현 기자]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 결승에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 베트남축구협회 홈페이지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가 16일 막을 내린 2022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 준우승을 끝으로 5년 3개월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결승에서 박 감독과 '유종의 미'를 거두려던 베트남은 태국에 막혀 우승 트로피를 놓쳤으나,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쌓아 올린 박 감독은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박 감독은 결승이 끝나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국민과 축구 팬께 꼭 우승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하다"라며 "베트남 대표팀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비난보다는 격려를 부탁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내일부터 더 이상 베트남 감독이 아니지만, 항상 베트남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이 될 것"이라며 "서로 좋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다"라고 작별 인사를 남겼다.

동남아 축구 변방서 FIFA랭킹 100위권 팀으로 

박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그 덕분에 K리그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의 사령탑을 지냈으나 뚜렷한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 

그런 박 감독에게 베트남축구협회(VFF)가 손을 내밀었고, 박 감독은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에 올랐다. 

박 감독은 동남아에서도 축구 변방이었던 베트남을 과감하게 바꿔놓았다. 국제 경쟁력을 위해 선수들의 체격을 키우고, 탄탄한 수비 위주로 전술을 짰다. 베트남 대표팀은 빠르게 성장했고, 2018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의 전신인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의 우승을 이뤄내며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에서 거둔 성과를 소개하는 아세안축구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 아세안축구협회
 
베트남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며 박 감독에게 청소년 대표팀까지 맡겼고, 박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에서 눈에 띄는 선수들을 성인 대표팀으로 발탁하며 눈앞의 승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팀으로 만들었다.

박 감독과 베트남의 성공은 거침없었다. 2018년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이끌고 나선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 사상 첫 4강 진출에 성공했고, 2022년에는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까지 진출하며 절정에 달했다.

처음으로 월드컵 최종예선에 나선 베트남은 비록 본선 진출은 이루지 못했으나 중국을 3-1로 꺾으며 첫 승리를 거뒀고, 강호 일본과 1-1로 비기는 등 몇 차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 결과 베트남은 박 감독이 취임식에서 목표로 내건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 10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축구 넘어 베트남 사회가 열광한 '쌀딩크'

박 감독의 지휘 아래 성장한 베트남 선수들은 K리그뿐만 아니라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무대에도 진출하며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베트남 매체 <VN익스프레스>는 "박 감독이 재임한 5년간 베트남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과거보다 수백 배 높아졌다"라며 "박 감독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남겼고, 그의 리더십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박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키워냄으로써 후임자에게도 유산을 남겼다"라며 "현재 베트남 대표팀은 (박 감독 덕분에) 새로운 감독이 더 높은 목표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갖췄다"라고 강조했다.
 
 박항서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베트남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계정
ⓒ 베트남축구협회 페이스북
 
박 감독의 업적은 베트남 대표팀에만 그치지 않았다. 박 감독의 활약으로 동남아 축구에서 한국 지도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신태용(인도네시아), 김판곤(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대표팀을 이끄는 한국인 사령탑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축구를 넘어 베트남 사회 전반에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데도 큰 몫을 하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으로 이어졌다. 

박 감독은 향후 거취에 대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나도 모르지만,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범한 사령탑으로 사라질 뻔했으나, 베트남에서 뒤늦게 축구 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운 박 감독의 다음 도전이 무엇이 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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