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소운동만 죽어라 고집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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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훈 기자]
▲ 피트니스 운동기구 |
ⓒ 정무훈 |
대한민국 여자 역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장미란이다. 당시 장미란 선수는 326kg을 들어 올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장미란 선수는 대한민국 여자 역도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고 현재까지 역도 종목의 유일한 여자 금메달이다. 하지만 나는 장미란 선수가 아니다. 내가 역도를 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 어제까지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바벨 앞에 서 있다.
'역시 근력 운동은 하는 게 아니다.' 근력 운동을 한 다음 컵에 물을 마시는데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숟가락 들 힘도 없다(사실 숟가락은 들 수 있지만 어깨도 아프고 팔도 쑤신다). 시간을 피트니스를 시작하기 2시간 전으로 되돌려 보자.
아무리 근력운동이 좋다고 해도
피트니스 3일차 되니 슬슬 근력 운동기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셀프 트레이너(나 자신)가 나를 자극한다. '회원님, 이제 근력 운동을 시작하셔야죠.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하셔야 체력을 키울 수 있어요.' 나는 얼른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러닝머신을 한 시간이나 뛰는데 무슨 운동을 더 해요?', '이미 운동량은 충분하지 않나요?'
셀프 트레이너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은 지방을 감소시켜 주지만 근육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아요', '군살을 뺄 수는 있지만 근육량을 늘려야 체력이 강해지죠.' 근력 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히 알지만 여전히 근력 운동은 나에게 비호감이다. 셀프 트레이너가 집요하게 나를 설득하려고 한다. '일단 운동기구들하고 친해진다고 생각하고 한 번씩만 해보세요.'
그동안 피트니스 시작하고 근력 운동 기구는 애써 외면했다. 내가 피트니스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근력운동 때문이다. 애써 힘들게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면서 생고생하고 싶지 않다. 울룩불룩 엄청난 근육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복근을 갖고 싶지도 않다(사실 부럽기는 하지만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만들고 싶지는 않다). 평소 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근육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운동으로 만든 조각 같은 몸을 자랑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몸을 만드는 사람들은 즐기는 운동을 하지 않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의심했다(하지만 솔직히 몸이 멋있고 근육이 대단하기는 하다).
그러나 근력 운동은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점점 자연 감소한다고 한다. 근력 운동은 뼈를 강화해 주고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 또한 근육량이 많아질수록 칼로리 소모가 많아져 적정한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아무리 근력 운동이 좋다고 해도 여전히 피하고 싶다).
옆에서 트레이너에게 PT(개인 지도)를 받는 사람을 보면 더 겁이 난다. 트레이너는 회원에게 맞는 적정한 운동량을 지도해 주고 운동 효과를 극대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트레이너는 엄격한 특수부대 교관이나 저승사자처럼 무섭다. 더구나 PT를 받는 사람들의 괴로운 표정과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들으면 PT 받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진다.
트레이너가 PT를 받는 회원에게 '회원님, 열 개만 더 해 보세요.' 목소리에 힘을 실어 격려한다.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운동기구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셀프 트레이너가 자신감을 심어 준다. '회원님, 근력 운동을 해야 코어 근육이 강해져서 몸에 힘이 붙어요', '처음에는 무거운 중량은 버겁겠지만 가벼운 중량부터 시작하면 점점 자신감이 생길 거예요.'
▲ 피트니스 운동기구 |
ⓒ 정무훈 |
내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날을 오기를
근력 운동은 여전히 나에게 버거운 상대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운동기구만 노려보고 있을 수는 없다. 우선 만만해 보이는 상체운동 기구에 도전한다. 이름도 어려운 운동기구들이 쭉 버티고 있다. 마치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시위하는 것 같다. 기구 옆에는 몸의 어떤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지 자세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러나 몸의 근육을 왜 부위별로 발달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운동기구 앞에 앉는다. 운동기구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찍으니 사용법이 동영상으로 나온다(정말 자상하고 편리한 세상이다). 우선 심호흡을 하고 최소 중량을 들어 올린다. 마치 고문 기계처럼 무시무시한 기구들이지만 중량을 가볍게 해서 들어 올리니 운동기구가 움직인다(당연하지만 정말 신기하다).
피트니스 안에서는 중량과 근육이 계급이 되는 공간이다. 누가 얼마나 무거운 중량을 들어 올리는가에 따라 타인의 시선이 달라진다. 물론 아무도 중량을 기록하거나 남에게 과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거운 중량을 드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근육만 봐도 운동량을 알 수 있는 곳이 피트니스다.
지나가던 트레이너가 근력 운동을 하는 나에게 인사를 하며 격려의 말을 건넨다. '회원님, 근력 운동을 처음에 하면 다음 날 근육통이 심할 겁니다', '당연한 과정이니 며칠 아파도 포기하지 마시고 꾸준히 하시면 힘이 점점 붙을 겁니다.'
피트니스에서 중량 운동을 처음 하면서 생각한다. 살면서 우리는 매일 피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생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어려움에 순간순간 직면한다. 그럴 때마다 주춤 뒤로 물러나고 힘든 상황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구도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감당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피트니스에 들어야 하는 바벨의 중량은 삶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버거워도 내 삶의 무게는 결국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한번 부딪쳐 보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장미란 선수가 처음 역도를 배웠을 때를 상상하며 나도 오늘 바벨 앞에 선다. 비록 오늘 내 앞에 바벨을 들어 올리지 못해도 괜찮다. 피트니스에서는 중량을 조절해서 다시 시도하면 된다. 용기를 내서 당당하게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구는 들어 올리지 못해도 언젠가는 내 삶의 무게는 들어 올리는 날이 올 것이다. 마음속으로 기합을 크게 외친다. 으랏차차! 한번 부딪쳐 보자! 이제 다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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