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 소개할 한국 작가 찾아라" 수퍼갤러리가 바빠졌다
데이비드 즈워너 파리,고 윤형근 전시
페이스 서울, 2월2일 김택상 전시 개막
81세 이건용, 7월 페이스 뉴욕 큰 전시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선 지난 6일부터 한국 작가 3인전 ‘지금 우리의 신화(Myths of Our Time)’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색채, 도상, 표면 등 어느 것 하나 밋밋한 게 없다. 제이디 차(40), 정희민(36), 한선우(29) 세 젊은 작가의 에너지가 캔버스를 뚫고 나와 한파를 녹여버릴 기세다. 오스트리아에서 출발한 이 갤러리가 2021년 10월 한국에 진출한 이래 서울에서 한국 작가 전시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에서 만난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그동안 무엇이 한국의 창의성을 주도하는지 알고 싶었고, 한국의 DNA를 이해하고 싶었다"며 "한국의 뛰어난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다. 한국에 지점을 열기 전부터 이런 기회를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막 전부터 우리 해외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7일 데이비드 즈워너 파리에선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고(故) 윤형근(1928-2007)화백 개인전이 개막됐다. 윤형근은 방탄소년단 RM(김남준)이 사랑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즈워너 파리의 새해 첫 전시를 장식한 이 전시엔 개막 당일에만 관람객 약 1000명이 방문했다. 앞서 2017년 2020년 뉴욕에서도 윤형근 전시를 연 이 갤러리는 현재 윤 화백의 도록을 준비 중이다.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 전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로팍은 안젤름 키퍼, 도널드 저드, 알렉스 카츠 등 거장들을 전속으로 거느린 곳으로, 이 갤러리에 한국인 작가로는 이불이 있다.
윤 화백의 전시를 열고 있는 즈워너는 가고시안, 페이스와 더불어 세계 최정상급으로 꼽히는 화랑이다. 즈워너 대표는 지난해 세계 미술전문지 아트리뷰 선정 '(미술계)파워 100인' 중 9위에 오른 인물. 제프 쿤스와 리처드 세라, 쿠사마 , 볼프강 틸만스 등 쟁쟁한 작가가 여기 소속이고, 한국 작가로는 윤 화백이 유일하다.
해외 갤러리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더욱 두드러졌다. 2014년 파리에서 박서보 개인전을 열었던 글로벌 갤러리 페로탕은 지난해 말(11월 4일~12월 17일) 상하이에서 이배 개인전 '먹의 숨결'을 열었고, 홍콩에선 지난달 17일부터 심문섭 개인전(28일까지)을 열고 있다. 한편 고 서세옥(1929~2020) 화백과 서도호(미술가)·서을호(건축가) 두 아들, 손자들의 작품을 모아 '삼세대(三世代)'전(20일까지)을 열고 있는 리만머핀 서울은 다음달 2일부터는 미 조각가 헬렌 파시지안(89)과 김택상(64) 화백 2인전을 연다.
올해 가장 주목을 모으는 것은 오는 7월부터 열리는 이건용(81)의 페이스 뉴욕 전시다. 페이스는 알렉산더 칼더, 장 뒤뷔페, 아그네스 마틴, 마크 로스코 유족 및 재단과도 수십 년 관계를 유지해오는 수퍼갤러리다. 서울·뉴욕·런던·제네바 등 전 세계 9곳에 지점을 운영하며, 이건용은 한국 작가 중 이우환에 이어 두 번째로 페이스 전속 작가가 됐다. 이영주 페이스 서울 디렉터는 "이 전시는 작가의 첫 뉴욕 전시인 동시에 2개 층에서 선보이는 큰 규모의 전시"라며 "한국 행위예술 선구자로 1970년대부터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해 온 여정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소개할 계획"고 말했다. 국내에선 작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인 이 화백이 해외 컬렉터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글로벌 갤러리들이 왜?
해외 갤러리들이 지금 한국 작가 소개에 나선 이유가 뭘까. 첫째는 높아진 국력이다. 이건용·김택상이 전속된 국내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최근 독일과 영국 등 해외 정상급 갤러리에서 한국 중견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K-아트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대중음악과 영화, 드라마, 음식 열풍에 이어 이제 비로소 한국미술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팍 대표는 “한국은 풍부한 작가들을 기반으로 미술 시장이 형성됐다,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미술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부터 수 십명의 후보 작가 목록을 만들고 지난해까지 작업실 20여 곳을 직접 방문하며 작가를 찾았다"며 " 세계 시장에 선보일 작가를 계속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손엠마 리만머핀 서울 디렉터는 "2019년 키아프를 방문한 라셸 리만 대표가 김택상 작가 작품을 처음 보고 관심을 가졌다"며 "이후 해외 컬렉터에게 소개할 작가로 선정해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손 디렉터는 "컬렉터들은 항상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다"며 "해외에 소개할 한국 작가목록을 계속 만들며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 리안갤러리 대표는 "지난해 9월 프리즈 서울이 열리며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국내에 이미 준비된 작가들이 적지 않다. 우선 국내 갤러리가 나서 이 작가를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주 페이스 서울 디렉터는 "해외 컬렉터들은 수 십년간 자기 작업을 일궈온 중견 작가들을 찾기 원한다"며 "작가들은 미술관 전시와 국제 비엔날레 참여, 도록 발간 등의 다채로운 작업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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