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걸까 [넥스트브릿지]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김의석 기자]
▲ 지난 1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
그러나 '선언'만으로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혁신'은 '혁신의 지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용도 나오고 방법도 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도 추진력도 나올 수 있다.
문제는 목소리 높이에 비하여 '노동개혁'의 지향과 내용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개혁은 슬로건에 불과하고 낮은 지지율 회복을 위해 '노동계 두드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화물연대 대응으로 지지율이 높아진 시점에서 목소리가 더 올라갔다는 점을 보면 이러한 시각이 합리적 의심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자연스럽게 무게가 실린다.
▲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중 노동분야 과제 |
ⓒ 대통령실 |
사회복지정책 중 '[약속10]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에서 노동 이슈로 6개의 과제(49~55)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대통령이나 고용노동부 장관이 얘기하고 있는 '노동개혁'과 관련된 것은 50번과 51번 과제 중 일부다. 아무리 봐도 절박한 대한민국 혁신의 키포인트로 보이지 않는다.
2022년 고용노동부 예산을 보더라도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예산안 감축에 따라 22년 대비 약 6%(기금 제외 일반·특별회계 기준) 감소했다. 키포인트인 노동시장 개혁 내용과 관련한 예산이라고는 '한국형 Onet(직무별 시장임금 정보시스템) 구축 설계' 정도 외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시스템'은 이전 정부부터 추진되어 오던 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이 예산에 반영된 것은 실질적으로 없다고 봐도 된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의 권고문과는 방향이 같을까?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개혁 과제 설정을 위해 설치한 고용노동부 산하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의 권고문은 어떨까? 그나마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방향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이들의 권고문이 유일해 보인다.
연구회는 노동시장이 직면한 변화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이 초래하는 노동시장 활력 감소', '기술혁명과 경제구조 변화',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즉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이슈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의 노동시장'이 제외된 것은 아쉽지만 노동시장 관련 주요한 이슈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한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다른 입장이라 하더라도 연구회가 제기한 이슈가 현재 노동시장이 마주한 현실이라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대통령이 외치고 있는 '노동개혁'이 연구회가 바라본 '노동시장 개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회의 솔루션 자체도 사실 노동개혁 솔루션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나마 연구회가 제기한 지향마저 대통령실로 오면서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리고 있다.
'노동개혁'이 '미래 노동시장을 위한 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 기득권 손봐주기' 정도로 변질되어 버린 듯하다. 연구회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노동조합 회계투명성' 문제가 노동개혁 주요 이슈로 갑작스레 대통령실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노동개혁'이 연구회가 얘기하는 '미래를 위한 노동시장 개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지난 12월 22일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실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복지정책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노동시장 수요자의 요구에 교육정책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역으로 복지와 교육정책, 그리고 경제정책은 노동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물가 정책은 직접적으로 임금에 영향을 미치고, 낮은 사회보장 수준은 임금과 복지후생비 부담을 기업에 높인다. 교육과 시장의 미스매치는 불필요하거나 추가적인 부담을 노동시장 주체들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
노동개혁과 함께 외치는 연금개혁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결국 노동시장의 문제와 한 몸일 수밖에 없고, 교육 개혁도 개혁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노동시장 주체의 불필요한 부담을 제거하고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노동시장 개혁과 연동된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이라면 이 정도의 중요성에 부합하는 노동시장 내 이슈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운영 중인 제도의 일부 개선 정도를 가지고 '노동개혁'이라고 칭하는 것은 '하는 일 없이 듣기 좋게 말하는 거구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미래 국가 산업경쟁력과 국민 복지 확보를 위한 노동시장 혁신 전략과 솔루션'을 내어놓아야 한다.
더욱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러한 노동시장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있다. 앞서 연구회가 제기한 이슈들은 하나 같이 더 이상 준비를 늦출 수 없는 문제이다. '이중 노동시장으로 인한 소득 양극화 심화' 문제는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제기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갈등의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소득격차가 익숙한 이슈라면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은 우리가 앞서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의 문제이다. 이미 인구감소는 현실화가 되었으며, 20대의 인구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경제 규모를 감안하였을 때 70~80년대식 고성장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인구감소와 저성장 이슈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베이비붐'으로 불리는 급속한 인구 증가 시대의 경험으로는 대응해 볼 수 있는 성격의 이슈가 아니다.
또한 산업구조 개편은 언제나 오는 것이지만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와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경제 구조의 변화는 IMF 시절에 맞먹을 산업구조의 혁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의 정교한 대책이 요구받고 있다.
추가적으로 노동력의 수도권 집중화 문제는 지방의 공동화 현상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노동시장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일부 제도를 수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래 노동시장을 새롭게 설계하고 구축해 나가야 할 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기득권 손보기'로 소비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이러한 상황임에도 '노동개혁'이 '노동기득권 손보기' 수준의 이야기로 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노동기득권이 한국 사회를 얼마나 훼손하고 있는지는 내 차원에서는 확인된 자료가 없으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노동기득권 이슈가 아무리 큰들 앞서 말한 '노동시장 혁신'의 문제보다 클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앞서 말한 '노동시장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이중소득 문제는 논외라 하더라도 인구 감소와 낮은 경제성장률, 산업구조 재편을 노동조합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다. 정부 추진과제 중 정부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예산 사용밖에 없다. 그나마도 국회를 통과하여야 한다.
정부 힘만으로 노동개혁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우리나라 경제와 민주주의는 성장했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올바른 혁신 방향을 설정하고, 노동시장의 플레이어들이 혁신에 나갈 수 있도록 설득하고, 그들이 지혜를 모으고 추진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절대로 플레이어를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은 보수 정권, 진보 정권 나누어서 볼 문제가 아니다.
나름 노사관계에 대해 지켜보는 입장에서 '노동개혁'이라는 말이 이렇게 소비되고 사라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일은 때가 있고, 지나간 후에 후회한들 어쩔 수 없다.
* 필자 소개: 김의석은 공인노무사로 20년 조금 넘게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현장의 노동시장 변화와 노사관계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나은 변화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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