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 일본... 윤석열 정부, 마지막 불씨마저 외면하나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한일 외교당국이 16일 도쿄에서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는 국장급 협의를 했다. 이날 일본 외무성에서 열리는 국장급 협의에는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참여했다. 서 국장이 한국 언론에 한일 협의 결과를 설명하는 모습. |
ⓒ 연합뉴스 |
지난 12일 강제징용(강제동원) 공개토론회 때 외교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미쓰비시와 일본제철 등을 대신해 피해자 및 유족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방안을 공표했다. 제3자가 채무를 떠안는 이 같은 대위변제에서는 제3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정부 산하인 재단이 먼저 지급한 뒤 전범기업을 상대로 상환 혹은 변상을 청구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상황이 있다. 강제징용 문제로 국민적 질타를 받는 윤석열 정부가 구상권 행사를 통해 다소나마 만회를 시도해볼 여지가 있다.
재단이 지급한 뒤 구상권을 행사하면,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금전을 받아준 것 같은 모양새가 어느 정도 발생할 수 있다.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대위변제 방식이 당연히 옳지 않지만, 구상권이 활용되면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조금이나마 드러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 16일자 <산케이신문>에 실린 사설 '징용공 한국 방안, 우려 지점이 몇 개 있다' |
ⓒ 산케이뉴스 |
"일본 측이 해결책을 받아들일 최저 조건으로 하는 것은, 한국 재단이 대신 떠안은 배상금의 반환을 피고인 일본 기업에 청구하는 구상권의 포기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한국이 책임을 떠안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사후에 행사될지 모르는 구상권까지 명시적으로 포기해야 문제 종결에 합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일본의 태도다.
일본이 구상권을 경계하는 것은 자국의 책임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기업에 채무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불가역적으로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위 기사는 말한다. 일본이 책임져야 할 채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구상권 역시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다.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가 열린 16일 <산케이>는 사설을 통해 자국 정부의 요구 사항을 좀 더 노골적으로 전달했다. '징용공 한국 방안, 우려 지점이 몇 개 있다'라는 사설은 한국 외교부가 12일 공표한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한국이 대신 변제해준다'는 논리 자체를 비판했다.
사설은 "일본 측이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전제가 틀렸다"고 단언한다. 그런 의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 지배와 징용 자체가 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징용령이라는 법령에 기초해 쇼와 19년 9월부터 노동한 조선반도 출신자는 존재했지만, 부당한 강제노동은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사설은 히로히토 일왕(천황) 재위 19년 차인 1944년 9월부터 합법적으로 동원된 한국인은 있어도 강제노역을 당한 한국인은 없다고 거짓말한다. 그 이후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강제동원된 한국인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이 책임질 일도 없으므로 '한국이 대신 변제해준다'는 논리는 잘못됐다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한국 측이 징용공 문제를 만들었다"라고 역공한다. "피해자는 일본 측이다"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한다. 그런 다음, 강조한 것이 구상권 청구를 포기하라는 메시지다. "재단이 대신 변제한 배상금의 반환을 장래에 일본 기업에 요구하지 않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는 것이 가능하다며 향후 수령에 동의를 구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피해자들이 이 방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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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한국 정부의 해결책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재단 등이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포기한다는 것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다양한 일본 기업들이 재단에 자율적으로 기부하는 형태라면 용인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이 구상권을 포기하면 다수의 일본 기업이 자발적 기부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식민지배 해결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에게 기부금은 줄 수 있어도 배상금은 줄 수 없다는 일본의 뻔뻔하고 고압적인 태도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대위변제 방식으로 문제를 종결하는 것을 환영한다. 그러면서도 구상권이 행사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구상권을 경계하는 상황은 한국 정부의 협상 카드가 될 수도 있다. 굴욕적이고 수세적인 협상으로 내몰린 윤 정부가 만회를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윤 정부는 그런 의욕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의 16일 협의에 관한 보도자료에서 "서 국장은 지난 1.12(목) 개최한 강제징용 해법 관련 공개토론회 등 국내적 분위기를 전달했다"라며 외교부의 노력을 표시했지만, 16일 언론보도에 나타난 외교부 관계자들의 발언은 외교부가 한국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외교부 당국자가 16일 협의 뒤 기자들에게 한 말을 전한 국내 보도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일본의) 호응 조치가 나오고 그걸 토대로 원고분들을 한 분 한 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지, 구상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전범기업을 위해 대위변제하면 구상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에 관한 언급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상권을 통해서나마 일본의 책임을 드러내는 문제에 대해 우리 외교부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외교적 성과가 외교관의 수완보다는 국가의 역량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한국이 이처럼 수세에 몰린 것은 윤 정부가 우리의 국력을 이 사안에 제대로 투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 대일관계에서 성과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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