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믿음생활] 랩으로 신앙고백, 힙한 예수님

신은정 2023. 1. 17. 10: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많아진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특히 젊은 세대 이탈이 심각합니다. 형식보단 본질을 중요한 그들에게 교회는 그저 딱딱하고 가기 어려운 공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그 청년들이 믿음 생활을 멀리하는 건 아니더군요. 그들은 변화된 형태로 말씀을 접하고 공유하고, 교제했습니다. [슬기로운 믿음생활]에서는 지치고 지친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신선하게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별빛처럼 빛나는 청춘들이 교회에 다시 가득하길 기도하며….

문상일 목사가 그린 '마이베프 힙져스' 그림 묵상 중 하나.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은 예수님이 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문상일 목사 제공

“제가 오늘 뮤비(뮤직비디오) 촬영 중이라 다 끝나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기자가 문상일 목사와 나눈 문자.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라는 첫 답변에 기자는 놀랐다.

인터뷰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가 받은 답변에 순간 놀랐다. 다른 이에게 섭외 요청을 했던가 착각이 잠시 들었기 때문. ‘랩하는 목사’로 기자 휴대전화에 저장된 문상일(40) 목사는 현재 청주 서문교회에서 5년 가량 청년 사역을 하고있다. 그 전엔 10년 정도 청소년을 돌봤다. 서울 토박이인 문 목사는 박명룡 목사를 따라 청주에 왔다.

문 목사는 “교회 청년들이 나보고 프로 N잡러라고 한다”며 웃었다. 재주가 많다는 칭찬에 겸손의 대답이었다. 부목사로 교회 청년부를 섬기면서 유튜브에 신곡 랩도 내고, 인스타그램엔 그림도 올린다. 모두 하나님 말씀을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랩네임 '문스타'로 변신하면 문상일 목사의 표정은 달라진다. 문상일 목사 제공


랩네임 '문스타'로 변신하면 문상일 목사의 표정은 달라진다. 문상일 목사 제공

문 목사가 그림 묵상을 시작한 것은 박 목사 덕분이었다. 문 목사의 아버지는 목회자였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할까 했지만, 이끌리듯 신학대에 진학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꺼졌다. 그는 “담임목사님이 국민일보에 변증 칼럼을 연재했는데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분야였다. 부목사인 제가 그림을 좀 그리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 제게 그림을 부탁하셨다”며 “그 칼럼이 책으로도 출간됐는데 그곳에 작가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고 했다. 그림 덕분에 칼럼이 잘 이해됐다는 독자 반응에 잊었던 꿈이 깨어났다.

문상일 목사가 그린 첫 일러스트. 박명룡 담임목사의 부탁으로 변증칼럼에 그림을 그렸다. 국민일보 화면 캡처

5년 전쯤부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그림 묵상을 올리는 방구석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그리는 예수님 그림은 다른 것과 다르다. 요즘 말로 힙(hip·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는 뜻)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빨간 도포를 입은 분이 아니다. 선글라스도 쓰고 후드티에 헐렁한 반바지도 입는다. 문 목사는 “김기창 화백의 조선시대 예수님이라는 그림을 보고 시대적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표현이 참 멋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젊은 친구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힙한 예수님을 그려 보고자 했다”고 했다. 가수 선예나 양동근 등 유명인이 소셜미디어에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 교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문 목사 그림을 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터다. 문 목사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청년이, 가톨릭 신자라는 사람이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에 내 그림을 올렸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전해 받을 때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했다.

문 목사는 랩도 한다. 인스타그램엔 ‘작가. 래퍼.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목사가 랩을 하다니 어쩐지 은혜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가사에 욕도 많고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음악 분야라 그런 편견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문 목사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는 “교회에서 새로운 도구는 기성세대와 늘 부딪혔다”며 조명과 비디오 등 미디어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거룩한 분위기를 해친다는 과거 목소리는 지금은 사라졌다. 되레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기타나 드럼은, 뛰면서 찬양하는 건 어떤가. 문 목사는 “나이트클럽이냐고 눈총받던 것인데 지금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선글라스를 쓴 예수님 그림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다. 청년은 열광했고, 그 윗세대는 불편해했다. 한 목회자로부터는 “신성 모독”이라는 댓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여러 교회에서 주보나 현수막에 그림을 써도 되냐는 의뢰를 받을 때 문 목사는 교계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문상일 목사가 그린 '마이베프 힙져스' 그림 묵상 중 하나. 문상일 목사 제공

문 목사는 최근 가수이자 문화 선교사인 서종현 선교사와 함께 작업했고 16일 신곡 ‘여호와 닛시’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2018년부터 랩을 시작해 개인 싱글 8곡을 포함해 9곡이 세상에 나왔다. 특송정도로 해보자는 각오로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그분의 말씀을 좀 더 멋있게 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의 랩네임은 문스타.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잘한다고 학창 시절 친구들이 불렀던 별명에서 따왔는데, 무엇이든 도전하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알아주기 시작하니 이제 더 이상 방구석 래퍼가 아니다”면서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가사 한 줄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고 했다.

서종현 선교사와 협업한 문상일 목사의 신곡 ‘여호와 닛시’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문상일 목사 제공

한 교회의 부목사가 다른 사역을 시도할 수 있었던 데는 담임 목사의 무한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내일 뮤직비디오 촬영인데 오후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목사님께 이야기하면 기꺼이 허락해주신다. 그런 열린 목사님을 만났기에 새로운 도전이 가능했다”며 웃었다.

그림 묵상과 랩 사역의 효과는 남다르다고 강조한 그는 “설교는 일주일 내내 준비돼 강단에서 한번 선포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랩은 플레이리스트에만 들어간다면 반복해서 말씀이 전달되고, 그림은 티셔츠로 입혀지기만 한다면 매일 말씀과 동행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문상일 목사가 그린 '마이베프 힙져스'와 문상일 목사. 문상일 목사 제공

서울신학대(신학과), 동대학원에서 설교학을 전공한 그는 말씀을 전하는 도구의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영상 세대를 위한 영화설교 연구로 신학 석사 논문을 썼을 정도다. 문 목사는 “도구가 무엇인가로 싸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방식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그 도구가 무엇이 되었던 쓰임 받았음을 기뻐하고 그 도구를 통해 한 영혼이 하나님 옆에 가까이 온다면 다 같이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상일 목사가 그린 '마이베프 힙져스' 그림 묵상 중 하나. 문상일 목사 제공


문상일 목사가 그린 '마이베프 힙져스' 그림 묵상 중 하나. 문상일 목사 제공

문 목사가 있는 서문교회는 코로나 시국에도 성도가 줄지 않는 등 큰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그도 젊은 가나안 성도가 요즘 교회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회가 어떻게 변화되야 할 것인가를 묻는 말엔 조심스럽다면서 “저의 묵상은 이렇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 하나님께 실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실망한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자고, 주변에 늘 이야기 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기 시작하면 믿지 않거나 믿음을 잃어버린 이들이 ‘하나님과 만남이 저렇게 좋고 멋있는 거네’라고 생각할 테고, 그러면 그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문상일 목사가 그린 그림 '힙한 예수님'을 그려 넣은 티셔츠. 문상일 목사 제공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