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울먹이던 장관서 女기업인 울림 주는 장관으로
창업 2년만에 적대적 M&A 요구 당해
청문회 답변하며 울먹이던 당시 심정
"20년 사업…역린 같은 기억 떠올라서"
기업사냥꾼에게 당해 검찰 조사를 받던 창업자가 장관 후보로 선 인사청문회장에서 울먹였다. 그리고 여성 장관으로서 여성 기업인 앞에 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야기다. 이 장관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겪은 난관들과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심정, 기업인들과 현장에서 소통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7개월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아본 적 있어요."
이 장관은 벤처창업가 출신이다. 2000년 보안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테르텐’을 설립했다. 창업한 지 2년 만에 한 투자가를 통해 기관 투자를 받았다. 테르텐을 비롯해 전국 7개 스타트업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결과물로 투자를 유치했다. 알고 보니 해당 투자가는 전형적인 기업사냥꾼이었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이 장관은 "투자한 지 반년 후에 배임 혐의로 형사소송을 제기하더라"며 "4억원을 줄 테니 회사 지분을 털고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일로 그는 7개월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승소해 회사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번엔 민사 소송을 걸겠다고 하더라고요. 형사소송은 회삿돈을 써도 되지만, 민사는 개인 돈을 써야 한다고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더군요.(웃음)" 젊은 여성 CEO는 사실 기업사냥꾼의 협박이 무서웠다. 그래도 싸웠고 결국 이겼다.
회사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덕분에 큰 교훈을 얻었다. 그는 "벤처캐피탈(VC)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자들이 고비를 겪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언해줄 수 있는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 힘이 있었다. 이 장관은 "20년 동안 기업을 경영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성공의 기쁨이 아니라 검찰 수사와 2008년 경제위기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것"이라고 했다.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지난해 5월 장관 후보자로 출석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받던 도중 눈물을 보였다. 야당 의원들이 그의 과거 이력을 집중 공격했다. 기업인으로 출발해 정부 내 각종 위원회와 민간 협회에서 직책을 맡은 후 20대 국회 비례대표 30번으로 출마했다가 낙선, 21대 국회 비례대표 당선 등 일련의 활동을 문제 삼았다.
야당의 한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를 개인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방안으로 활용하지 말라"고 쏘아붙이자 당시 이 후보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 스펙을 쌓거나 창업한 기업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울먹이며 답변한 장면은 그날 저녁 뉴스를 장식했다. 이 장관은 그때의 심경을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20년 정도 사업을 하다 보면 역린 같은 기억들이 있어요. 청문회에 집중해야 하는데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감정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청문회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청문회를 본 지인들로부터 ‘이영 오늘 왜 저럴까’ ‘안 하던 행동을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원래 저 정도에 흔들릴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다는 이야기였다.
울먹이던 후보자는 취임 6개월 만에 ‘울리는’ 장관이 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울산에서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개최한 ‘전국 여성 CEO 경영연수’에 참석했다. 전국에서 모인 여성기업인 1000여명 앞에서 강연을 했다. 테르텐 경영 당시 경제위기 때문에 직원들을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한 경험, 차 속에서 혼자 목놓아 울었던 기억, 좋은 제품을 개발했지만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애를 태운 이야기까지 속내를 쏟아냈다.
이 장관은 "지역구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때 강연을 듣던 한 여성 기업인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기업인들끼리는 힘든 경험을 서로 압니다. ‘힘들지?’라고 물으며 어깨를 툭툭 치듯 위로하는 말을 듣는 듯해 눈물이 터졌다고 했어요." 이 장관은 평소 공식 석상에서 여성 기업인으로서 경험한 고충을 나누고, 이를 제도 개선으로 끌어 올리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7월 여성기업주간을 맞아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자금을 빌리러 가도, 융자를 받으러 가도, 고객을 만나러 가도 다 남자였습니다. 내가 남자 고등학교 출신이라면, 군대를 다녀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지금은 법적 허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산소 같은 인프라가 없는 상황입니다. 선수층을 많이 배출한 남자코스는 뛰기 쉬운데, 우리는 돌뿌리와 잡초에 계속 넘어집니다. 여성창업 기업인 출신으로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며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여성기업에 대한 전략적인 육성은 국익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이 장관은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100여개 기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과 함께 ‘경제외교’에 힘쓰고 있다. 19일(현지시간)에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 포럼) 참석해 ‘산업 정책의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 및 발표에 나선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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