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훈 인터뷰] '난 울산 칸셀루' 설영우 "언젠가 대표팀에서 규성이 형처럼"
[풋볼리스트=울산] 김정용 기자= 설영우는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이 종종 밋밋해 보이고, 공격 포인트를 쌓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울산현대의 우승에 도움이 된다면 개인상과 개인기록은 중요치 않다. 현장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믿는다.
▲ 울산 칸셀루, 도움은 청용이 형의 것이어도 좋다
요즘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소집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설영우를 16일 울산광역시 시내 미디어데이를 통해 만났다. 설영우는 윙어 출신 풀백이다. 왼쪽 풀백에서 많이 뛰지만, 가끔 상대 문전까지 치고 들어가 오른발 슛을 시도하면서 오른발잡이 윙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 홍명보 감독은 설영우가 여전히 윙어에 가까운 재능인데 울산을 위해 희생하는 거라며 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설영우는 이미 자리 잡았다. "이제 윙에 대한 감각은 거의 없다. 작년 막판에 윙으로 몇 번 교체 투입됐는데, 스스로 수비형 윙어처럼 뛰고 있더라. 이제 골을 넣어야 하는 윙으로 저는 꽝이다. 수비수가 되어야 한다. 감독님이 내게 미안하다고 하는 줄은 몰랐다. 오른발밖에 못 쓴다고 '왼발 잘라라'라고 말씀하시긴 하는데. 좋은 자극이 되고 왼발 활용을 연구하게 만드는 말씀이다."
그동안 적었던 공격 포인트를 더 늘리겠다는 목표는 있지만, 수치가 소박하다. 그동안 시즌 3도움을 기록하는 선수였는데 올해는 더 많은 경기에 나서면서도 5도움을 하는 게 목표다. K리그 최고 풀백으로 거론되는 선수라기에는 적은 수치다.
"(박)용우 형과 (박)주영이 형이 항상 훈련에서 하는 말씀이 있다. '자기 역할이 있는 거다.' 훈련에서는 저도 욕심을 부려서 직접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를 하려다 미스가 나곤 한다. 그럴 때 형들이 해주는 말이다. 내가 빌드업을 시작하고, 내가 기점 패스를 하면 (이)청용이 형을 거쳐서 골이 난다. 그게 내 역할이고 나 아니면 못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빌드업에 자신이 있고, 뒤에서 공을 잘 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팀을 위해 마냥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빌드업의 시발점이 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설영우가 참고하는 선수는 매 시즌 윙어 이상의 공격포인트를 쌓는 리버풀의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가 아니라, 공격포인트가 적은 맨체스터시티의 주앙 칸셀루다. 칸셀루는 세계 최고 풀백으로 꼽히지만 맨시티에서 지난 3시즌 정규리그 공격 포인트가 3골 10도움으로 적은 편이다.
"저와 유형이 비슷한 건 칸셀루다. 그 선수도 오른발잡이인데 왼쪽으로 뛰면서 그게 그 팀의 색깔이 됐더라. 그 선수보다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따라가고 싶다. 저희 팀도 작년에 큰 색깔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올해도 매 경기는 아니지만 그런 전술을 쓸 수 있다면 감독님께 내 장점을 어필할 수 있다. 그런 플레이를 하니까 공격포인트가 없고, 밋밋하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돋보이지 않아도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한 날은 보람을 느낀다. 저를 매 경기 내보내시는 것 자체가 도움이 돼서 내보내시는 거니까 앞으로도 내 장점대로 계속 뛸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 영권이 형에게 대표팀에 잘 말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K리그 최고 풀백으로 인정받아 왔고, 나이도 어린 편이고, 연령별 대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A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다. 측면 공격력이 좋고, 왼쪽 풀백은 왼발잡이를 선호하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는 분석이 따랐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떠나고 새 A대표팀 감독을 찾는 지금 설영우에게는 다시 기회가 열려 있다.
"(김)영권이 형, (김)태환이 형과 같이 다닌다. 저도 대표팀 못 가는 게 항상 아쉬워서 농담 삼아 대표팀 코치님에게 잘 말해달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영권이 형이 진짜로 말씀드린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말씀도 해주셨다. 다 떠나서 제가 좋은 선수면 뽑았을 것이다. 올해는 모든 게 새로운 판이 됐으니 더 어필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서 대체불가한 선수가 되려 한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윙어인지 풀백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대표팀 승선을 저해하는 건 아닐까. 설영우는 이 대목에서는 엄살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제 장점을 물어보면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 한다. 포지션 문제는 핑계다. 두 자리 다 최고가 되면 더 좋은 선수다. 왼쪽에서는 또 오른쪽에선 어떻게 하면 최고가 되는지 연구해서 대체불가한 선수가 되면 안 뽑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목표는 발탁되는 것이고, 대표팀에서 선발 경쟁이 벌어질 때는 내 색깔을 연구하고 돋보이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되는 울산 수비수 선배, 김영권과 김태환은 설영우가 평소에도 잘 따르는 형이다. "매 경기 우리끼리 소통을 많이 하는데 같은 수비수라 통하는 점도 많다. 지난 1년 동안 형들이 옆에서 좋은 말씀 해 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 주셨다. 저렇게 높으신 분들이 절 데리고 다니는 것도 영광스럽지 않나. 메뉴를 저에게 물어보시는데, 저는 형들 돈 많으시니까 무조건 비싼 거. 돼지 말고 소를 이야기한다. 나도 대접하겠다고 말 했다가 진짜 대접 안 하냐고 형들이 한 마디 하신 적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태환이 형만 사드린 것 같은데, 영권이 형과 자리를 만들 것이다."
▲ 해외 팬 유입 경험자로서… 나도 규성이 형처럼?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규성이 엄청난 숫자의 해외 팬을 끌어 모아 화제가 됐다. 국내 스포츠 전종목을 통틀어 손흥민에 이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2위(292만 명)라는 통계도 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이 부분에서 사실 원조는 설영우다. 2020년 U23 대표팀 소속으로 이집트를 상대한 뒤 이집트 팬들이 대거 유입됐다. 당시 팔로워가 약 3천 명에서 3만 명 이상으로 훌쩍 뛰었고, 댓글마다 '결혼해 주세요' '너무 잘 생겼다'로 도배되는 경험을 했다.
"규성이 형은 같이 축구도 하고 잘 아는 형이라서,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규성이 형이 투입될 때 그냥 변화를 주는구나 생각했지 특별히 잘 생긴지는 몰랐다. 그런데 경기 끝나고 나니까 팔로워가 엄청 늘어 있더라. 그거 보면서 '나도 월드컵에 나갔다면 혹시'라고 생각하긴 했다. 나는 3만 5천 명 정도까지 갔었다. 그런데 금방 빠지더라."
해외 팬들의 사랑은 아직 상상이지만, 해외 진출은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꿈이다. 유럽 구단이 설영우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가 잦았고 설영우도 욕심을 숨긴 적이 없다.
"매 시즌 끝나고 이적시장 열릴 때마다 에이전트와 소통을 많이 하는 부분이다. 꿈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무리해서까지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직은 K리그에서 정점을 찍은 선수가 아니라서 더 인정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최고로 인정받고 나가는 것과, 무리해서 도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크다. 대표팀이 되고 좋은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외국에서 찾을 거고 좋은 조건으로 나가고 싶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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