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의 B컷] ‘유령’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질문할 수 없었던 이유
정진영 2023. 1. 17. 06:40
질문하고 싶은 게 한가득인데 질문을 할 수 없는 아이러니. 기자고 배우고 입만 열면 스포일러가 되는 상황 속에 입을 선뜻 떼지 못 하고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풍경이 영화 ‘유령’ 현장 곳곳에서 벌어졌다.
1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유령’의 언론 시사회. 영화 상영이 끝나면 통상 감독과 배우들이 자리한 가운데 취재진과 질의응답이 펼쳐지는데, 이날 간담회의 시작을 장식한 말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하게 돼 죄송하지만, 대화는 자유롭게 나누시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은 기사에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해서 관객들을 팍 식게 만드는 일을 누가 하고 싶을까. 하지만 도저히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서는 특정 배우의 활약상에 주목하는 질문을 할 수 없으니 이만저만 답답한 상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령’은 항일조직이 조선총독부에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이 중심이 된 영화. ‘유령’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이 호텔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안에서 누군가는 진짜 ‘유령’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색출 작업에 나서고,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치밀하게 숨어들어간다.
추리극의 특성은 ‘누가 범인인가’뿐만 아니라 ‘누가 범인이 아닌가’까지 스포일러가 된다는 점. 때문에 그 어떤 배우에게도 마음 편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그나마 영화의 중후반부부터는 액션이 중심이라 배우들 간 액션 합을 물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마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작진이 포스터 속 이름 순서에까지 얼마나 예민하게 신경을 썼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역시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통상 영화는 개봉을 하기 전에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 기사를 통해 예비 관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령’은 달랐다. 인터뷰 자리에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동안 내내 ‘이건 영화 개봉 전에 내보낼 내용’, ‘이건 영화 개봉 후에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분류해야 했다. 이하늬, 설경구, 박소담 등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이러이러한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여지없이 뒤따랐다.
이쯤 되면 영화를 홍보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속이 갑갑할 듯하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홍보 과정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이다. 대놓고 ‘유령’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시작하는 듯한 영화지만, 러닝타임 중반부에 들어서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이해영 감독이 ‘유령’에서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다. 출연진과 취재진이 합심해 한마음으로 숨겨둔 ‘유령’의 진짜 하이라이트를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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