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책임 면제…민간 주도 경제, 도덕적 해이 논란

장정욱 2023. 1. 17. 0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미분양 민간 아파트 매입 추진
경영 실패 책임 ‘도덕적 해이’ 논란
“정부, 직접적인 시장개입 자제해야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데일리안 DB

정부가 미분양 민간 아파트 일부를 매입해 자금난에 허덕이는 건설(부동산) 시장 충격을 흡수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취약계층 주거 안정,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대응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민간 건설사 경영 실패 책임을 정부가 떠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16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5만8027가구다. 전월보다 1만810가구(22.9%)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악성으로 분류하는 ‘준공 후 미분양’은 7110가구로 이 역시 전월보다 0.5% 늘었다. 미분양 주택이 한 달 사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2015년 12월 이후 7년여만이다.


미분양이 단기에 급증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직접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토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부 공공기관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해 취약계층에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지시한 이후 정책 마련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기존 매입임대사업을 확대해 민간 준공 후 미분양을 매입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매입임대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도심 내 신축 또는 기존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해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취약계층 등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부 직접 개입은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건설사의 시장 예측 실패 등 경영책임을 정부가 대신 떠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부동산 시장 연착률을 위해 다양한 규제 완화를 시행 중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이사 등 사정으로 인한 일시적 2주택자가 1가구 1주택자로 과세 특례를 적용받기 위한 주택 처분 기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달 초에는 서울 등 규제지역을 해제하면서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 중도금 대출 제한, 무순위 청약 자격 등 규제를 대거 폐지했다. 이러한 조처 이후 둔촌 주공 등 일부 단지는 계약률이 오르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지난해 청년 빚 탕감 대책 때도 같은 논란

정부의 시장 개입 문제는 이미 과거에도 비슷한 논란을 겪은 바 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주식과 가상자산 등에 투자했다가 심각한 손해를 본 청년층을 돕겠다며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저신용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청년층’으로 1년간 한시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당시 기존 제도에선 신청 자격이 미달하는 연체 발생 이전 채무자라도 이자를 감면해 주고 상환을 유예해 주기로 했다. 재산을 고려한 채무 과중 정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해 주고, 최장 3년간 원금 상환을 유예해 주며 이 기간 연 3.25%의 낮은 이자율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그때도 계획 발표 이후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무분별하게 빚을 내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린 일부 젊은 층을 왜 세금을 들여 구제해야 하느냐는 비판이다.


이번 미분양 아파트 매입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민간 기업 중심 경제 성장을 추구하면서 다양한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상황에 기업 경영의 결과물까지 정부가 책임진다는 사실에 반대 여론이 거세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공공임대 예산을 그렇게 삭감해놓고 이제야 미분양을 매입임대로 사들인다는 것이 우습다”며 “미분양은 잘 안 팔리는 지역에 지었거나 고분양가이거나 각각 원인이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미분양을 사줘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해온 윤석열 정부가 정작 개입하면 안 될 상황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라며 “건설업체가 어려워지면 정부가 공적 기금을 투입해준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자율 경쟁을 통한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면서 다양한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혜택을 주려는 게 이번 정부의 기본적 경제 철학”이라며 “그렇다면 당연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민간의 몫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시장 상황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직접 개입한다면 그게 어떻게 ‘시장경제’가 될 수 있겠나”라며 “규제를 풀어주고, 세제 혜택을 주는 선에서 그쳐야지 경영 결과물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방식은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