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에 파격, 최후의 카드까지 던진 윤 대통령... 기괴하다

이태경 2023. 1. 17.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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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미분양 주택매입 검토' 발언의 위험성... 진정 '기업국가'로 향해 가나

[이태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연두 업무보고(국토교통부, 환경부)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연두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 발언이 논란이다. 정부에서는 보도자료를 내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일부 언론이 오해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건설사 구하기에 진심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돌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그 이전에 윤 대통령이 '시장=기업'이라고 해석할 만한 발언을 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혼란을 야기한 윤 대통령의 미분양 주택 매입 발언

논란의 발단은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토교통부 2023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해주는 방안도 깊이 있게 검토하라"고 한 발언에서 비롯됐다.

국민일보가 이를 보도(尹 "미분양주택, 정부가 매입 검토하라" 지시)하면서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 지금의 미분양주택을 정부가 전부 매입하려면 27조 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쓰자 정부는 보도 다음 날인 1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즉각 부인했다.

정부가 낸 보도자료 원문 중 일부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정부가 주택도시기금 27조 원을 투입하여 미분양 주택 전체를 매입한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 지난 1.3일 국토교통부․환경부 연두 업무보고시 미분양 주택 관련 대통령 모두말씀*은 미분양주택을 공공기관 등이 매입해 이를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함으로써 위기 관리와 주거복지 강화를 함께 도모하는 방안으로서,
 
* "미분양 주택들이 시장에 나오는데 정부, 공공기관이 이를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를 하는 방안도 깊이 있게 검토해 주시기 바람"
 
ㅇ 미분양 주택 매입은 재정여건, 임대수요, 지역별 상황 및 업계 자구노력 등을 고려하여 그 수준 등을 검토해야 할 사항으로, 27조원의 주택도시기금이 투입된다는 보도는 근거가 없습니다.
 
 
사실 윤 대통령이 한 발언 자체만 놓고 보면 정부가 낸 보도자료 상의 해명에 이렇다 할 흠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 발언이 이른바 '1.3미분양 대책'과 함께 나왔기 때문에 파장이 엄청났다는 사살이다.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한다는 소식과 함께 전해진 1.3미분양 대책은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 대폭 단축 ▲실거주 의무 폐지 ▲12억 초과 주택에 대한 중도금 대출 재개 ▲유주택자 무순위 청약 가능 등 분양에 관한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사실상 전부 해제한 것으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분양 시장과 부동산PF시장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아니냐는 분석도 많았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 공사현장.
ⓒ 연합뉴스
 
파격에 파격을 더한 미분양 대책이 나온데 더해 대통령이 미분양 주택 매입을 검토하라고 발언하자, 시장에서는 정부가 주택도시기금 등을 동원해 미분양 주택을 대거 매입하고 이를 통해 건설업계와 부동산 관련 금융부문을 구제하고, 더 나아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일정 수준 제어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건 윤 대통령의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 발언이 타이밍상 너무나 빨랐고, 원칙과 기준에 대한 제시도 일체 없었다는 사실이다. 통상 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 검토 발언은 시장이 교란상태에 있을 때 사용해야 하는 최후의 카드일뿐더러 해당 기업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일정 규모의 손실(예컨대 건설원가매도 같은)을 전제로 하며 재원과 활용방안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후에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미분양주택 매입 검토 발언은 기존의 이런 상식을 완전히 파괴하고 뛰어넘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자유'를 그토록 목놓아 부르짖는 윤 대통령의 평소 언행과도 배치된다. 정부의 개입을 죄악시하며 거의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던 윤 대통령이 시장 예측에 완전히 실패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하는 건설사들을 직접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정말 기괴하고 낯설다.

윤 대통령은 시장과 기업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닌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윤 대통령의 미분양주택 매입 검토 발언을 이해할 단서는 멀리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신년 업무보고 마무리발언에서 "국가는 소멸해도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기업과 시장 중심의 '산업 시장 정책'을 펼 것을 정부에 주문한 바 있다.

제도와 법률로 시장을 존재하게 만드는 국가가 소멸하면 제대로 된 시장도 존재할 수 없건만(이웃끼리의 물물거래를 시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가는 소멸해도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용감하게 하는 윤 대통령의 만용도 놀라웠지만,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들을 보면 윤 대통령이 기업을 애호하는 정도를 넘어서 기업을 곧 시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컨대 윤 대통령의 "시장에는 국경이 없다. 수익이 보이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이지, 대한민국 시장과 아세안 시장, 미주 시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 없이는 국가안보도 없다. 저는 미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과 그 위에 있는 전투기들을 보면 수만 개의 기업이 보인다", "지금 산업부와 중기부의 역할, 우리 산업정책이라는 것은 기업 정책" 같은 발언들이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윤 대통령의 미분양 주택매입 검토 발언이 이해가 된다. 기업이 시장이고, 시장이 기업이라면 건설사를 돕는 미분양 주택 매입은 시장이 잘 작동하게 만드는 것일 테니 말이다.

기업국가가 갈 길은 공멸 뿐
 
▲ 산자부-중기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발언하는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시장을 곧 기업으로 인식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완전히 그릇된 것일 뿐더러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경제주체 중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윤 대통령이 극단으로 치달아서 그렇지 그 이전 정부들도 정도 차이만 있었을 뿐 한결 같이 기업애호적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의 극심한 양극화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에는 70.3%였는데 2021년에는 55.2%로 격감했다. 반면 기업은 1980년 11.8%에서 2021년 21.9%로 두배 가깝게 폭증했다. 정부가 기업친화를 넘어 기업애호 정책 드라이브를 일관되게 구사했더니 가계는 가난해지고 기업은 피둥피둥 살이 찐 것이다.

기업들이 전부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대기업만 돈벼락을 맞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져 이젠 돌이키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중소기업 중앙회와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한 통계를 토대로 보면 OECD국가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비율(제조업)은 핀란드가 76.2%, 독일이 60.4%, 네덜란드가 58.2%, 일본이 52.4%인데 반해 한국은 고작 32.5%에 불과하다. 대기업이 자본집약적 산업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주요국과 비교할 때 대한민국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위한 생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다 보니 임금 격차도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1980년에 대기업 대비 80.2%에 도달했던 중소기업 임금 수준이, 2020년에는 57.8%로 급락했다. 

통계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결론은 자명하다. 역대 정부가 기업애호정책 드라이브를 펼쳤더니 대기업만 넘치는 부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뿐,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가계는 궁핍해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애호를 넘어 기업국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국가의 끝에는 한줌도 되지 않는 초대기업만이 생존할 것인데, 모두가 가난해진 후에 초대기업이라고 계속 융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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