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일종의 취미생활"...바나나가 알려준 삶, 반전의 메시지

전수진 2023. 1.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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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막다른 골목의 추억' 영화의 배우 최수영씨. [영화 공식 스틸컷]

"뜻대로 되지 않는 몸과 마음 때문에 모든 일이 어긋나 본 적이 있다면? 마지막 사랑이 될 줄 알았던 사랑의 마지막을 본 적 있다면?"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의 소설집 '막다른 골목의 추억'(민음사)의 홍보 문구 중 일부다. 요시모토의 이 단편소설집은 최근 영어로도 번역, 뉴욕타임스(NYT)에도 소개됐다. NYT는 "(팬데믹의) 힘든 시기를 겪는 인류에 위로를 건넨다"며 "우리의 메마른 감정을 다시 일깨우며 다시 느끼는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평했다.

요시모토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의 데뷔작 '키친'부터 30여개가 넘는 작품은 한국어로 번역돼 폭넓고 확고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당시에도 그는 한글로 위로의 뜻을 트윗을 통해 전하기도 했다.

1964년생인 그는 유명 평론가의 딸로, 데뷔 당시만 해도 "아버지(요시모토 타카아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닌 딸을 기억한다. '바나나'는 물론, 필명이다.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吉本真秀子).

요시모토 바나나의 1990년대 방한 당시 사진. [중앙포토]


'바나나'라는 필명에 대해선 그가 "국적 불명, 성별 불명, 그러면서도 모두가 아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지난 9일 요시모토의 기고문을 실었다. "새해,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게 좋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칼럼 시리즈에서다. 요시모토의 답은 간명했다.
"매일이 비밀의 숲이에요. 행복은 그 숲에 숨어있습니다."
무슨 말일까. 매일의 일상이 고통에 가깝다는 건 누구보다 요시모토가 잘 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 일상과 세상과의 불화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올해 지나면 환갑을 맞아서일까. 요시모토는 세상과 화해를 택한 듯 하다.

그는 "가족이며 국가, 돈, 이런 것들처럼 우리가 때로 벗어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들투성이인 것이 삶"이라며 "특히 돈이란 없으면 곤란하지만 돈에 휘둘리면 세상의 모든 기쁨을 잃게 되고 만다"고 적었다. 자신의 생업인 글쓰기에 대해서도 요시모토는 쿨한 태도를 보인다. "대체로 소설이란 결국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며 "아무리 많이 팔리고 해외에서도 호평받는다고 해도 결국은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남긴 세월호 추모 한국어 트윗. [요시모토 바나나 트윗 캡처]


그런 그가 요즘 천착하고 있는 건 가족이라는 주제인 듯하다. 가족에 대한 생각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가족을 많이 찾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사실상 가족생활 역시 취미의 일종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이어 "매일 만난다고는 해도, 취미처럼, 만나는 것이고 결국 가족도 서로의 곁을 떠나기 마련"이라고 적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잘 돌보는 것. 이게 요시모토의 아사히 신문 신년 기고 메시지다. 그는 기고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옷을 갈아입고 먹을 것을 챙겨나가는 생활. 그런 생활을 스스로가 제대로 해나가는 것. 그게 제일입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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