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폭풍전야인데…법사위에서 붕떠버린 간호법·의료법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또다시 헛돌았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법안이 떠밀리듯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16일 법사위 전체회의엔 두 법안이 상정됐다. 하지만 정부의 쌀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을 둘러싼 충돌로 여야는 두 법안엔 관심조차 갖기 어려웠다. 결국 이날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이 퇴장하면서 회의가 파행됐고,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간호법과 의료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제2소위에 회부해 추가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법사위 관계자는 “애초에 하루 만에 여야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성격의 법안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 사이 두 법안을 둘러싼 의료계 안팎의 갈등의 골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 특히 간호사 처우 개선과 업무 범위 구체화를 골자로 하는 간호법을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간호계는 “과거보다 간호 영역이 다양화된 만큼 시대에 맞는 법안이 제정돼야 하고, 근무 환경도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은 “이미 의료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간호사만의 권익을 위한 법을 따로 만들면 의료인 간에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업무 범위 충돌로 현장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찬반 시위도 불붙었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뒤 국회 앞 도로를 행진했다. 2021년 12월 10일부터 국회 정문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진행 중인 1인 릴레이 시위도 17일로 404일째를 맞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국회 앞에서 간호법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를 잇따라 열며 맞불을 놓고 있다.
간호법은 지난해 5월 국민의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복지위 문턱을 넘었다. 당시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립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법사위로 공이 넘어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간호법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의료계 이해 당사자들의 견해차가 큰 만큼 세밀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민주당이 합의 없이 법사위로 법안을 넘기면서 논의가 꼬여 버렸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은 여야의 공통 대선 공약인 만큼 속도감 있게 처리해야 했는데, 여당이 미지근하게 반응하면서 의료계 갈등만 키웠다”는 입장이다.
‘중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도 별다른 진척 없이 국회에 멈춰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고 집행 기간이 끝나면 5년 간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데, 의사협회는 “면허 취소 범위가 너무 넓은 과잉 입법”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은 2021년 2월 복지위를 통과했지만,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서 2년 가까이 법사위에 계류됐다.
두 법안이 법사위에 붕 떠버린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소관 상임위에서 심도 있게 논의했어야 할 민감한 법안이 퉁쳐지듯 법사위로 넘어온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통화에서 “합의도 안 된 예민한 법안이 법사위로 올라오면서 논의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합의를 지지부진하게 끌고 간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의힘”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복지위 소속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의결을 거쳐 두 법안을 본회의에 직접 부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의 이견이 큰 상황에서 합의 없이 법안을 처리하면 후폭풍이 크기 때문에 민주당 단독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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