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관사도 비상용"...윤 정부 들어 장관 공관 폐지한 부처 '0' [공관 대수술, 그 후]
“관사 낭비를 철저히 따지겠다.”
지난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관사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호화 관사를 폐지하고 기존 관사도 규모와 사용 기준을 따져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16일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장관(국무위원 기준) 공관을 폐지한 중앙부처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국무총리실을 포함한 19개 중앙부처의 공관 현황을 점검한 결과다. 장관 공관이 원래 없던 5개 부처는 제외하고 낸 통계다. 나머지 14개 부처는 윤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장관 공관을 없애지 않고 유지했다. 지방자치단체보다 오히려 중앙정부가 공관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대통령실의 ‘청와대→용산’ 이전 과정에서 공관 통폐합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말 그대로 기대에 그쳤다. 현실은 도미노식 이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리모델링 비용으로 수십억 예산만 추가로 들었다.
호화 공관 논란이 일었던 서울 한남동의 외교부 장관 공관은 대통령 관저로 바뀌었다. 대신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과거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이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탈바꿈했다. 비서실장 공관을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하는데 3억500만원이 쓰였고, 여기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대통령실 경호처 건물을 손님맞이 등 업무용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데도 21억7400만원 예산이 책정됐다. 공관 축소ㆍ폐지는커녕 이전 과정에서 24억원 달하는 예산이 추가로 들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업무 특성상 주한외교단, 주요 방한 외국 인사 등 외빈 초청 행사가 많아 공관을 적합하게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세종에 위치한 정부부처 역시 다를 게 없다. 국무총리실은 여전히 서울 공관과 세종 공관 ‘2집 살림’을 이어가고 있다. 기획재정부ㆍ행정안전부ㆍ산업통상자원부 등도 장관 자택이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세종에 별도의 관사를 유지하고 있다. 장관의 원활한 세종 현장 근무를 위해선 꼭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면서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는 “자연ㆍ사회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이 예측될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리는데 행안부 장관이 중대본부장을 맡는다”며 “중대본이 24시간 운영체계다 보니 세종에 비상숙소 개념으로 공관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부처는 장관이 세종 관사를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를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 유지 비용, 투입 예산 등도 대부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행안부 등은 가장 기초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관사 면적, 주택 유형까지도 뚜렷한 사유 없이 공개하지 않았다.
장관이 세종 관사를 이용하는 빈도는 사실 손에 꼽는다. KTX나 차량으로 1~2시간이면 세종과 서울 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중앙부처 한 당국자는 “국회, 대통령실 관련 일정과 각종 회의 대부분 서울에서 열린다. 당일 오후 세종에서 근무를 하더라도 다음 날 일찍 서울 회의ㆍ행사가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세종 관사에 머물기보다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걸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른 부처 관계자 역시 “(장관이) 세종 근무가 아주 늦게 끝날 때만 가끔 관사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ㆍ총리 등 극히 소수에게만 공관을 제공하고, 세금ㆍ유지비까지 이용하는 공직자가 스스로 부담하게 하는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 상황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계룡대에 이미 공관이 있는 만큼 육ㆍ해ㆍ공 3군 총장의 서울 공관은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반쪽 개편’에 그쳤다. 육군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의 한남동 공관만 대통령실로 넘겨주면서 철폐됐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유지됐다. 해군참모총장과 공군참모총장은 공관을 여전히 서울 대방동과 계룡대에 각각 2곳씩 두고 있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정부가 제공ㆍ관리하는 장관 공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집무실 역시 한국과 비교해 매우 좁은 면적에 간소하게 마련돼 있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업무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공간과 지출은 허용하지 않는 선진국의 실용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은 혈세 낭비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관이면 이 정도 공간은 있어야 한다’ 등 인식으로 후진국형 공관을 없애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김민욱ㆍ이근평ㆍ박현주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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