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강사가 개척 ‘강의실 교회’… 수험생활 광야에 놓인 청춘 위로

양민경 2023. 1. 1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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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량진 ‘공시촌’에 자리
온니즈(On knees)교회
이명호 온니즈교회 목사가 최근 서울 동작구의 교회에서 주일설교 요약 내용을 담은 화면 옆에서 설교하고 있다. 온니즈교회 제공


온니즈(On knees)교회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시(공무원시험)촌 인근 상가에 자리 잡은 간판 없는 교회다. ‘관세법 일타 강사’로 통하는 이명호(47) 목사가 2014년 설립했다. 지난 8일 찾은 교회에서는 성도 40여명이 모여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중 절반은 2030 청년이다. 책상이 촘촘히 놓인 예배당 벽에는 칠판과 두 대의 브라운관이 걸려있다. 얼핏 보기엔 영락없는 강의실이다. 강의용 ‘이어 마이크’를 찬 이 목사가 교회 이름만 적힌 단출한 강단에 오르자 예배가 시작됐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본문과 배경 지식, 핵심 등을 정리하며 말씀을 전하자 성도들 눈빛이 진지해졌다. 꼼꼼히 필기하며 설교를 강의 듣듯 경청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곱씹게 되는 설교

성도들은 상가 한구석의 이름 없는 예배당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공시생의 경우 이 목사의 수업을 듣다 예배를 찾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교회 창립 멤버이자 찬양단원인 관세직 공무원 안단비(28)씨도 그랬다. 안씨는 이 목사의 관세법·한국사 수업을 듣다 개별 상담을 받던 중 온니즈교회 예배를 소개받았다. 모태신앙이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적 없던 안씨에게 그의 설교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안씨는 “그간 들어온 설교와는 굉장히 달랐다. 강의하듯 엄청 자세하게 설교해서 말씀을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었다”며 “처음으로 성경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 출석을 결심했는데 시험에 합격한 지금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온라인 예배를 보고 교회로 직접 찾아온 이들도 늘었다. 고연희(37)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2020년 로마서 설교 영상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아 교회까지 오게 됐다”며 “와보니 설교도 그렇지만 그 흔한 프로그램 하나 없이 말씀만 듣고 따르는 공동체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현재 매주 300여명이 온니즈교회 실시간 예배 영상에 꾸준히 접속 중이다.

고난도 주님의 뜻

예배 후 기도하는 온니즈교회 성도들 모습. 온니즈교회 제공

이 목사는 관세법과 무역학, 한국사 3가지 과목을 동시 강의한다. 분야가 다른 과목을 한 사람이 모두 강의하는 건 학원계에서도 드문 경우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거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을 나온 그는 제18회 관세사시험에 수석합격 후 국제무역사 시험출제위원 등을 지내다 관세법 교수로 학원가에 입문했다. 관세법과 무역학, 자유무역협정(FTA)과 한국사 관련 저서 10여권을 출간하며 수백 명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스타강사로 발돋움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던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건 부친의 죽음과 첫째 아이의 발달 장애 판정 때문이다. 아버지의 상실과 자녀의 장애 판정을 기점으로 삶을 돌아보니 잘난 거보다 죄가 더 많은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 실체가 ‘죄인’임을 인식한 뒤 기독교인이 된 그는 ‘주님께 미래를 맡긴다’는 기도를 드렸다.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목회학 석사 과정 진학도 기도 중 결정했다.

신학교 목회학 석사는 3년 과정이었지만 그는 휴학 없이 5년간 수학했다. 학원 강의를 마치는 즉시 대학원 수업에 들어가는 강행군이었다. 일과 공부의 병행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때 신학 공부를 안 했다면 저는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의 죽음과 자녀의 장애가 또 한 번 그의 삶을 덮친 게 그 이유였다. 갑작스레 바이러스에 감염돼 동생이 사망하고, 첫째에 이어 셋째도 발달 장애 판정을 받았다. 강사이자 전도사로 동분서주하며 학원 강의실에서 지금의 교회를 개척한 뒤 일어난 일이었다.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았어요. 분명 주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겐 너무 아픈 일이지만 이 일이 없었다면 가족을 잃은, 장애아를 둔 이들을 제가 위로하긴 쉽지 않았겠지요.”

모두 소중한 생명이니까

청춘을 시험에 바친 수험생, 장애아 부모, 가족을 잃은 이들…. 온니즈교회엔 이 목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적잖게 찾아온다. “전 제가 모르는 아픔에 대해선 말하지 않으려 해요. 그저 하루하루가 버거운, 같은 고난을 겪는 형제로서 성도를 섬기며 목회하려 합니다.”

온니즈교회의 비전은 ‘정부 복음화 씨앗이 되는 교회’ ‘학원가 회복의 중심이 되는 교회’다. 수험생활이란 광야에 놓인 청년에게 복음을 심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낼 힘을 주자는 의도다. 수험생활을 도중 포기하거나 시험에 탈락한 이들을 위로한다는 목표도 있다. “합격보다 탈락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니까요. 이들을 격려하는 일도 제 과제입니다. 상담해서 취업이나 대학 진학 등을 권유해 새길을 찾도록 권하기도 합니다.”

그가 수험생의 아픔에 집중하는 건 매해 노량진에서 신변 비관으로 자살하는 청년이 적잖기 때문이다. 목표를 잃고 방황하다 이단의 수렁에 빠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스스로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시급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강의실에 교회를 세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해요. 자살과 이단 중독을 막을 보안관이 필요했거든요.”

향후 계획을 묻자 “강의와 목회만으로도 여력이 없다”며 웃은 뒤 이렇게 말했다. “일단 현재 사역에 충실하려고 해요. 해외 선교와 신학교 교수의 꿈도 기도하곤 했는데 이번에 감사하게도 일본 신학교 온라인 강의도 맡게 됐습니다. 다양한 사역은 못 하지만, ‘무릎 꿇고 겸손히 기도하자’는 교회 이름대로 사는 목회자가 되려 합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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