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의 시시각각]이재명보다 권순일 수사가 먼저다
권순일 재판거래 정황 증언도 나와
사법 신뢰 위해 검찰 수사 서둘러야
이제 정치인은 토론회 등에서 난감한 질문을 받았을 때 대충 눙치는 게 아니라 아예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적극적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말에도 적극적 거짓말과 소극적 거짓말이 있으며, 둘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 준 이는 권순일(64) 전 대법관이다. 2년 반 전 대법원 판결에서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18년 경기지사 TV 토론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 없다”고 답했다. 이 대표가 친형 정신병원 입원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었기에 2심은 당선무효형(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020년 7월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TV 토론에서 돌발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에 거짓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소극적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기적의 논리였다. 유ㆍ무죄 의견이 5대5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선임인 권 전 대법관 의견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음주운전을 해도 본인이 자발적으로 마시면 처벌되지만, 남이 따라준 술을 억지로 마시면 봐줘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해당 판결은 위태롭던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을 극적으로 부활시켰다. “부모를 빼고 이 대표에게 생명을 준 사람은 권순일”(김태규 전 부장판사)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이 무렵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권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이 될 거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이듬해 대장동 의혹이 불거지면서 재판 거래로 의심할 만한 정황도 하나둘 드러났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이재명 무죄 판결’을 전후해 “동향 지인이라 가끔 전화하는 사이”였던 권 전 대법관을 여덟 번이나 대법원 청사로 찾아가 만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해당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진 바로 다음 날과 무죄 취지 판결이 나온 다음 날, 김씨는 권 전 대법관을 찾아갔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베푼 특혜로 수천억원을 챙긴 김만배씨가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로비했고, 그 결과 ‘이재명 무죄’라는 답례품이 돌아온 게 아니냐는, 재판 거래로 볼만한 합리적 의심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직을 맡아 대장동 의혹이 불거질 때까지 11개월 동안 매월 1350만원을 받았다.
이 정도 사실관계만으로도 나라가 발칵 뒤집힐 법했지만 문재인 정부 검찰은 권 전 대법관을 비공개로 두 차례 소환하는 데 그쳤다. 그 흔한 압수수색도 없었다. ‘양승태 사법 농단’이 터졌을 때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도 때도 없이 회의를 열고 성명을 내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침묵했다. 사법 농단 폭로자(피해자)라는 타이틀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었던 민주당 이탄희ㆍ이수진 의원도 모른 척했다. ”재판 거래에도 ‘착한 재판 거래’가 있는 모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엔 증언까지 공개됐다. 남욱(천하동인 4호 소유주) 변호사가 2021년 10월 검찰에 “김만배씨가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을 권순일에게 부탁해 대법원에서 뒤집힐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 검찰은 이 사안을 철저히 뭉갰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규명될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본류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권순일 재판 거래’ 의혹은 대장동 개발 비리보다 더 위중하다. 사법부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국기 문란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김경수 전 경남지사처럼 “진실의 법정” 운운하며 사법부를 경시하는 풍조는 계속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권 전 대법관을 비롯해 박영수 전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대장동 50억 클럽’ 수사는 답보 상태다. 세간엔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에 수사 못 하는 거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권순일 수사는 시급하다.
최민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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