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이왕 2050년을 내다본다면

2023. 1. 1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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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몇 년 미·중 갈등을 다루는 여러 국내외 세미나에 다녀왔다. 시작과 흐름은 다 달라도 마무리는 늘 똑같다. “두 나라 모두 중요하고 사이에 낀 우린 손해 보면 안되니 조심스레 처신하자.” 조심스러운 처신이 외교 전략이 될 수 있는가. ‘하늘은 푸르다’와 같은 당연한 이야기라 무슨 등댓불을 찾을 수 없다. 이쪽저쪽 이점을 다 취하고 우린 절대 손해 볼 수 없다는 건 어떤가. 과연 현실성이 있나.

세미나가 끝나면 항상 뭔가 꽉 막힌 느낌이다. 왜 자꾸 도돌이표 논의일까. 그 이유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우리 ‘국익 (national interest)’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공감대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기업·산업·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익을 어떻게 정하고 평가할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말한다. 공감대는커녕 진영·세대·그룹 간 반목(反目)이 해마다 커진다.

「 우리 ‘국익’에 대한 공감대 부재
대외 도전 제대로 된 대응 어려워
30년 후 목표와 대외브랜드 명확히
긴 호흡의 체계적 대외정책 추진을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국익 측정을 쉬운 지표인 숫자에서만 찾는다. 수출목표, 1인당 국내총생산(GDP), 외환보유고, 반도체 점유율 등등. 숫자를 넘어 ‘국가’로서 이 험난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각인되고, 생존하며, 번영할지를 반영한 ‘종합적 국익’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대신 각양각색의 목소리만 있다. 들어 보면 모두 중요하고 옳다. 그런데 이들 각자가, 나아가 세부 이익의 총합이 과연 한국의 종합적·장기적 국익과 부합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모두 중요하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정말 우리가 핵심으로 보는 가치가 무엇인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치열한 내부 성찰과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정리해 전면에 내세우자. 혼돈의 시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이 틀에서 바라보자. 여기서 끌어낸 대외 정책이어야 긴 호흡과 인내심으로 밀고 갈 수 있다.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으로 ‘손해 볼 결심’을 할 여유가 생긴다. 숫자너머 진정한 이익을 뚫어 볼 시력이 돌아온다.

이 정지 작업이 끝나지 않아 숫자로서의 목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부딪히면 결정 장애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어렵사리 한고비 넘으면 다음이 기다린다. 작금의 미·중 분쟁이 대표적이다. 이 건은 이쪽에, 저 건은 저쪽에, 그러다 정부가 바뀌면 다시 원점이다. 정해진 목표 틀 안에서의 탄력적 대응과 목표 없는 임기응변은 다르다.

국익에 대한 공감대의 결과물은 한국이라는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입력할 최종 목적지다. 이게 빠져 지향점이 흐릿하면 제대로 달리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갑자기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속 밤길을 혼자 달려야 하는 상황엔 말할 것도 없다. 목표를 세워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목표 없이 목표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 논의의 출발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30년 뒤 우리가 희망하는 국제사회에서의 우리 모습과 위치를 그려보는 일이다. 냉전 종식 후 지난 30여년 격동의 시기였다. 어려움도 있었으나 성공적으로 이겨냈다.

지난 연말 반가운 소식 중 하나는 경제·외교·군사력을 합한 국력 평가에서 한국이 세계 6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지난 30년의 성과를 상징한다. 국제질서가 다시 요동치는 지금, 다가올 30년을 내다보자. 2050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국제사회에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가. 2050년이면 지금의 MZ 세대가 나라를 이끌 때다. 이들의 성향을 보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생각과 리더십이 나타날 것이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계획은 있어도 그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남아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2045년 화성에 가는 계획은 있어도 그때 한국 주변 상황은 어떨지 성찰은 없다. 2049년 사학연금, 2056년 국민연금 고갈을 걱정하지만, 정작 그 연금을 쓸 우리 국민이 어떤 대외 환경에 직면해 있을지 진단은 없다.

근래 2050년 즈음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었다. 이왕 그즈음을 내다볼 요량이면, 빠질 수 없는 건 우리나라가 그해 어떤 대외 브랜드로, 어떤 실력과 국격으로 어디쯤 있을지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반추해 우리 국익의 핵심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지금 우리 눈앞을 어지럽히는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일관되고 현명한 대처를 궁리해야 한다.

국익에 대한 공통의 지향점이 없다면 여러 진영·이념·세대별로 쪼개진 우리 사회의 분열병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젠 의견만 서로 다른 게 아니라 동일한 사실을 두고도 두 개의 대체 현실이 맞서고 있다. 악화하는 분열병은 비단 우리 내부 응집력을 해치는 데 멈추지 않는다. 어렵사리 세계 6위에 오른 우리가 스스로 힘이 빠지는 모습을 경쟁국들은 속으로 즐길 것이다.

우리 국익에 대한 공감대를 세우자. 전례 없는 대외 위기에 ‘신박한’ 해결책을 찾진 못해도 최소한 실수는 줄여나갈 수 있다. 계묘년 새해가 2주 지났다. 2023년 여기에 의미 있는 첫걸음만 내디뎌도 알찬 한 해가 될 것이다.

이재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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