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교 내신 9등급제 계속 둘 건가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이해 암기 위주의 근대식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미래 교육으로 혁신하기 위한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모든 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구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적지 않다. 그중에 하나가 9등급제로 운영되고 있는 고교 상대평가다. 9등급제에서는 과목별로 전교생의 4%만이 1등급을 받고, 석차에 따라 정해진 비율대로 9등급까지 받는다. 같은 학년의 모든 학생이 대입을 위한 경쟁자인 셈이다.
학교의 학생 수에 따라 1등급을 받는 학생 수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한 학년 학생 수가 13명이 안 되는 학교나 과목에는 1등급이 없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전국 43개 농산어촌 고교에서 내신 1등급을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아주 미세한 점수 차이로 석차나 등급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학생끼리 지나친 경쟁으로 과중한 시험 스트레스를 받고, 수행평가에서도 필요 이상의 과당 경쟁이 발생한다. 내신성적을 위한 사교육이 급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성이나 진로에 맞는 교과보다 석차를 받는 데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는 이미 2011년에 9등급제를 폐지하고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성취평가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부작용 때문에 3차례나 유예됐고 여전히 9등급제는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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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평가는 늘 과당경쟁 불러
고교 수업과 평가 정상화 시급
과목별 성취평가제 도입해야
」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을 결정하면서 9등급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성취평가제 도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우려 때문에 1학년 공통과목에는 9등급제를 유지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1학년만 상대평가를 유지할 경우 대입에서 수시는 고교 1학년 상대평가 결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고부담 평가가 초래된다. 이럴 경우 고교 1학년은 극단적인 경쟁에 노출되고, 성적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내신을 포기하고 수능에 전념하는 학생이 생길 수 있다. 1학년 성적이 좋은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 고교교육이 파행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교 성취평가제 도입에 대한 우려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고교 교사들이 관대하게 평가하는 성적 부풀리기가 우려된다. 둘째, 학생 사이의 변별력이 떨어져 다른 전형요소인 수능이나 대학별 고사의 반영이 확대될 수 있다. 셋째, 절대평가 도입으로 대입에 유리해지는 자사고와 특목고 선호가 높아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야 성취평가제를 도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래 교육을 위해 어렵더라도 9등급제의 문제를 이제 더는 방치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 첫째, 성적 부풀리기를 극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교사의 평가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제 교육과정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비롯해 세계의 모든 교사가 하는 절대평가를 한국의 우수한 교사들이 못 할 이유가 없다. 현직과 예비교사가 목표로 한 성취수준에 도달한 학생에게 A를 부여하는 평가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는 제도적인 보완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신입생 선발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이 수시전형에서 독서, 동아리 및 봉사 활동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인성 면접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사고와 특목고에서 인성 면접을 강화한 ‘자기 주도 학습 전형’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절대평가가 대입 수시에서 자사고와 특목고에 유리하다는 문제는 대입 전형 유형의 비율을 조정해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일반고에 유리한 고교장 추천 전형 비율을 높임으로써 고교 유형별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입 전형 요소의 복잡한 함수에서 성취평가제를 상수로 두고 불필요한 경쟁과 그로 인한 사교육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대입제도의 대폭 변경은 국민적 불신과 사교육 폭등을 유발해 왔던 전례를 기억해야 한다.
고교 수업과 평가를 정상화하는 방향을 기본으로 하고, 다른 전형요소는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교육 당국은 학교평가와 대입 전형의 방향이 제대로 설정돼야 미래 교육의 과제가 구현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제영 미래교육연구소장·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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