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 브라질 열대서 한 달 사투…‘한국판 스페이스X’ 꿈꾸는 그들

최준호 2023. 1. 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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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후 8시. 인천공항 입국장에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일행과 함께 나타났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회사와 집이 있는 세종시. 예약해둔 미니버스를 타고 두 시간여 한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버스 안은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30여 시간 전만 하더라도 지구 반대쪽 남위 2도, 아마존 밀림이 시작하는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발사장에 있었다. 한 번의 배와 세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계절은 영상 32도의 한여름에서 영하 10도의 한겨울로 바뀌었다. 남자의 이름은 김수종(47). 국내 유일 하이브리드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의 대표다. 애초 그는 12월 19일 한국 최초로 민간 우주로켓 한빛-TLV를 시험발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 차례 발사 시도를 했으나, 결국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없었다. 브라질 공군이 발사 시간대로 허락한 시간은 단 3일. 재발사를 하려면 오류 시정은 물론, 행정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했다. 가능한 다음 발사 일정은 3월. 한 달 이상을 적도의 더위와 습도, 모기와 싸워온 김 대표 일행은 알칸타라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2일 세종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인근 건물에 자리 잡은 이노스페이스를 찾아 김 대표를 만났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가 세종시 본사에서 과학로켓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로켓 제작도 이노스페이스의 매출원 중 하나다. 프리랜서 김성태

Q : 시험발사에 실패했다. 이유가 뭔가.
A : “12월은 현지에서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애초 발사 예정일은 12월 19일 오전 6시였는데, 하루 전 공군 기상대에서 비 예보를 알렸다. 그래서 20일로 미뤘지만, 이번엔 발사 네 시간을 앞두고 펌프 냉각용 밸브에 문제가 발생했다. 의외로 밸브 하나만 교체하면 되는 사소한 문제였다. 또 하루 뒤인 21일 오전 6시로 다시 발사 일정을 잡았다. 이번엔 오전 6시 카운트다운까지 들어갔는데, 발사 10초 전에 이상이 감지되면서 자동으로 멈춰섰다. 현지 발사장 안전관리 시스템과 우리 발사체 운영시스템 간 연결에 문제가 있는 거였다. 브라질 공군이 허용한 발사 일정의 마지막이 21일이어서 더는 시도할 수 없었다.”

Q : 투자자들 실망이 컸겠다.
A : “귀국 다음 날 주주간담회를 열어 다 설명해 드렸다. 안타까운 상황이라 속으로야 실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모두 응원해 주시고 있다. 되레 직원들이 낙담할까 봐 염려해주신다. 사실 우리 회사에 투자한 기관들은 엄청나게 까다롭게 검토를 해왔다. 우리의 기술력·비즈니스모델·수익성,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이해해주신다.”

Q : 이번 발사 실패에서 얻은 게 있다면.
A : “정말 배운 게 많았다. 그동안은 엔진 등 발사체 개발에만 집중을 해왔다. 발사 운영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했다. 이번에 발사장 운영시스템과의 네트워킹 문제로 발사 점화가 안 돼 이륙을 못 했지만, 현지 통제센터에서 브라질 측과 함께 하면서 발사 운영의 모든 절차를 다 배웠다. 발사체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으로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브라질 우주발사장에 세워진 이노스페이스의 시험발사체 한빛-TLV. [사진 이노스페이스]

Q : 3월에 다시 발사하려면 자금이 모자라지 않나.
A : “다행히 지난 12월에 시리즈B 브릿지 투자 라운드를 막 끝내 200억원을 모았다.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산업은행과 한국투자파트너스·에트리홀딩스와 같은 기관들이 들어왔다. 3월 재발사는 현지에 발사체와 발사대를 두고 왔기 때문에 추가로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Q : 최근 충남 태안 쪽 군 발사장에서 고체 우주로켓이 성공적으로 올라갔다. 발사장이 없어 브라질까지 갔는데, 마음이 복잡했겠다.
A : “우린 고체와 액체 로켓의 장점을 가진 하이브리드 로켓이다. 한국 내에서 다양한 발사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한빛은 국내용이 아니다. 개발 초기인 2019년부터 국내 발사장이 없어서 해외로 눈을 돌렸지만, 이젠 그게 더 잘 됐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해외 발사장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발사 시장의 플레이어가 됐다. 외국 인공위성 발사 수요가 벌써 들어오고 있다. 최근엔 노르웨이 쪽에도 발사장을 알아보고 있다.”
이노스페이스가 시도하고 있는 한빛-TLV는 상용 소형 우주발사체를 위한 테스트용 로켓이다. 2단형 소형위성 발사체 ‘한빛-나노’에 적용될 추력 15t급 하이브리드 로켓엔진의 비행 성능 검증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브라질 공군 항공과학기술부(DCTA)가 개발 중인 관성항법시스템 시스나브(SISNAV)를 탑재체로 실었다. 한빛 나노는 50㎏의 소형 탑재체를 고도 500㎞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높이 16.3m, 직경 1m, 중량 8.4t이며, 1단 로켓으로 15t급 하이브리드 엔진 1개를 장착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 시험발사는 우주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라며 “3월 발사가 성공하면 내년에 상장하고 상용 소형 우주발사체인 한빛-나노도 정식으로 쏘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문한 세종 이노스페이스 본사는 한가해 보였다. 직원이 100명에 달한다는 말이 무색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직원들 밤낮없이 수고도 많았고, 12월 발사 실패에 낙담하지 말라는 뜻에서 휴가를 보냈다”며“3월 재발사 등 본격적인 업무는 16일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판 스페이스X를 꿈꾸는 국내 민간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의 도전은 다시 시작됐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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