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조선왕조실록·의궤, 110년만에 돌아온다

박진호 2023. 1. 1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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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 있는 왕조실록·의궤박물관. ‘전시실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임시휴관 안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박물관은 오대산사고에 소장돼 있던 왕실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사진)를 테마로 2019년 9월 연면적 3537㎡ 규모(지상 2층 건물)로 개관했다. 전시실은 총 6실(1244㎡)을 갖췄고 200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박물관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지난 1일부터 휴관 중이다.

개관한 지 3년 남짓인 박물관이 새 단장에 나선 건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110년 만에 타향살이를 마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물관에는 영인본(影印本·복사본)이 전시돼 있었다.

조선왕조의궤

지난달 24일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의 평창 이관과 관련된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 운영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환지본처(還至本處·제자리로 돌아감) 작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은 이번에 리모델링에 들어간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말한다.

이병섭 월정사 기획팀장은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하고 전시하려면 내부를 전체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전시실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뒤 10월쯤 실록·의궤를 박물관으로 옮겨 재개관할 계획이다. 실록은 110년, 의궤는 101년 만에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1992년 복원된 오대산사고의 활용 방안도 관심사다. 이번에 돌아오는 실록·의궤는 일제에 약탈당하기 전까지 오대산사고에 보관돼 있었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원회 지형근 사무총장은 “원본은 박물관에 전시하고 영인본은 오대산사고에 전시해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1913년과 1922년 일제에 의해 반출된 실록·의궤는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약탈 문화재의 반환 청구권을 상실한 정부를 대신해 월정사 등 민간단체가 문화재 환수 운동을 벌였다. 이후 2006년과 2011년에 어렵게 국내로 돌아왔다.

당시 정부가 문화재 보호법의 규정과 학술 연구 등을 이유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할 것을 결정하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후 월정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단체에서 반환 캠페인이 이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화재청과 월정사 등은 모두의 의견을 반영,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월정사가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문화재청에 기부채납했다. 문화재청은 법률·행정적 검토를 모두 마무리했고 국회 예산까지 반영됐다.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은 “오랜 기간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을 하면서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환지본처를 지속해서 논의했다”며 “많은 분의 노력이 쌓여 제자리 찾기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제1대 왕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1392~1863년) 동안 벌어진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역사의 기록을 연·월·일 순으로 정리하는 편찬 방식)로 기록한 역사서다. 의궤는 조선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국가기록물이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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