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결사 맡은 ‘탄소배출 주범’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유를 파는 사람이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으로 지명된 인물을 두고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올해 11월 말부터 두바이에서 열릴 COP28 의장으로 술탄 알자베르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알자베르 CEO는 국영 WAM 통신을 통해 “올해는 향후 10년간 기후 행동을 위한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기후 안정을 유지하면서 저탄소 경제 성장을 이룰 실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매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개최국은 회의를 이끌 의장을 지명한다. 의장은 탄소 감축 등 기후 의제를 둘러싼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통상 개최국의 베테랑 외교관들이 의장직을 맡아온 이유다.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에서는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이 의장을 맡았다.
석유 기업 대표가 올해 COP28 의장으로 지명되자 환경단체 등은 반발했다. 국제 기후행동 네트워크의 하르지트 싱 대표는 AP통신에 “석유회사 대표가 의장을 맡는다는 것은 놀라운 이해 충돌”이라고 비판했다. 비영리단체인 글로벌위트니스의 앨리스 해리슨 역시 “평화회담에 무기 거래상을 참여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의 임명이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에서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로 전환을 꿈꾸는 UAE의 야심 찬 목표를 상징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알자베르 회장은 UAE 기후변화 특사이자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을 맡고 있다. 또 국영 재생에너지 회사인 마스다르의 회장으로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 도시인 ‘마스다르 시티’ 건설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카림 엘젠디 중동 환경문제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둘 사이에 모순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알 자베르는 석유회사 사장으로 재직하기 훨씬 전부터 UAE의 기후 행동을 주도해 왔다”며 “(COP28 의장은) 기후 행동에 대한 UAE의 접근 방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역시 “그는 경험이 풍부한 외교관이자 사업가”라며 “이 독특한 조합은 필요한 모든 이해관계자가 더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동 국가 중 최초로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UAE는 이번 COP28 개최를 계기로 청정에너지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WAM에 따르면 UAE는 세계 70개국이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관련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약 500억 달러(약 62조3000억원)를 투자했으며, 앞으로 10년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실행할 계획이다.
한국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UAE와 녹색산업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는 15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서 UAE 에너지인프라부와 ‘한-UAE 수자원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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