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실력이 미래입니다'?

강부미 2023. 1. 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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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공동체연구회' 선생님들의 함께 배우는 수업 이야기

[강부미 기자]

▲ 교육청 청사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다양한 실력은 무엇일까?
ⓒ 강부미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우리 교육청 청사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다양한 실력이 미래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잘 보이도록 건물 외벽 높이 웅장하게 걸려있다. 몇 달 전까지 그 자리에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고 적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교육청 앞 횡단보도에 검은색 롱패딩을 똑같이 입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지나간다. '얘들아, 저거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들 입에서 무심하게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그 어떤 말이 무서워서…

'다양', '실력',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다양한 실력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다양한 실력을 기르려면 우리 교사들은 또 어떤 수업을 해야 할까?

제38회 '한국배움의공동체연구회' 전국운영위원 워크숍이 인천에서 열렸다. 전국 69개 지역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유·초·중·고 120여 명의 교사가 1.13(금)~1.15(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모여서 수업 임상 연구와 교육활동 실천 사례를 공유하였다.

교사 전문성의 제1영역은 단연 수업이다. 영상으로 만난 수업은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중학교 3학년 수학, 고등학교 3학년 역사 수업이다. 학교급을 가르지 않고 유·초·중·고 선생님들이 함께 배우고 깊이 연구한다. 배우는 방법은 교사들도 아이들과 똑같다. 자신이 배운 점을 나누고, 모르는 것은 짚어 묻고, 동료의 생각을 귀담아듣고, 차이를 인정한다. 먼저 모둠에서 가깝게 대화하고, 전체 공유로 질 높은 협력적 배움을 경험한다. 모든 참가자가 연구자이며 실천가이다.
 
▲ ‘배움의공동체연구회’ 전국운영위원 워크숍 전국의 유·초·중·고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수업 임상 연구
ⓒ 강부미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과 수업을 열고 나누는 전문적학습공동체 실천 사례도 공유했다. 동료 교사에게 수업을 열고 연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동료성에 기대어 함께 수업을 연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대화로 탐구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수업이 우리 교사들에게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소재가 되려면 어떤 전환이 필요할까? 무엇을, 어떻게 시도해야 할까? 서로의 고민과 사례를 나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트 실천 사례를 공유하였다.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는 '내가 만드는 교육과정을 제도화하자'는 슬로건으로 2021년 1월부터 전국 17개 지역의 유·초·중·고·특수·직업 현장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고 있는 네트워크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기치로 협력적 거버넌스로 2년여 동안 만나서 새로운 교육 과정의 총론과 각론을 연구하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명목뿐이었던 지역교육과정 만들기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의 연구 성과가 반영된 총론 주요 사항이 2021년 11월 24일에 처음 발표되었다. 네트워크는 1단계를 거쳐 2단계와 3단계까지 진행되면서 전국적으로 참여 교원이 6000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400개가 넘는 연구 모임이 운영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022년 12월 22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이 고시되었다. 그런데 고시된 총론에서는 네트워크에서 2년 동안 연구하고 제안한 중요한 내용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증발되었다. 그 내용을 이 지면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우리가 연구하고 제안한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지역교육과정은 어떻게 만들까? 머리를 맞대고 탐구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길을 찾아야 한다.
 
▲ ‘배움의공동체연구회’ 전국운영위원 워크숍 참가자들이 연구회 대표 손우정 교수의 수업 컨설팅을 듣고 있다.
ⓒ 강부미
 
2022년 자신의 수업에서 실천한 교육과정 재구성 사례를 공유한다. 나의 한해 수업 여정을 동료들에게 열고, 성찰하는 시간이다. 어려웠던 수업을 함께 고민하고, 아이들이 잘 배운 수업을 기꺼이 나눈다. 2023년 나의 수업을 위한 심호흡의 시간이다.

2023년 새 학기가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나는 어떤 수업으로 어떤 실력을 길러줄 것인가?

모르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대화한다는 것'임을 아는 실력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이고, 듣는 귀를 열어 친구 말을 들을 줄 아는 실력
그리고 그 듣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즐거운 일임을 알아차리는 실력
"괜찮아, 너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머뭇거리는 친구를 기다려주고, 그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실력
"나도 잘은 모르지만, 혹시 이거 아닐까?" 자기 생각을 다정하게 표현하는 실력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묻는 실력
그 당당하게 묻는 것이 자신을 삶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중요한 연습임을 아는 실력
"이거 왜 그럴까?" 어려운 과제에 의문을 갖고 성큼 들어가서 탐구하는 실력
대화와 질문과 탐구가 협력의 다른 이름임을 알고 협력의 장에서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실력
친구와 대화하고, 텍스트와 대화하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과 대화할 줄 아는 실력
오늘 수업의 배움을 자기 삶으로 과감히 끌어들여 자기 인생의 탐구 주제를 찾아내는 실력
더 근원적인 질문에 천착하여 내 삶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수행하는 실력
배움의 장에서 친구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오고 잔잔한 도움을 주면서 기쁨을 느끼는 실력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내 곁의 친구도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온 정성을 다해 도와주는 실력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오늘 수업 뭔가 좋았어요. 고마워요"라고 따뜻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실력 등등... 

그런 실력이기를 바란다. 그런 실력이어야 한다. 그런 정도의 실력이라야 이 거친 세상에 아이들의 미래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교사다. 내가 하는 일은 수업이다. 내가 펼치는 한 시간의 수업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존엄하다고 믿는 교사다. 아이들이 자신을 한 인간으로 존엄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은 수업이라고, 배움이라고 믿는 교사다. 이제 선명해진다. 교육청에 내걸린 '다양한 실력이 미래입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1년 동안 사회 수업으로 만났던 아이들이 졸업식 전날, 졸업 앨범에 사인을 해 달라고 찾아왔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우리 사회 수업, 조금 많이 괜찮았어요."
"선생님, '대화하라! 대화하라! 대화하라!' 그게 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선생님, 중학교 가서도 '대화하라! 탐구하라! 협력하라!' 그거 잘할게요."
"선생님, 아무튼 사회 수업 좋았어요. 아시죠? 우리 수업 좀 멋졌어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설화님의 그림동화 <슈퍼 거북>, <슈퍼 토끼>를 다시 읽고, 아이들의 '진짜 실력'을 키워줄 다음 학기 수업을 멋지게 디자인해야겠다.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수업 철학을 나누는 연구회 선생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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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배움의공동체연구회'는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수업을 추구하는 전국 유·초·중·고 교사들의 자발적인 배움중심수업 연구회입니다. 전국 69개의 지역 연구회가 있으며, 수업을 같이 만들고, 동료들에게 수업을 기꺼이 열고, 수업에서 배운 점을 함께 나누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제 1 영역은 수업임을 인식하고. 아이들이 잘 배우는 수업을 위해서 '배우는 전문가'로서 함께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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