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호응 시 발표 가능"…강제징용 해결 속도 내는 정부

박현주 2023. 1. 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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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국장급 협의에선 정부가 올 초 발표 예정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정부는 거의 매년 때 맞춰 반복되는 일본의 '캘린더성 역사 도발'로 여론이 악화하기 전에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 26일 한일 국장급 협의를 위해 도쿄 외무성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전범 기업 참여 중요"


이날 도쿄에서 열린 국장급 협의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에게 12일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공개 토론회'를 통해 확인한 국내 여론을 전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주체로 한·일 기업 기부금 등을 받아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이 독자적 해법을 발표하는 것도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있어야 할 수 있다"며 "일본의 호응 조치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원고(피해자) 한 분 한 분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협의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 등 배상의 직접 책임이 있는 '전범 기업이 재원 조성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정부가 조만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공식 발표하면 일본 정부는 이에 호응해 ▶수출규제 해제 ▶화이트리스트 편입 ▶셔틀 외교 재개의 세 가지 조치를 즉각 선언하기로 내부 입장을 정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한국 측 해법 발표에 당연히 잇따를 정상화 수순"이라고 설명해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이 당국자는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조치가 수반된 해법이 발표되면 당연히 셔틀 외교도 재개되고 수출규제 조치도 해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상권 논란 피하는 묘책"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제3자가 재원을 만든다 하더라도 단돈 100원이라도 피고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면 전범 기업은 금방 움직일 것"이라며 한국이 어렵사리 해결책을 만들어 왔는데 일본도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는 자성이 일본 정·재계 내부에서도 조금씩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범 기업이 기금 출연에 참여하는 게 향후 구상권 문제로 인한 논란의 소지를 줄이는 방안이란 분석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제3자 변제의 경우 구상권 청구 문제가 남을 수밖에 없는데 전범 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출연금 바스켓(바구니) 안에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전범 기업이 끝까지 기금 출연에 참여하지 않으면 향후 구상권 청구 논란의 불씨를 스스로 남기는 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모습. 연합뉴스.


'캘린더 도발' 전 매듭 목표


현재 정부는 다음 달 중 강제징용 배상 해결책을 발표하고 한·일 관계 정상화의 첫발을 뗀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말 검토 끝에 물 건너갔던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올해 초에 추진하는 방안도 다시 고려하고 있다. 11년 이상 중단된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다. 관계 개선 상황에 따라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초청 받아 또 한 번 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타이밍을 놓칠 경우 매년 때 맞춰 반복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 상반기에만 해도 당장 다음 달 말 다케시마(竹島ㆍ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 → 3월 과거사를 왜곡하는 교과서 검정 → 4월 야스쿠니 춘계 예대제 → 5월 외교청서와 7월 방위백서 통한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 → 8월 패망일 야스쿠니 참배 등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 때마다 정부는 항의 입장을 표명하고 주한일본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하곤 했는데, 이런 악순환이 자칫 강제징용 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내 여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벌써부터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굴욕적"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야권에 공세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정부가 12일 공개 토론회 후 마련된 문제 해결의 동력을 이어가 최대한 다음 달 중 신속하게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려는 이유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진전 상황에 따라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실리는 부담감도 달라질 수 있다. 일각에선 국내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오는 4월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도 되도록 선거 전에 여유를 두고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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