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지금 골대 옮기면 안돼"…'물가 2% 목표' 고수하는 이유

하남현 2023. 1. 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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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방법 같다. (공이) 잘못 간다고 골대를 옮기자는 얘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물가 목표 수준을 현재 연 2%에서 올릴 생각이 있냐”라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서다. 장기간 이어지는 고물가 속에서 2%라는 비현실적인 수치에 목멜 필요가 있냐는 일각의 주장에 이 총재가 선을 그은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2% 물가 목표 도달 과정은 Fed의 횡포”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을 비롯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일본은행 등 대다수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현재 연 2%를 물가 목표치로 삼았다. 1998년 처음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한국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지난 2013~2015년 연 3±0.5%에서 2016년 연 2%의 단일 수치로 수정했다. 이에 앞서 Fed는 지난 2012년 1월 “물가 상승률 연 2%가 Fed에 부여된 물가안정 책무에 부합한다”고 발표했고, 일본은행은 2013년 1월 이후 물가상승률 목표를 연 2%로 정했다.

그런데 지난해 이후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며 “2% 목표 달성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의 목소리가 속속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여러 학자가 물가 목표치 상향을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전미경제학회(AEA) 연차 총회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2%라는 물가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은 Fed의 횡포가 될 것”이라며 “2%에 빨리 도달하려고 하면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2%까지 물가를 낮추려고 무리하게 금리를 올리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를 더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스멀스멀 나온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물가 수준이 당장 크게 낮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무리하게 낮은 물가 목표치에 맞추려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물가 목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지 논의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창용, “기대 인플레 너무 변할 우려”


그런데 이 총재는 이런 주장에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 이유로 이 총재는 “지금 상황에서 골대를 옮기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너무 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물가 상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은이 물가 상승 목표치까지 올리면 사람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역시 덩달아 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에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숫자도 아닌 2%가 목표치일까? 2%라는 수치 자체가 경제학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건 아니라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여러 여건을 봤을 때 2%가 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은 지난 2015년 12월 단일 물가 목표치 연 2%를 제시하며 “한국의 기조적 인플레이션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 구조 변화로 인해 2012년을 전후로 2% 내외로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라며 “인구구조 변화, 잠재성장률 둔화, 글로벌화 진전 등으로 수요·공급 측면 모두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통계적으로 증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렇게 설명했다. “대체로 물가 상승률이 연 2% 정도면 사람들이 물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연 3% 정도가 되면 사람들이 물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런 만큼 한은은 당분간 물가상승률 목표를 수정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총재는 “목표를 바꾸는 것은 물가가 안정된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한은이 생각하는 물가 경로보다 물가 목표치 수렴 정도가 빠르지 않다면 그때는 금리 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 3.6%로 전망했다. 지난해(연 5.1%)보다 1.5%포인트 떨어질 거로 내다봤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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