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장 30㎝ 끊었다" 법정서 故이예람 사진 번쩍 든 엄마 울분
고(故) 이예람 중사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이 첫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전 전 실장 측은 법정에 들어서며 유족과 마찰이 빚어지자 “유족의 행동이 피고인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재판부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 정진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면담 강요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전 실장 등 3명의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전 전 실장은 이 중사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돼 사건이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되자 평소 알고 지내던 군무원 양모씨를 통해 이 중사를 성추행한 장 모 중위의 비공개 영장심사 내용을 입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일로 양씨에 대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담당 군 검사에게 연락해 면담을 강요하고 위력을 행사했다는 게 전 전 실장 혐의사실의 골자다.
이날 이태승 특검보는 “전 전 실장이 양씨 영장 청구서에 자신이 언급돼 있는지 확인하고, 자신은 양씨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지속해서 관련 내용을 파악하거나 조사를 중단시키려 했다”고 공소 요지를 설명했다.
전 전 실장 측은 군 검사에게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특가법상 면담 강요 혐의는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맞섰다. 전씨를 대리하는 임수빈 변호사(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해당 조항은 보복범죄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이라 범행 대상은 피해자 또는 목격자”라며 “수사 주체인 군 검사는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당시 통화 녹음을 재생해 강요나 위력 행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임 변호사는 이 같은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이 중사의 명복을 빈다. 피고인과 저희 변호인들은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 전 실장이 법정 복도에 들어서자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는 “대한민국 군 가족들의 적”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전 전 실장이 아무 말 없이 법정에 들어서자, 이씨는 재차 “예람이를 살려내라”고 큰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전 전 실장 측은 재판 말미에 이 소동을 언급하면서 재판부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임 변호사는 “유족 여러분의 애끓는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잠이 오지 않고 밥을 먹어도 넘어가지 않겠지요”라고 위로하면서도 “큰 소리를 내고 욕설을 하고 출입구를 가로막는 행동은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고 피고인을 위축시킬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중사의 사진을 A4용지 크기로 출력해와 가슴에 끌어안은 채 재판을 지켜보던 어머니 박순정씨는 이 대목에서 사진을 번쩍 들어올려 보였다. 재판장으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은 박씨는 “우리 아이가 당했을 고통을 과연 피고인이 당할 ‘위축’하고 비교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 아이도 감당한 만큼 감당하셔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또 “남편이 이 일로 장을 30㎝ 끊는 수술을 해 움직이면 안 되는데도, 전 전 실장을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분노가 우러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유족도 앞으로 주의할 테니 애끊는 고통을 피고인의 고통과 다시는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전 전 실장은 지난해 준장에서 대령으로 계급이 강등돼 징계 취소 소송을 낸 상태다. 징계 취소 소송 결론이 날 때까지 징계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지난해 12월 준장 계급으로 전역했다. 전 전 실장과 함께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으로 기소된 양씨 측은 이날 “영장심사 관련 정보 등은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 중사가 마치 남편의 외도로 마음고생을 해 숨진 것처럼 알려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보장교 정모씨 역시 무죄를 주장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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