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자유-보복성 페널티, 심준석 미국행이 남긴 숙제
[이준목 기자]
한국야구의 미래로 꼽히는 우완 투수 심준석이 미국 무대에 도전한다. MLB닷컴은 지난 1월 16일(한국시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국제 유망주 랭킹 10위인 심준석과 입단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덕수고 졸업 예정으로 고교 최대어 투수로 꼽힌 심준석은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조기 도전의 꿈을 밝혀왔다. 2023 KBO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미국행을 선언한 심준석은 메이저리그 내 슈퍼 에이전트로 통하는 스콧 보라스측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기 했다. MLB닷컴은 뛰어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한 심준석의 투구 폼과 신체적 잠재력에 높은 평가를 내리면서 한국 메이저리거의 원조인 박찬호와 비교할만큼 높은 평가를 내렸다.
피츠버그는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깊은 팀이기도 하다. 박찬호가 2010년 미국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몸담은 팀이 피츠버그였고, 음주운전으로 불명예 은퇴한 내야수 강정호가 피츠버그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내야수 박효준도 피츠버그를 거쳐갔다. 현재 내야수 최지만과 배지환이 소속되어 있다. 낯선 미국땅에서 마이너리그 첫 단계부터 밟아 올라가야 하는 심준석에게는 가까운 곳에서 조언을 해주고 의지가 될수 있는 선배들이 있다는게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심준석의 계약 규모에도 관심이 쏠린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MLB 구단과 계약하면서 역대 가장 많은 계악금을 받은 한국인 선수는 1999년 225만달러를 받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한 투수 김병현이었다. 2001년 160만 달러를 받은 류제국(시카고 컵스), 2000년 137만 달러에 사인한 추신수(시애틀 매리너스)가 그 뒤를 잇고 있으며, 1호인 박찬호는 LA 다저스와 120만달러에 계약했다. 계약규모가 중요한 것은, 철저한 비즈니스 퍼스트 마인드로 돌아가는 미국에서는 '구단이 투자'가 기회 보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심준석이 기왕 큰 물에 도전하는 만큼, 제 2의 박찬호나 류현진같은 선수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피츠버그와의 계약은 빅리그로 가는 첫 관문일 뿐이다. 이후 심준석이 감당해야 할 몇 년간의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1990년대 박찬호를 시작으로 많은 한국 유망주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이들 중에 정작 메이저리거에 데뷔하거나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선수는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장수하며 FA 대박신화까지 터뜨린 박찬호와 추신수도 미국 무대에서 연착륙하기까지는 수년간의 힘겨운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류현진이나 강정호, 김하성, 김광현처럼 KBO리그에서 활동하다가 해외진출 자격을 얻어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루트로 자리잡았다. 현재 KBO리그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역시 내년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심준석의 미국무대 조기 도전을 지지하는 이들은, 선수의 꿈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KBO리그를 거쳐서 해외진출의 기회를 얻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한 투수들은 KBO리그에서 젊은 나이에 많은 투구수를 소화하다가 부상이나 혹사의 위험도 있다. 차라리 신인 육성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는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해외진출의 성공은 단지 야구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야구 외적으로 언어-음식-이동거리 등 모든 면에서 한국과는 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의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어린 선수에게 있어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앞서 미국 무대에 도전했던 선배들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 야구보다 소통이나 향수병으로 인한 외로움 같은 환경 적응 문제를 꼽은 바 있다.
또한 아무리 선수육성 시스템이 이론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선수를 가르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최고의 유망주로 구단의 집중적인 관리를 받으며 지도자들의 애정어린 보살핌- 선후배 동료들과 끈끈하고 인간적인 유대관계와 조언 등을 기대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보호막'이 없이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심준석은 미국에서 그저 수많은 유망주들 중 한 명으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한편으로 심준석이 미국행을 선택하면서 적지 않은 '페널티'를 감수하게 된 것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KBO리그 야구 규약에 따르면 '신인 선수 중 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재학하고 한국 프로구단 소속 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구단과 계약한 선수는 외국 구단과 선수 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간 KBO 소속 구단과 계약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심준석은 미국 구단과 계약하면, 그 계약 종료 후 2년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선수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외국 구단의 무분별한 유망주 유출로부터 한국 야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유지되어 왔다.
또한 모교인 덕수고는 심준석의 미국행으로 당장 큰 피해를 입게 됐다. KBO 규약에 따르면 '신인 선수가 외국 프로구단과 계약한 때로부터 5년간 해당 선수가 졸업한 학교에 유소년 발전기금 등 모든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현재 아마추어 야구는 프로 구단 지원금에 야구부 운영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심준석의 독단적인 미국행 때문에 애꿎은 덕수고 후배들이 몇 년간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프로야구도 최근 FA계약 등 선수에 대한 대우가 향상되고 리그 위상이 높아지면서 예전처럼 미국-일본에 무분별하게 유망주를 뺏길 것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해외진출 유망주에게 2년간 KBO행을 금지하는 페널티도 이미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최소한 이는 선수 개인이 감당해야 할 영역에서 그친다.
그런데 선수의 모교에게 지원금까지 막는다는 것은 차원이 또 다르다. 이는 선수와 직접 상관없는 야구 후배들을 볼모로 삼아 마치 연좌제처럼 책임을 돌리는 악법이자, 명백한 보복성 이중 징벌에 해당한다. 덕수고는 심준석 측에 KBO리그 입단 후 빅리그 진출을 권유했지만, 미국으로 가겠다는 심준석 측의 의사가 워낙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한 페널티로 억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야구 유망주의 산실인 아마추어에 대한 지원을 막는 것은, 장기적으로 곧 한국야구의 발목을 잡는 어리석인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심준석의 화려한 미국무대이 한국 야구에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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