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야 사람 된다? '사람'이 군대에 간다!

배여진 2023. 1. 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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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인권 열외> 를 읽고

[배여진]

 <군, 인권열외>
ⓒ 휴머니스트
나는 나의 성별을 핑계로 군대에 별 관심 없이 살아왔다. 그러던 중 대학생 때 한 친구의 전화를 받은 뒤로 도대체 이 군대는 어떤 곳인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군에 입대한 친구의 전화를 며칠 간격으로 받았다. 처음에는 제대 후 아이돌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겠다고 했다. 말끔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친구에게 "너의 선택을 응원한다"는 응원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에게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나중에 제대를 하면 미국으로 넘어가서 할리우드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뭔 시답지도 않은 말을 이리도 진지하게 하나, 웃으며 넘기려 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주변 다른 친구들에게 이 친구의 상황에 대해 물으니 심각한 조울증이 군대에서 발병하여 입원해 있다고 했다.

결국 그는 군복무 중간에 제대를 하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군에 입대한 또 다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손가락 일부가 절단되었단다. 그 때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징병제라는 이름으로 20대 청춘들을 데려가서 내 친구들을 이 꼴로 만드는 군대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

처벌받지 않은 군대와 가해자들

"매년 100여명의 꿈이 군대에서 진다. 군대에 가서 사람이 아니라 흙이 되어 돌아오는 이가 이렇게 많다." (p.13)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으로 인권활동을 하고 있는 김형남은 그의 책 <군, 인권 열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자 김형남은 프롤로그에서 "요즘 군대 좋아졌다"라는 말에 지금도 어떤 이의 꿈은 강요된 침묵에 질식당하고 있고,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군대에 가는 것"이라며, "사람답게 존중받는 군인이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다. '요즘 군대'는 과연 그런가"(p.14)라며 묻는다.

책 <군, 인권 열외>에는 네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사람, 윤승주 일병. 2014년 3월, 모 포병대 의무대에 배치된 윤승주 일병. 그곳에서 윤일병은 한 달 동안 선임들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다 4월 7일 사망했고, 군 당국은 윤일병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 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군인권센터는 윤일병의 사망 원인은 폭행이며, 군이 발표한 수사 결과는 조작된 것이라고 폭로하면서 윤일병 사망 사건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결국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군의 조직적 사건 축소·은폐 시도와 관련된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1년 국방부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군대에서 의문사한 자식들의 부모이다. 군대 내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여론이 악화되자 99년 9월 국방부는 처음으로 군의문사 및 군폭력 사건에 대한 육·해·공 합동 특별조사단을 구성하여 166건의 민원을 접수하여 재조사를 하고 있던 때였다. 이런 국방부의 행보에 지지를 해야 마땅할 부모들은 왜 그 앞에서 특별조사단의 해체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었을까?

인권하루소식 1939호에 따르면, 당시 특조단에 접수된 민원 중 73%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타살 의혹이 제기되거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사건들인데, 특조단은 이 가운데 단 한 건도 '타살'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도 이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당시 인권하루소식은 군대에서 의문사한 고인들의 마지막 상황을 기록했다. 1990년 4월, 홍완표 이병은 코를 제외한 안면부 전체가 크게 손상을 당한 상태로 두 눈을 뜬 채 죽었다. 홍 이병의 죽음에 대한 부대의 발표는 '자살'이었다. 1998년 9월, 해군 김태균 중위는 실종된 지 한 달 만에 어느 뒷산에서 목이 맨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부대에서는 '함대 생활에 적응을 못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태균 중위는 앞니 5개가 부러진 상태였고, 여러 의혹들이 즐비했다.

2001년 3월, 김문환 일병은 철책근무를 서고 있다가 사망했다. 해당 부대는 총기로 자살을 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근무 당시 입던 옷에 남은 핏자국이 너무 깨끗했다고 한다. 이 사례들은 군대에서 의문사한 사례들 중 극히 일부이다.

자식을 군대에서 앞서 보낸 부모들의 피눈물로 특별법을 만들어 2006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생기고, 그 후신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생겨 군대 내에서 의문사한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 9월 15일 기준, 두 기관은 군대에서 발생한 과거의 사망사건 1913건 중 967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967명의 사람이 군대에서 죽은 사건에 대해 진실이 밝혀졌다는 이야기이다. 바꿔말하면, 군 당국은 967명의 죽음을 거짓으로 덮었다는 말이다.

다시 책 <군, 인권 열외>로 돌아가면, 저자 김형남은 자신이 누린 시절이 누군가가 잃어버린 좋은 시절이라는 걸 몰랐다고 읊조린다. 우리는 "요즘 군대가 좋아졌다"라는 말만 내뱉을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켜켜이 쌓인 군대에서 잃어버린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흘린 피눈물의 무게를 기억해야 한다.

변한 게 없는 군대라는 조직

두 번째 사람, 이예람 중사이다. 책 <군, 인권 열외>는 공군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망사건을 통해 여군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군 조직에서 어떤 대우와 어떤 비극을 견디며 복무를 하고 있는지 밝힌다.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수습하는 군의 태도는 위와 다르지 않다. 조작과 회유,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등 군의 태도는 한결같다.

저자 김형남은 계급 질서라는 단선적 이해만으로 군대 내 성폭력 이슈를 바라보면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성폭력 사건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관계의 모습을 오롯이 그려내, 각각의 권력관계를 사건 유형별로 세심하게 분석해 문제 상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p.79)

더불어 저자는 남군 간 성폭력 사건의 경우 대부분 구타·가혹행위 등 괴롭힘을 동반하는 '성고문'의 형태를 띤 경우가 많다고 밝히며, 성폭력의 원인에 있어 피해자의 무력감과 가해자의 자신감이 마주할 때 형성되는 뒤틀린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성폭력 사건조차도 '군 기강해이'로 치부하는 군을 비판하며 구조적 원인을 찾아 해체하고 분석하지 않는 한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은 '구호 외치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고 꼬집는다.(p.81)

특히 여군을 같은 군인 동료로서가 아니라 술 따르는 사람으로 원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으로 피해자 여군이 사망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세 번째 사람, 홍정기 일병. 2016년 홍정기 일병은 군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죽고 난 뒤 알게 된 병명은 골수성 백혈병. 몸이 이상하여 여러차례 찾아간 의무대에서 군의관은 상급병원으로 보내지 않은 채 감기약만 줬고, 그 아픈 몸을 이끌고 훈련에 참여했다. 여차저차 가게 된 민간병원에서 의사가 혈액암이 의심되니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나 부대에서는 이틀 뒤의 외진 날짜에 큰 병원에 가게 하였고, 이틀 뒤 외진 버스를 타고 군병원에서 뇌출혈을 확인한 뒤 대학병원에 실려 갔을 땐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떠올랐다. 고 노충국 병장. 노충국 병장은 2005년 2월부터 계속되는 복통과 소화불량으로 국군병원에서 위궤양 진단을 받고, 6월 만기 전역을 한다. 그리고 7월 7월 민간병원에서 위암 말기를 진단 받고, 10월 27일 사망한다. 전역한 지 한 달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결국 사망한 노충국 씨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매일같이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가 열렸고, 국회가 시끌거렸고,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와 회의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노충국씨의 진료기록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 노충국 병장의 사망으로 '군대 내 의료접근권'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방의 의무로 젊은 청년들을 국가가 데려가서 한낱 부속품처럼 쓰다 버려지는 취급을 받던 군인에게 '의료접근권'의 중요성이 크게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노충국 병장 사망 이후 노충국 병장과 유사한 사건의 당사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2004년 4월 말 전역 후, 20여 일만에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결국 2005년 12월 사망한 고 윤여주, 2005년 2월에 전역하여 위암 3기를 진단받고, 2006년 8월에 사망한 고 박상연, 전역 전 군병원에서 장염을 진단받고 2005년 3월에 전역 후, 췌장암 말기를 진단 받아 2007년 11월에 사망한 고 오주현, 그리고 전역 전 군병원에서 위궤양을 진단받고 2005년 6월 전역 후 위암3기를 진단받은 뒤 2005년 11월에 사망한 고 김웅민.

이들의 죽음 이후 국방부는 '군의무발전추진계획'을 발표하며 국군장병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개선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었다. 창군 58년만에 병사들의 건강권에 대한 관심과 실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 군대에서는 홍정기 일병과 같이 군대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군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순히 군의관의 무성의한 진료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변한 것이 없다. 이 역시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을 터. 저자 김형남은 건강하게 입대한 사람을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했으면 그 빈자리는 오롯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p.94) 나라를 지키다 떠난 이들이 나라와 싸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답게 군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네 번째 사람, 변희수 하사. 변희수 하사는 트랜스젠더 군인이다. 남군/여군을 떠나 그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변희수. 저자는 그 어느 조직보다도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군대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커밍아웃을 하는 용기는 변희수 혼자만의 용기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변희수의 용기 뒤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우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다고 말이다. 변희수 하사는 2019년 7월 상관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한 뒤 차별과 배제 없이 별 탈 없이 잘 복무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육군 본부가 변 하사를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한다. 이후 변희수 하사와 시민단체들은 함께 군과 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2021년 10월 7일, 법원은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변희수 하사는 이미 세상을 등지고 없었다. 세상과 역사는 한 발짝 진보하였는데 가장 기뻐해야 할 이가 없었다.

저자는 그의 부재가 가장 슬픈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게다. 그리움과 슬픔을 억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음이 글자 뒤에 함께 읽혔다. 우리는 단순히 법원의 판결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 변희수 하사를 응원했던 군인들이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은 먼 걸음이겠지만, 이런 작은 걸음들이 모여 언젠가 큰 한 걸음을 만들지 않을까. 제2의, 제3의 변희수 하사가 나온다면 이 작은 힘들이 모여 그들을 지켜낼 것이리라.

책 <군, 인권 열외>는 이 네 명의 사람 외에도 군사법원법, 지금은 폐지된 공관병 제도, 고급간부식당, 병사들의 휴대폰 사용, 영창제도, 병가 제도, 군대 내 성소수자, 기무사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낸다.

아들 둘을 둔 덕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커서 군대를 가야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초등학생 아들 둘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엄마, 군대 가면 먹기 싫은 음식도 먹어야 돼?" 편식이 심한 큰 아들의 질문이다. 다른 아들이 물었다. "엄마, 군대 가면 나 엄마 매일 못 봐?" 아직은 엄마 껌딱지인 둘째 아들의 질문이다. 혹자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질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차마 웃지를 못한다.

군대 내에서는 먹기 싫은 음식들을 억지로 먹이고, 토하게 하고, 또 먹이게 하는 고문과도 같은 괴롭힘이 존재하며, 자식이 군에서 죽어도 그 마지막을 부모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게 조작하고 왜곡하는 곳이 군대이다. 아무리 "요즘 군대가 참 좋아졌다"고 한들, 그곳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군인들을 부속품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곳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오늘만해도 코로나 격리 해제된 뒤 이틀만에 혹한기 훈련에 참가한 병사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언론에 드러나는 것은 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이 정도라도 변화시킨 사람들의 존재는 참 선명하다. 의문사 한 자식의 영정 앞에 고꾸라지며 울부 짖으면서도 허리 꼿꼿하게 세워 국방부 문을 두드리며 진상규명을 외쳤던 부모들이 그렇고, 그들의 곁을 함께 지킨 인권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그렇다. 무엇보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등진 당신들의 죽음이 지금의 세대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군대 생활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음에 저승에서라도 위안을 받으시길 바란다.

윤석열 정부는 2025년까지 병장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후신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올해 9월 13일로 활동이 마감될 예정이다. 살아 있는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높여주며, 이미 사망한 군인들에 대한 예우는 무시됐다. 이 둘은 따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징병제의 국가에서 국가의 부름에 응답해 데려간 군인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은, 군복을 입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언제든지 현재의 군대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병사들의 월급을 높여주니 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토달지 말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요구가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두 눈 똑똑히 뜨고 군복 입은 국민이 사람답게 군생활을 할 수 있는 군대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저자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 책의 한 구절로 글을 마친다.
 
"나라와 시민의 덕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는 군인이 목숨을 걸고 나라와 시민을 지킬 줄 아는 법이다. 이제 안 맞고 안 죽는 것 그 이상을 상상할 때다. 이 세상에 어쩔 수 없는 건 없다."(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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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배여진 이사가 썼습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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