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군정질문 없었던 '민주당 텃밭', 이걸 깨트린 군의원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장진숙 기자]
"군수님! 토지매입보다 먼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2022년 12월 15일, 전남 화순군의회 본회의장. 그곳에서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군수와 군의원 사이의 날선 공방이 오간 것이다. 지방의원이 지방자치단체를 감시·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다. 그렇지만 화순군의회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전남 화순은 민주당의 절대 강세 지역으로, 군수부터 군의원까지 모두 민주당이 장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5년만에 부활한 군정질문 김지숙 의원이 지난 해 12월 15일 화순군수와 군정질문 결과를 페이스북에 보고하였다 |
ⓒ 김지숙 |
신혼집을 구하다 전남 화순에 발을 딛다
김지숙 의원은 딸 여섯이 있는 집의 막내딸로 자랐다. 전남대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특히 미군의 범죄와 두 여중생(2002년 미군장갑차 압사사건)의 죽음은 젊은 그에게 충격을 줬다. 대학 졸업 후 여러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2006년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한다. 화순에 특별한 연고는 없었다. 우연한 사건(?)으로 그는 화순에 표류했다.
"결혼 후 신혼집을 구해야 했는데 광주에서 살기에는 남편과 저 모두 종잣돈이 없었어요. 전세를 알아보려 이곳 저곳 다니던 중 버스에서 잠이 들었어요. 일어나보니 화순 초입인 너릿재 논밭인거에요(웃음). 사랑방신문에 나온 화순 아파트 광고를 보고 찾아갔죠. 바로 남편에게 전화했죠. 여보! 여기 2000만 원 집이 있어! 그렇게 연고도 없던 화순에 자리를 잡아 17년을 살았네요."
김 의원은 2006년 1월 민주노동당 화순군위원회 결성 이후 평당원에서 시작해서 진보정당 실무자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 화순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홍보부터 공약까지 김 의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진보정당 실무자 외에도 김 의원은 화순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김 의원은 엄마표 체험활동을 하는 교육협동조합을 꾸렸다. 교육청으로부터 진로센터 사업을 위탁받으면서 학교와 지역을 오가며 폭넓은 지역활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학교 상담실의 전문상담사로 일하면서 이는 교육현장과 노동자의 처우개선 등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교육협동조합, 학교상담사 거쳐 '기후위기 화순행동' 결성까지
"진로센터 활동이 도움이 많이 되었죠. 직업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직업인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를 해줘야 하잖아요. 많은 직업군들도 필요하고요. 정말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막무가내로 수차례 만나서 설득과정을 거치면 열에 둘셋 정도의 사업장에서 동참해주셨지요. 그렇게 모아진 체험처의 직업인 멘토들의 열정이 선한 영향력으로 퍼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확신을 가졌어요. 길이 없는 곳에 숱한 발자국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요."
▲ 화순용기내장을 이끈 김지숙 의원 김지숙 의원은 용기없는 장터인 화순용기내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
ⓒ 김지숙 |
화순용기내장은 일회용 없이 알맹이만 파는 장터다. 김 의원은 아이스팩 사업을 지나 더 넓고 더 많은 실천 활동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지역의 1인 소상공인들과 농민단체들, 지역의 마을공동체가 만나며 집단의 뜻을 모아 '용기내장'이 탄생했다.
코로나가 진행 중이던 시기, 첫 장에 대한 부담을 안고 2021년 12월 4일 첫 번째 '화순용기내장'을 열었는데 반찬통, 장바구니 든 손님들로 북적거리며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 뒤 결과는, 쓰레기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행사가 끝났는데 쓰레기가 20리터 종량제 봉투 하나로 충분히 담기는 거에요. 200여명이 참여한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니 정말 놀라웠어요. 3회 용기내장부터는 홍보 현수막도 걸지 않고 SNS로만 홍보하고 있어요. 그래도 되더라고요. 용기내장을 하면서 기후정의 실현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얻었어요."
화제의 1등 당선, 화순군 최초의 여성 지역구의원
김지숙 의원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진보당) 출신으로, 쟁쟁한 민주당 후보들을 제치고 1위로 당선되었다. 소수정당 소속, 타지역 출신(장흥), 여성 등 불리한 환경에서 이룬 그의 당선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화순군의회가 생기고 최초의 여성 지역구 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가 경력단절 여성, 타 지역 출신입니다. 화순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그런 배경들이 저를 후보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대변하는 적임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의원은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들도 바꿔야한다고 말할 정도로 안에서 꽁꽁 묶여있던 4년이었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김지숙으로 대변되었다"며 "선거 내내 유세문을 따로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군민들 말씀 그대로 유세문이 되었다"고 말했다.
▲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김지숙 의원 김지숙 의원은 민주당 텃밭에서 1위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
ⓒ 김지숙 |
"군정질문이 오랜만이잖아요. 저도, 의회 직원들도, 의원들도. 심지어 군수도 모두 경험이 없었어요. 그래서 집행부들과 사전에 소통하고 군수에게도 내용을 사전에 얘기했어요. 모두가 처음이니까 군정질문을 계기로 소통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김 의원의 군정질문으로 주민 소통 없이 이뤄지고 있는 화순군 환승센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의원은 무려 10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환승센터가 공론화 과정 없이 50억이 넘는 부지부터 매입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군정질문 이후 많은 주민들이 전화와 문자를 통해 격려를 보냈다. 큰 소리를 내는 것보다 군민의 입장에 서서 '견제와 감시'라는 기본에 충실하고자 했던 김 의원의 목표가 빛을 낸 시간이었다.
그가 집중하는 활동은 또 있다. 바로 의정활동을 본인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다. 회기에서 했던 질문들, 지적사항들과 결과 등을 정리해 매일 올려놓았다. 기본에 충실하겠다며 시작한 작은 실천이었지만 큰 반향을 불렀다.
"제 글을 보고 화순군민들이 친구신청을 많이 해주셨어요. 의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제 발언을 올려놓으니 세세하게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고, 더 의견을 주시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운거 같아요. 또한 제가 민원을 해결하지는 못해도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군민들께서 좋은 평가를 해주시더라구요."
지금 김 의원이 집중하는 현안은 ▲돌봄의 공공성 확대 ▲자원순환과 기후위기 대응 등이다.
엄마로서 독박육아, 상담사로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직접 경험했던 김 의원은 "돌봄의 인식개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며 "돌봄이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돌봄노동자와의 간담회, 실태조사 등을 계획하고 있으며 관련 조례도 준비할 예정이다.
또한,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과 화순용기내장의 성공경험을 토대로 더욱 환경과 기후의 관심도 더욱 구체화할 예정이다. 화순군의원으로서 쓰레기를 자원화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과 의제를 계획하고 있다.
▲ 잠잠하던 화순군의 군정질문을 부활시킨 김지숙 의원 |
ⓒ 김지숙 |
김 의원에게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2024년 22대 총선(나주시화순군 선거구)이다. 김 의원은 나주와 화순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진보당(안주용 후보)은 나주시화순군에서 19.5%를 얻어 민주당 텃밭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1 지방선거에 황광민 나주시의원(나 선거구) 역시 1위로 당선되어 변화의 실체를 증명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황광민 의원이 1위를 한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서 "지역구 당선을 위해서 저와 황광민 의원 등 지방의원들이 앞장서며 정치학교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포부를 밝혔다.
끝으로 김 의원에게 어떤 의원으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4년 후에 제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의 1등 당선보다, 우리 지역구에도 김지숙 같은 진보당 의원이 한 두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정말 듣고 싶어요. 진보당 의원이 한 명 더 있다면, 더 큰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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