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보증' 심리 이용한 사기꾼들... 거품 계속 꺼질 것"
[이영광 기자]
▲ MBC <PD수첩>의 한 장면 |
ⓒ MBC |
최근 전세 사기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피해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10월 '빌라왕'으로 불리는 김아무개씨가 사망했다. 김씨는 빌라 1139채를 소유해서 '천빌라'로 불렸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10일 MBC < PD수첩 >에서는 '전세왕, 천빌라 그리고 공모자들' 편이 방송되었다. 빌라왕을 집중 취재한 이날 발송에서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또 김씨가 어떻게 빌라를 사들였는지 등을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세왕, 천빌라 그리고 공모자들' 편을 연출한 소형준 PD를 지난 11일 서울 상암 MBC에서 만났다. 다음은 소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소형준 MBC PD |
ⓒ 이영광 |
- 지난 10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전세왕, 천빌라 그리고 공모자들' 편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피해 가구 수가 1100채가 넘어서 많은 피해자분을 만날 수밖에 없던 회차였어요. 거시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피해자분들의 개별 사연을 방송에 다 담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피해자분들께서 '일반 시청자들 눈높이에 저희의 사연을 널리 알려주신 것에 대해서 참 감사하다'라고 많은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1139채의 빌라를 소유한 일명 '빌라왕' 김씨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제보를 먼저 받았어요. 저도 검색 해보니까 빌라왕이 10월에 죽었다는 기사가 단신으로 몇 개 있더라고요. 이런 제보를 받아서 흥미롭다고 보고 있었고요. 전세 사기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던 찰나에 갑자기 모든 언론사에서 다 덤벼들어서 기사화를 하더라고요. 신년을 앞두고 12월 내내 핫했던 이슈였습니다."
- 처음에 제보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사실은 조금 주저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 PD수첩 >이 2019년도에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다루었잖아요. 근데 한편으로 달랐던 점은 이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상속 문제니 보증보험 이행 문제에 있어서 접근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 방송은 이 구조에 대한 부분이라면 문제 그 이후 제도에 대한 지적은 비중이 크지 않았거든요. 또 3년 전에 방송 때 제일 많은 사람이 500여 채였어요. 근데 지금은 1000 단위가 넘어가니까 스케일도 다르고 지금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하다는 점이 있어서 많이 고민하다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어요."
- 언론에서는 대부분 김아무개씨라고 하는데 실명을 공개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직도 본인들이 피해자인 줄 모르시는 분들이 다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취지에서 3년 전 방송에서도 우리가 실명을 다 공개했거든요. 방송을 보시고 혹시라도 자기 등기 떼어봤을 때 이름 석 자가 있다면 그건 피해자로서 인식하셔야 되니까 피해 확대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공개했습니다."
- 계약했는데 왜 모를까요.
"지금은 집주인이 바뀌었을 때 세입자가 집주인이 바뀐 걸 알 수 없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집주인 바뀐 케이스들이 많아요. 등본을 정기적으로 떼어봐야 되는데 사실 떼었다 해도 '바뀌었네'에서 그치기 마련이죠. 그리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이 세입자에게는 전혀 없고 집주인들끼리만 토스하는 경우는 알기가 힘들죠. 집주인이 바뀔 때 세입자에게 통보해 주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합니다."
- 자본금 없이 빌라를 살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저도 처음에 황당하다 싶더라고요. 대한민국의 부동산은 크게 매매가와 전세가 등 두 가지 가격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내 집에 들어가서 살면 상관이 없죠. 하지만 내가 그 집을 사서 세를 주니까요, 세를 얼마로 줄 건지는 집주인 마음이잖아요. 근데 1억짜리 집에다가 1억짜리 전세금을 놔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세입자는 1억을 주고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100원 한 장 안 쓰고 집주인이 되는 구조죠."
- 일단 매매해야 전세를 놓을 수 있지 않나요?
" 원래는 그게 정석이죠. 근데 매매와 전세가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그래서 그걸 '동시 진행'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세 먼저 받고 매매를 거의 찰나에 해버리는 거죠."
- 명의 넘길 때 김씨가 건축주에게 돈을 줘야하지 않나요?
"그렇게 돼야 하는데 계약은 건축주와 세입자가 먼저하고 그다음에 건축주와 김씨가 계약합니다. 그런데 돈 흐름의 순서는 세입자가 김씨한테 주고 김씨가 건축주한테 줘요. 세입자는 원래 전세금을 집주인한테 주잖아요. 집주인이 김씨이니까 전세금을 김씨한테 줘야죠. 근데 김씨는 건축주에게 그 가격을 지불해야 하니까 그 세입자들의 돈을 가지고 건축주한테 주는 겁니다. 그럼, 세입자 돈으로 그 집을 산 거예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 김씨는 하루에 빌라 13채를 사들일 정도로 쇼핑하듯 빌리 사들인 것 같던데 제재가 없나요?
"그 지점이 답답한 거였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결국 63억이라는 종부세를 이 사람이 떠안게 되잖아요. 그런데 체납되고 세금도 안 낸 사람이 계속해서 이런 매매 행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는 지점이 납득 안 되고 왜 정부에서는 그거를 그냥 방관했냐죠. 이건 국토부도 방임죄가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 핸드폰 천 개 산다고 해도 문제는 아니죠. 그러나 집은 다르지 않나요?
"그렇죠. 그건 이제 세입자랑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적인 감시망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고요. 예를 들어 주식시장 같은 경우는 주가 조작을 하는 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금융감독원이거든요. 금융감독원에 주가조작 딱 한 번 걸리면 한 10년 형씩 나옵니다. 무서워해서 함부로 못 하죠. 그런데 한국에서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의 2배예요. 2배인데 아무런 규제가 없는 거죠. 규제가 없는 이유는 한국 사회 주류가 부동산 시장을 통해서 돈을 벌기 때문에 전세금 통해 계속 집값이 올라야 본인의 자산이 축적되기 때문에 방치하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 MBC |
- 김씨는 씀씀이가 컸나 봐요?
"이건 제보자 말에 따르면 1년에 8억 가까이 써서 신세계 백화점의 VIP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통장 내역을 봤을 때 신세계 백화점 어디 명품관 그리고 명품 브랜드에서 쇼핑한 금액들이 상당했어요. 진짜 한 달에 거의 한 8000씩은 쓰는 것 같더라고요. 대단하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천만 원씩 긁던데요. 다 그걸 신용카드가 아니고 체크카드로 하더라고요."
- 김씨가 부동산에서 일한 거 같은데.
"맞아요. 2019년 방송에 저희가 지목했던 부동산이 있어요. 거기에서 여러 명을 다루기도 하고 했는데 그중에 방송에도 나온 사람이 한 부동산과 계속해서 거래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동산이 컨설팅 역할을 해준 거예요. 이 부동산에서 김씨가 중개 보조인으로 일을 했었다는 증언이 있었고 실제 자기 블로그에도 그렇게 언급이 되어 있고요. 그래서 이게 참 묘하게 연결되어 있죠."
- 김씨 수입은 명의비 명목의 수수료인가요?
"그건 당연한 것 같고요. 근데 그게 주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집값이 오를 거라고 맹신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전세금 2년만 버티면 5%를 올려받을 수 있잖아요. 5%에 해당하는 돈을 노렸던 것 같아요. 또 방송 나온 명의비라는 명목으로 받는 수수료도 있고요. 지금은 하락장이라서 안 그렇지만 2019년도 처음에 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빌라값 자체가 올라갔을 거예요. 그 시세 차익도 있을 수 있고."
- 명의비 명목의 수수료는 뭔가요?
"건축주가 자기가 건물을 지었잖아요. 근데 이걸 누군가한테 팔아야 돈이 되잖아요. 이걸 팔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사 가는 거예요. 그러니 꾀를 내서 전세 세입자를 들인 거죠. 근데 전세 세입자를 들여도 이걸 판 건 아니잖아요. 아무도 안 사는데 김씨가 나타나서 '제가 살게요. 근데 아무도 안 사니까 내가 공짜로 받을 수 없고 나한테 명의비 혹은 수수료 명목으로 한 200만 원만 주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건축주는 이 건물 짓는 비용을 빨리 뽑아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김씨한테 200만 원 웃돈 주고 팔아버리는 거죠."
- 건축주가 김씨에게 판 거면 김씨가 건축주에게 돈 줘야 하지 않나요?
"그게 맞는 건데 이거는 건축주가 이 물건 아무도 안 사니까 제발 사달라면서 200만 원을 건네주고 파는 거죠. 김씨는 자기의 명의를 빌려주고 200만 원을 얻는 구조였던 것 같아요."
- 그러나 세입자에게는 자기 돈 없으니 배 째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쁜 사람이죠. 이건 설명이 필요 없네요. 애초에 그걸 갚을 의지도 없던 사람이고 만약에 자기가 집이 수천 채가 있으니까 이 사람이 들어가고 나올 때 분명히 그 돈 지급을 해줘야고 새로운 세입자 찾아야 되는데 그 중간에 공백이 싫은 거죠. 그러니까 '나 돈 없으니까 너 다른 세입자 찾을 때까지 나가지 마'라는 거고요. 이 사람은 그럼 다른 세입자 계속 찾으러 다녀야 되는 거죠. 근데 그게 아까 처음에 설명드린 대로 빌라값이 계속 올랐다면 그 값이 똑같이 형성돼 있어서 다른 세입자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부동산 하락세가 오니까 아무도 그 비싼 값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 세금은 안 냈나 봐요?
"맞아요. 그러니까 한 가지 의문은 종부세가 이렇게 많이 나올 거를 예상을 못 했을까와 왜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했지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브레이크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정부에서 김씨가 세금 안 냈으니까 '이 집을 담보로 압류할 거야'라고 압류 걸어놓잖아요. 그러면 김씨는 이걸 가지고 여기에 살고 있는 세입자가 불안해하니까 '너 불안하지, 네가 내 돈 대신 갚아'라고 하면 세입자는 얼마냐고 물어요. 김씨는 '한 1천몇백만 원 나왔는데 내가 그 와중에 또 수수료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2천만 원 입금해'라고 하죠. 이 집을 압류 풀어주는 일종의 자기 권력으로 활용하더라고요."
- 주택 도시보증 공사(HUG)가 전혀 역할 못 할뿐더러 전세 사기 도구로 활용된다는 지적도 있나 봅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1억짜리 집인데 전셋값이 1억 혹은 9000만 원이면 집값 대비 전셋값이 상식적으로 너무 비싼 거잖아요. 그러면 세입자들이 안 들어가야 되는데 들어간단 말이죠. 이 사람들이 바보인가 하면 그게 아니고 HUG에서 보증 보험 해 주기 때문에 세입자들도 '그러면 혹시나 내가 사기를 당해도 정부에서 이걸 갚아준다니까 괜찮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걱정을 덜고 들어가게 된 셈인 거예요. 근데 제가 전세 보증 반환의 어떤 역설이라고 타이틀을 붙였었는데 역설적으로 사기꾼들은 이 안전한 심리를 활용한 거죠."
- 피해자들 만나보셨는데 어떠셨어요?
"너무 안타깝고 절망적이죠. 그리고 김씨 개인도 문제지만 사실은 이제 지금쯤 와서는 정부에게 많이 화가 나 있는 것 같았어요. 정부에서 좀 빨리 이런 거를 해결해 줬으면 하는 소망들을 갖고 계십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앞으로 더 이런 일들이 잦아질 것 같아요. 그리고 올해 내내 그리고 내년까지도 이런 버블들이 계속 꺼질 것 같아요. 그게 1차적으로 당한 그 피해자들도 너무 염려되고 이런 걸로 인해서 사회 전반적인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그래서 저희 < PD수첩 > 팀은 그런 걸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 취재할 때 어려운 게 있을까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어느 정도에 맞춰야 될지 고민이 됐어요. 저희가 3년 전에 이 전세 사기의 구조를 다 얘기했었거든요. 근데 우리 기자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까 이런 걸 얼마나 친절히 설명해야 될지 난이도 정하는 데 있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 취재했는데 방송에 못 담은 게 있을까요?
"보증보험이 일부만 보증보험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억짜리 집이면 1억짜리 보증을 HUG에서 해줘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만난 케이스 중에 40%만 보증이 돼 있어요. 60%는 보증이 안 돼요. 이런 상황이라서 40%는 싸움을 통해서 HUG한테 돌려받고 60%는 또 경매를 통해서 돌려받아야 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 가운데 낀 사람들의 사연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걸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방송에는 담아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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