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범벅 아들 잊혀지지 않는다" 정유엽군 유족, 정부에 소송
2020년 3월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폐렴 증상을 보였으나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한 정유엽(당시 17세)군 유족이 병원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정유엽 사망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이하 민변센터)는 16일 정부와 병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일단 정군 위자료로 2억원가량을 청구했으나 향후 청구 액수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군 아버지 정성재(56)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경산중앙병원·영남대병원·경산시·중앙정부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며 “아들이 아팠을 때 병원에선 집으로 돌려보냈고, 선별진료소와 보건소에 연락하면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아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얼굴에 피범벅이 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병원과 정부에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장을 제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스크 사려고 줄 섰다가…17살 유엽의 죽음
정부는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마스크 요일제’를 도입했다. 출생연도에 따라 정해진 요일에만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정군이 마스크를 샀던 그해 3월 10일에는 비가 왔다. 정군은 오후 5시쯤 비를 맞으며 1시간 정도 줄을 서서 마스크를 샀고, 그날 밤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틀 뒤 열이 더 심해지자 정군 부모는 인근 경산중앙병원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열이 40도가 넘는 정군의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했다. 경산중앙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 치료가 가능하다”며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한 뒤 돌려보냈다.
정군은 다음 날인 13일 오전 일찍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폐X선 촬영을 했다. 당시 의사는 “폐에 염증이 좀 보인다”는 소견을 내면서 “집에 돌아가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정군의 아버지가 사정해 차 안에서 겨우 링거를 맞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간 정군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한 건 그날 오후쯤이다. 정씨는 1339(질병관리청 콜센터)에 급히 전화를 걸었다. 1339에서는 경산보건소로 연결을 해줬고, 보건소에서는 “코로나19 검사가 나오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소문 끝에 결국 영남대병원에서 정군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정씨는 경산중앙병원 측에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이후 정군은 영남대병원 음압병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정군의 어머니 이지연(54)씨는 “의사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해서 아들을 보러 갔는데, 아들이 피를 토해 온몸과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이 모든 장면이 우리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말했다.
정군은 사망 직전까지 14차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13번은 음성이 나왔고, 1번은 양성으로 판단(정씨 부부가 들었던 담당의 소견)됐다. 정부는 정군 사망 직후 최종 ‘음성’ 판정을 했다. 결국 사망 원인은 ‘폐렴’으로 결론났다.
정군 아버지 “아들과 같은 죽음 다시는 없어야”
그동안 정씨 부부는 정부와 경산중앙병원 등의 사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경산중앙병원 측은 의료분쟁 등을 염려한 탓인지 입을 닫았다. 정부에 요구한 진상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씨는 아들이 죽은 지 한 달 뒤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만났다. 당시 김 총리는 “감염병을 대비해 감염병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의료 공백이 없게끔 의료체계를 촘촘하게 만들자”며 ‘정유엽법’ 제정을 언급했다. 정씨는 “정부의 말을 믿고 정유엽법 제정 등 대책을 기다렸으나, 결국 ‘의료분쟁으로 해결하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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