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뇌전증으로 수천만원씩…자백한 자칭 '병역의 신'의 수법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발급받는 수법을 통해 대규모 병역면탈을 알선한 것으로 지목된 ‘병역브로커’ 구모(47)씨가 최근 검찰에서 자신의 혐의(병역법 위반)를 인정한 것으로 16일 파악됐다.
구씨는 지난해 12월 구속영장 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때까진 “단순한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를 정당하게 받은 것”이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혐의 일체를 자백했고, 구속기소된 이후부턴 변호인 입회를 거부한 채 홀로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자백 등을 통해 검찰이 수사 선상에 올린 병역면탈자의 수는 최소 70명에 이르지만, 향후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구씨의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병역면탈자는 7명이다. 이들에게 뇌전증 진단을 통한 병역 면제·감면 방법을 상담해 준 대가로 15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추가 수사 대상에 오른 병역면탈자들이 늘어난 데다 구씨에게 지급했다는 돈의 액수도 천차만별이라 향후 추가 기소에 따른 혐의액은 커질 전망이다. 검찰은 이미 구씨는 물론 또 다른 병역브로커 김모씨가 병역면탈 방법을 알려주는 대가로 많게는 수천만원씩 받았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이들은 병역의무자들이 불법이 두려워 계약을 취소하려고 하면 계약금 지급청구 소송을 통해 압박하고, 병원에 가기를 주저하면 “왜 병원에 가지 않느냐”며 재촉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29일 이원석 검찰총장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 지시 이후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 합수2팀장(박건영 부부장) 등을 병역비리 합동수사팀(팀장 박은혜 형사5부장)에 투입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체포영장이 기각됐던 브로커 김씨를 보강수사를 통해 지난 9일 병역의무자 10명의 병역을 면탈해준 대가로 1억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병역법 위반)를 적용해 구속했고, 이들로부터 확보한 진술·계약서 등으로 확인한 프로배구·프로축구·연예인과 대형로펌 변호사 등 사회지도층 자녀 등 병역면탈자를 차례로 소환하거나 진술서를 받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만큼 병역면탈 당사자에 대한 추가 신병 확보도 검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누구든지 영장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각각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들의 병역면탈을 도운 부모 등 가족·지인도 원칙적으로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사실관계와 법리를 따져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병역면탈 사유로 악용된 질병은 뇌전증 하나다. 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뇌전증의 유병률은 1000명당 4~10명(0.4~1.0%) 정도다. 특히 소아기(0~9세)와 노년기(60세 이상)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그런데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병역면제 판정(5, 6급)을 받은 이들 중 사유가 뇌전증인 경우는 100명 중 8명(7.7%)이었다. 적잖은 비중이지만, 이번 비리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뇌전증 진단을 통한 병역면탈이 적발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앞서 이원석 총장은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도 독려했지만, 아직 병역브로커와 의료계 사이 유착 여부에 관해선 수사엔 가시적 진전은 없는 상태다. 수사 상황을 아는 한 관계자는 “구속된 병역브로커들도 의사나 의료기관 유착 여부에 대해선 자백한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은 질병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감면받으려면 병무청이 지정한 병원에서 병무용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만큼 지정병원을 중심으로 특정 의사와 개별 접촉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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