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사람보다 기억에 남는 사람 되고파"
[황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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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쿼드러플스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한나씨가 훈련하고 있다. ⓒ 김혜겸·이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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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씨는 청양에서 살고 있지만 예산여고에 입학하면서 우리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는 까닭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5살 때 두 여동생과 함께 97일 동안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보육원 아이들을 힘닿는 대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싹튼 것 같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밖에서 차별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좋은 옷을 입고 또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줄 수 있다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부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양중학교 시절 용돈을 모아 홀몸어르신께 은비녀를 선물한 적이 있다.
"혼자서 자식들 키우느라 평생 옥비녀 한번 끼워보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고 증조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을 늘 후회하고 있었는데,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청양에서 홀로 생활하는 할머니께 옥비녀는 아니더라도 은비녀라도 전해드리고 싶어 용돈을 모아 선물했다."
그는 이후 꾸준히 연탄(500장)과 간식, 겨울용품 등을 전달하며 할머니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 한나씨는 성탄절을 앞두고 한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가방과 신발을 선물했다. ⓒ 무한정보신문·김혜겸·이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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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김혜겸(42)씨가 "우리도 도움받은 경험이 있다. 한나가 청양에서 생활할 때 장학금 20만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꼭 돈이 아닌 다른 방식이라도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각박한 세상이지만 내 아이들만이라도 어려운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고 말하자, 한나씨는 "평소 엄마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에게 토끼해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해다. 이제 어엿한 실업팀 조정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군청 조정부와 정식계약을 맺었고, 단국대학교 체육학과도 합격해 공부와 훈련을 병행한다. "예산군청 명성도 높이고, 제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실업팀 선수로서 올해 전국체전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MZ세대 다운 당찬 계획이 돌아온다.
한나씨는 예산여고 조정부로 활약하며 출전한 거의 모든 대회에서 메달을 놓치지 않는 선수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실력과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당시 예산여고 조정부 이강호(현 군청 여자 조정부 감독) 코치의 권유로 예산여고에 입학해 본격적인 조정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이 감독은 "1학년 첫 시합 때부터 3학년 선수를 이기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한나가 통뼈인데다 신체조건과 힘이 월등히 좋았다. 체계적인 훈련만 잘 받으면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기억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선수 입문 후 1학년 첫 시합이었던 화천평화배에서 쿼드러플(4인승) 1등을 시작으로 그해 두 번째 시합인 제46회 전국장보고대회 쿼드러플과 싱글스컬(1인승)에서 2관왕을 차지하면서 존재를 알렸다. 꾸준한 훈련으로 실력을 쌓은 덕에 2~3학년 때도 ▲화천평화배 ▲전국체전 ▲전국조정선수권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물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반복된 무릎부상으로 지난해 말에는 수술까지 받았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표현도 이 때문이다. 그는 "2명과 4명이 합을 잘 맞춰 물살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때의 짜릿한 매력은 그 어떤 운동에서도 맛볼 수 없을 것"이라며 "1학년 첫 시합에 출전한 뒤, '일단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연습장소는 예당저수지다. 겨울철을 뺀 2월 말~11월까지 매일 새벽 6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그리고 오후에 훈련을 반복한다. 비나 눈이 오는 등 악천후에는 학교 체육실에서 로잉머신과 웨이트 훈련 등으로 대체한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운동을 시작했다. 종목은 투포환이다. 중학교에 진학해선 창던지기로 전향했다.
"충남체고 출신으로 전국체전 창던지기 금메달리스트였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 때 무릎 부상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고 상담심리사로 꿈을 바꿔 공부하고 있을 때, 이강호 감독님을 만났다."
어머니는 "한나가 운동선수를 꿈꾸고 있을 때, 그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내심 반대했지만, 아이의 결정을 존중했다"며 "당시 장오상 감독과 이강호 코치의 도움이 컸다. 아이들을 선수로만 보지 않고, 마치 자신의 자녀를 대하듯 정을 갖고 지도했다. 한나도 자신을 믿어준 감독과 코치의 신뢰 속에서 성장했다"며 고마워 했다.
한나씨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멋있는 사람, 잘하는 사람보다는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그러면서 "올해 예산군청 소속으로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첫째 목표다. 그 다음엔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며 "실업팀에서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남을 돕는 일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성적만 낸다고 반드시 좋은 선수는 아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열심히 하는 한나가 보기 좋았다. 운동뿐 아니라 인성을 갖춘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지도자에게는 큰 보람"이라는 이 감독의 말이 울림을 남긴다. 대한민국을 빛낼 한나씨가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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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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