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도 낙동강 버렸다... MB는 알까?
[김병기 기자]
▲ 흑두루미 사진공모전 수상작(입선,_이은성, 흑두루미 날다) |
ⓒ 순천시 제공 |
"흑두루미도 낙동강을 버렸습니다."
12일 새벽 6시30분경, 순천만 용산전망대 위에서 강나루 순천만 명예습지 안내인(63)이 한 말이다. 그는 랜턴도 없이 익숙한 동작으로 망원경을 설치한 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쉬고 있는 흑두루미를 금세 찾아냈다. 갯벌과 갈대 숲 사이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흑두루미들이 군집을 이뤄 군데군데 쉬고 있다.
"저렇게 안락한 잠자리가 이제 낙동강에는 없습니다."
[14년 전] 철새가 찾지 않는 강? 흑두루미만 3000마리 육박
▲ 철새들이 찾지 않는 죽음의 강으로 묘사한 4대강 홍보 동영상 갈무리 |
ⓒ 오마이뉴스 |
"철새가 찾지 않는 강"
당시 국토해양부가 제작한 3분짜리 영상은 4대강을 죽음의 강으로 묘사했고, 사업이 완공되면 "2011년 철새들의 낙원으로 비상합니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국토부 블러그와 주요 포털에도 노출됐다.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래 표 한 장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 연도별 두루미 수 관측 현황(구미시 측정) |
ⓒ 구미시 자료제공 |
이명박 정부는 '철새가 찾지 않는 강'으로 묘사했지만 2009년 구미 해평습지 등에서 관찰된 흑두루미는 2822마리에 달했다. 오히려 4대강사업이 진행되면서 절반으로 줄었고, 그 후 2017년부터 눈에 띄게 사라졌다. 모래톱이 잘 형성돼 해마다 6000마리 이상의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찾는 760ha의 해평습지가 훼손된 탓이다.
지금도 구미시는 홈페이지에 별도 소개란을 만들어 두루미의 생태, 보호현황, 서식지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동북아시아 두루미 네트워크'에 가입한 인증서 원본도 공개하고 있지만 2020년, 2021년에 이곳에서 관찰된 흑두루미는 '0'(제로)였다.
▲ 흑두루미 사진 공모전 수상작(대상, 유형전, 순천만갯벌위의 환상) |
ⓒ 순천시 제공 |
사실 4대강 사업을 진행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흑두루미는 암수 구분 없이 몸길이가 76cm~100cm에 이르는 대형 조류이다. 머리는 흰색이며 몸은 검은 색을 띤 회색이다. 이 때문에 영어 이름은 'Hooded Crane', 두건을 쓴 두루미라는 뜻이다. 학명은 'Grus monacha'로 수녀를 닮은 두루미라는 의미이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에도 두루미가 새겨있다. 6백만 년 전 공룡 시대부터 살아온 새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 청자나 옛 그림, 병풍에 소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두루미. 이중 흑두루미는 이제 전세계에 1만7000여 마리만 남아있는 희귀종이 됐다. 우리나라 환경부는 멸종위기 2급,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했고,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취약종(VU)으로 올라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낙동강에서 쫓아낸 흑두루미는 중국 동북부지역과 러시아 동남지역에서 번식한다. 이들의 휴식처와 잠자리는 염습지 부근과 무논 습지이다. 먹이터는 휴식지와 가까운 농경지이다. 잠자리와 먹이터는 대부분 탁 트인 개활지이다. 잠을 자다가 첨벙거리는 물소리로 천적의 접근을 알 수 있고, 먹이를 먹으면서도 주변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흑두루미의 73%가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出水)에서 겨울을 난다. 매년 10월부터 흑두루미들은 시베리아 번식지를 떠나 월동지로 이동을 시작한다. 대략 3000~4000km,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따라서 높은 창공에 떠서 V자 대형을 이뤄 한반도 하늘을 거쳐 이즈미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흑두루미들은 중간 기착지를 경유한다.
낙동강 코스 버리고 서해안 코스 개발한 까닭
이동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무리들이 한강에서 남한강, 금강 상류를 거쳐 낙동강 지류를 타고 주남저수지, 낙동강 하류에서 일본으로 이동했다. 낙동강 코스에는 천적을 피할 수 있는 넓은 모래톱과 안전한 먹이터인 들판이 존재했다. 또 다른 경로는 철원평야, 한강하구, 시화호, 천수만을 타고 순천만을 거쳐 이즈미로 날아가는 서해안 코스이다.
4대강사업이 완공된 뒤인 지난 2014년에 순천에서 열린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는 "과거 낙동강을 따라 조성돼 있던 흑두루미의 기착지와 월동지가 4대강 사업 이후 구미 해평습지와 낙동강하류 남지-본포 습지의 모래톱이 사라지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지적했었다.
"2014년부터 300~400마리씩 늘던 순천만 경유 흑두루미들이 2017년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치솟았습니다. 낙동강 상공에서는 흑두루미가 지나가면서 내는 울음소리조차 그쳤죠."
강나루씨는 "아마도 4대강사업 이후 4~5년 동안은 유전자에 각인된 습성을 버리지 못해 낙동강 상공을 이용하면서 새로운 루트를 개발한 것 같다"면서 "2017년 겨울부터 가족 단위로 20~30마리씩 이동하는 개체들을 빼고는 4대강사업으로 온통 저수지로 변한 낙동강의 상공까지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7년에 구미에서 관측된 흑두루미는 100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2022년] 순천만과 낙동강, 무엇이 달랐나
▲ 작년 12월 환경부 겨울철새 동시센서스 결과이다. |
ⓒ 순천시 제공 |
낙동강에서 멸절되다시피 했고, 그 대신 서해안과 남해안에 걸쳐 분포돼 있다. 지난해 12월 순천만에서 4437마리가 관찰됐다. 전체 개체수의 65.9%에 달한다. 작년 11월 21일에는 무려 9800여 마리가 관찰됐다. 11월 초에 일본 이즈미에서 발목에 B51, B51 가락지를 찬 흑두루미가 서산에서 발견됐다. 당시 이즈미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로 흑두루미들이 역유입된 것이다.
"흑두루미들이 월동을 마치고 시베리아로 가기 전에 거꾸로 올라온 것은 처음으로 목격한 현상입니다. 순천만 갯벌에 새까맣게 내려앉은 흑두루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강나루씨는 "막상 순천만으로 올라왔는데, 이곳 잠자리의 최대 수용 능력은 5천여마리 정도"라며 "자기들끼리 경쟁하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을텐데, 인근 지역으로 분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지난 12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열린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업무협약식. |
ⓒ 김병기 |
지난 1월 12일 순천만 흑두루미는 5117마리로 줄어들었지만, 이는 2022년 3400마리보다 2000마리 가깝게 많은 수치이다. 2014년에 이곳에서 관측된 흑두루미는 1005마리, 구미에서는 2472마리로 두 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10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역전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11일 찾아간 순천만 '희망농업단지' 대대뜰 앞에 서니 흑두루미들의 울음소리가 겨울벌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순천시 장익상 순천만보전과장은 한국환경기자클럽 소속 기자 20여명 앞에서 브리핑을 했다. 장 과장은 2009년에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이곳에서 282개의 전봇대를 뽑은 이야기와 친환경 먹이를 공급하기 위한 흑두루미영농단의 활동을 소개했다.
장 과장은 "작년 11월에 이곳에 이즈미시에서 역유입된 6000마리를 포함해 1만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운집했는데, 먹이터와 잠자리가 부족해서 섬진강 하구와 하동, 고성, 벌교까지 분산됐다"면서 "순천시가 이번에 먹이터를 확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 단순히 순천시 힘만으로는 흑두루미를 보호할 수 없기에 인근 지자체들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날인 12일 순천시와 강원도 철원군, 충남 서산시, 전남 여수시, 광양시, 고흥군, 보성군 등 7개 지자체는 흑두루미 서식지 보존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열었다. 지자체들이 멸종위기종의 정보와 경험 공유, 상시 방역시스템 구축 등을 휘해 힘을 합쳤고, 중앙정부에 지원도 요청했다.
▲ 거대한 호수가 돼버린 해평습지. 그러나 4대강사업 전만 해도 이곳은 드넓은 모래톱이 발달해 겨울이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겨울을 나던 곳이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반면 낙동강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흑두루미 월동지였던 낙동강 달성습지 좌안으로 성서공단이 조성됐고, 우안의 고령 다산 들판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였다. 먹이터가 사라진 것이다. 해평습지와 낙동강 모래톱도 수장됐다. 해평습지에서 18km 하류에 있는 칠곡보의 관리수의는 해발 25.5m이다. 습지나 얕은 물에서 쉬는 흑두루미들의 잠자리도 빼앗겼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4대강사업 이전에는 낙동강 해평습지에 3천 마리 이상 도래했던 흑두리미가 4대강 공사와 그 이후 완공된 보에 물을 채움으로써 모래톱이 사라져 점점 줄어들더니 2020년부터는 한 마리도 도래하지 않고 있다"면서 "유명한 흑두루미 도래지 해평습지가 그 명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 "낙동강 상공에선 흑두루미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다" “흑두루미도 낙동강을 버렸습니다.” 12일 새벽 6시30분경, 순천만 용산전망대 위에서 강나루 순천만 명예습지 안내인(63)이 한 말이다. 그는 컴컴한 어둠 속 갯벌과 갈대 숲 사이에서 쉬고 있는 흑두루미를 금세 찾아냈다. “저렇게 안락한 잠자리가 이제 낙동강에는 없습니다.” 14년 전인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사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면서 대대적으로 배포했던 홍보 동영상의 큼지막한 자막이 떠올랐다. “철새가 찾지 않는 강” ⓒ 김병기 |
▲ 무려 6천 마리 바다 건너왔다... 그 이유가 기막히다 김병기의 환경새뜸 : ‘겨울 진객’ 월동지, 순천만을 가다 ⓒ 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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